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효석문학상] 발리섬 게스트하우스, 그곳엔 떠밀려난 여행자들이 산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8. 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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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심 진출작 ⑥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하루2만원 숙소서 만난 사람들
끊임없이 구별지으려는 '나'
속물성에 관한 예리한 시선

◆ 이효석 문학상 ◆

재아는 8년 만에 게스트하우스를 다시 찾았다. 발리섬 우붓에 위치한 그곳은 기억 속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꽃 그림도 코끼리 조각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오래전 재아는 현실이 갑갑할 때면 충동적으로 항공권을 끊었던 적이 있었다. 하룻밤 2만원이면 몸과 정신을 잠시 의탁할 수 있는 곳. 다시 도착한 그곳엔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듯한 여행자들이 마치 여행이 삶인 듯이 살아가고 있다.

야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려는 오 반장, 지저분한 입담의 중년 남자와 노닥거리는 호경,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라지만 실은 밥벌이도 힘들어 보이는 송기호. 재아의 눈에 이들은 사회에서 낙오되어 물가 싸고 춥지 않은 나라를 떠돌고 있을 뿐인 사람들이다.

재아는 셋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과 저들을 구별한다. 재아는 동거남인 현오와 통화하면서 자신의 상대적 우위를 확인받으려 한다.

강보라 단편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구별 짓기에 관한 작품으로 읽힌다. 재아가 오 반장, 호경, 송기호의 취향을 은근히 깎아내릴 수 있는 건 자신이 확보한 문화자본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작가로서 가졌던 빼어난 안목이기도 하고 쌓아왔던 인맥, 혹은 그들보다 조금 사정이 나은 지갑 때문이기도 하다.

세 사람이 고급문화를 마치 별것 아닌 양 여길 때마다 재아의 시선은 못마땅해진다. 재아는 한국에 있는 현오와 통화하며 험담한다. "요즘은 개나 소나 사진작가야." 오 반장이 아는 척할 때면 재아는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반박한다. 돈을 내야 할 때 노골적으로 딴청을 피우는 세 사람에 대한 재아의 시선은 어느덧 혐오에 가까워진다.

재아는 세 사람과 자신 사이에 지워질 수 없는 선 하나를 긋는다. 귀국 후 송기호가 도움을 요청하자 재아는 '최대한 사려 깊고 친근하게, 하지만 그가 다시 내게 연락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재아의 강고했던 확신은 한 여자 감독과의 만남으로 부서진다.

재아는 한국에 돌아와 극장에 간다. 강강술래처럼 보이는 춤을 선보인 여자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우리 안의 농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 그 일시적인 감흥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감독의 이름은 서호경, 바로 우붓에서 만났던 그 여자애였다. 한 유명 영화감독의 딸이자 안무가이자 무용수였던 호경에게서 소통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관한 답을 재아는 듣는다. 재아는 오래전 호경이 자신에게 주었던, 메말라 시든 연녹색 양배추와 조그만 뱀이 함께 그려진 그림을 들여다본다.

심사위원 박인성 평론가는 "독자들에게 신랄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강보라 작가의 장점"이라며 "속물적인 인간의 심리와 관심사, 취향의 문제에 대해 기만적으로 작동하는 부분을 짚어냈다"고 평가했다. 심진경 평론가는 "한때 자기 삶을 흔들기도 했지만 조악한 수버니어 정도로 머무는 그림에 대한 의미를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1982년 서울 출생인 강보라 작가는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다. 10년 넘게 프리랜서 기자로 일했다.

<지상중계 끝>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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