[스프] '최원태 트레이드'는 얼마나 희귀한 사건인가?

이성훈 기자 2023. 8. 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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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LG와 키움은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키움이 주축 선발투수 최원태를 LG에 내주고, 유망주 야수 이주형과 투수 김동규, 올해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8순위 지명권을 받아온 것. 최원태가 바로 다음 날 6이닝 무실점의 눈부신 호투를 펼쳐 승리투수가 되면서 LG는 트레이드의 목표를 순조롭게 달성하기 시작했다.

반면 '미래에 베팅'한 키움은 몇 년이 지나야 이 트레이드의 성적표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이 트레이드는 아주 오랫동안 화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들여다볼수록 생각할 여지가 많은, 다음의 이유들 때문이다.

1. 한국에는 없던 트레이드


올 시즌과 가까운 미래의 성적을 포기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탱킹'은 북미 프로스포츠에서는 흔한 일이다. 가령 하위권에 처져 가을야구 가능성이 희박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비싼 주축 선수를 보내고 유망주를 받아온다. 이유는 이렇다.
- 주축 선수를 팔아 꼴찌권으로 처져도 강등되지 않는다. 승강제가 없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MLB 팀들은 독립적인 기업이다. 모기업의 도움 없이 혼자 벌어 먹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모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KBO리그 팀들보다 돈 문제에 훨씬 민감하다. 가령, 가망이 없는 시즌에 노장 스타 선수에게 거액의 연봉을 계속 지불하는 건 팀 재정, 혹은 구단주의 주머니 사정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스타의 '확실한 현재'를 팔아 유망주의 '불확실한 미래'를 사면서 지출을 줄인다.

KBO리그의 대부분 팀들은 이렇게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팀들이 '모기업의 홍보단'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기업의 이미지에 도움이 안 될 행동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 구단들보다 여론에 훨씬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가 벌어질 빌미는 가능하면 만들지 않아야 한다. 하위권 팀이 주축 선수를 트레이드해 '올 시즌 포기'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면? 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일이다.

그래서 '최원태 트레이드'는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유형의 사건이다.

(스탯티즈 기준으로 8월 3일 현재) 최원태의 올 시즌 승리기여도는 3.29. 전체 선수들 중 14위이고, 투수들 중에서는 7위, 토종 투수 중에서는 안우진-고영표에 이어 3위이다. 한 마디로 리그 최고 수준의 토종 선발 투수다. 이런 선수는 특히 시즌 중에는 절대로 트레이드되지 않는다.

WAR 20위 이내의 주축 선수가 시즌 중에 트레이드된 사례를 찾으려면 무려 19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2005년 7월 11일, 두산은 좌완 유망주 전병두를 KIA에 넘겨주고 평균자책점 5점대의 부진에 빠져있던 다니엘 리오스를 영입했다. 잠실로 옮긴 뒤 거짓말처럼 부활한 리오스는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고 2007년 MVP를 차지했다.

그 뒤로는 어떤 팀도 주축 선수를 시즌 중에 다른 팀으로 넘기지 않았다. 히어로즈가 자금난 때문에 이택근과 장원삼을 트레이드한 건 2009년 시즌이 끝난 뒤였다. 2010년의 황재균과 2011년의 박병호는 아직 잠재력을 꽃피우기 전의 '유망주'들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려 19년 만에 스타급 선수가 시즌 중에 팀을 옮기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2. LG가 트레이드에 나선 명확한 이유


여러 매체가 이미 보도한 것처럼, LG가 트레이드를 한 이유는 명확하다. 우승을 노리는 팀치고는 선발진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에이스 플럿코를 제외하고 포스트시즌 한 경기를 믿고 맡길 만한 투수가 없었던 LG는, 올 시즌 선발투수들의 WAR이 4.83에 불과하다. 10개 구단 중 8위다. 2015년 시작된 '10구단 시대'에서, 선발 WAR 8위 팀이 우승한 경우는? 당연히 한 번도 없다.

올해 가을야구에서는 선발이 약하면 위험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위 표에서 보듯, 가을 야구를 노리는 중위권 팀들의 선발진이 LG(와 SSG)보다 좋았다. 가령 LG가 포스트시즌에서 NC를 상대한다면? 역대 최고 수준의 위력을 뽐내고 있는 에릭 페디, 가을에는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구창모 등을 만나야 한다. 두산의 알칸타라-브랜든-곽빈, KT의 고영표-벤자민-쿠에바스, KIA의 파노니-양현종-이의리, 한화의 페냐-문동주-산체스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존재들이다.

즉 지금의 선발진으로는 '이변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어느 해보다 높았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선발진을 대폭 강화해야, '올해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맞았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이성훈 기자 che0314@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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