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을 폭염”···잼버리는 지금 ‘생존게임 중’
“텐트 안은 사우나 같아요. 모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잤고, 물린 곳에 피멍이 들어 고통스러워요.”
3일 전북 부안 새만금 일대에서 열리고 있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에서 만난 스카우트 대원 최모군(14)은 벌겋게 부어오른 정강이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벌레 물린 곳은 따가운 햇볕 탓에 더 가지러운 듯 했다. 이곳 낮 기온은 전날에 이어 최고 35도를 넘은 상태였다.
폭염으로 영내 활동이 취소된 이날 청소년 스카우트 대원들은 체험 행사장 내 그늘 쉼터 아래로 모여 있었다. 수증기가 분사되는 덩쿨터널 안에서 쪼그려 앉거나 누워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야영장 125곳에 설치된 급수대마다 목을 축이려는 대원들로 북적였다. 델타구역(대집회장)에서 유일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기념품 매장은 더위를 피하려는 대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얼음물 판매대에는 대원들이 줄을 섰다.
야영장에서 만난 참가자 이성원씨(50)는 “자녀들과 함께 왔는데 날씨가 사람잡을 폭염”이라고 말했다.
대원들이 숙식을 하며 지내는 야영지는 며칠 전 내린 비와 연일 계속된 찜통더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겨 진흙탕이 많아 걷기가 쉽지 않았다. 텐트가 설치된 인근에도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었다. 잼버리가 열리는 야영장은 새만금 매립지로 평평한 지형에 탓에 배수가 제대로 안된 것이다. 매립 당시부터 농어촌 용지로 지정돼 숲이나 나무 등 그늘도 거의 없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이번 잼버리 대회를 두고 ‘생존게임이 됐다’는 우려의 말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독일에서 온 대원 베르타(17)는 “체험관에서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면서도 “독일보다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려 머리가 아프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행사 전부터 평지인 장소 특성과 날씨 예보로 폭염 운영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조직위 등 관계 기관의 준비가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최창행 조직위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더운 날씨를 충분히 예상했다”며 “매일 모니터링을 통해 안전하게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직위 측은 ‘강한 스카우트 정신으로 날씨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잼버리 대회 관련 불만은 커지고 있다.
SNS에는 ‘국제적 망신이다’ ‘내가 대신 사과한다’ 등의 부정적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자녀가 잼버리에 참가했다는 한 부모는 SNS에 “아이가 땡볕에 2만3000보를 걷고 땀띠에서 피가 났지만, 선풍기도 없는 텐트에서 그냥 잤다고 한다”며 “대규모 아동학대다. 아이를 데리러 갈 예정”이라고 글을 올렸다.
이날 오전에는 아침 식사로 나온 구운 달걀에서 곰팡이가 발견됐다는 주장도 제기된 데다 야영장 내 마트의 바가지 문제도 불거졌다. 한 참가자는 “200m 줄을 서서 두루마리 휴지 2개를 샀는데 4000원을 받았다”고 전했다.
‘예견된 사고’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잼버리 대회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4만3000여명이 참여하지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마련한 야영장 내 잼버리병원 병상은 50개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00여명 온열환자가 발생한 개영식 직후에는 침상으로 부족한 병상을 대신해야 했다. 한 구급대원은 “이른 오전부터 야영지 내 온열질환자를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며 “신고가 쉴 새 없이 들어와 병원과 야영지를 수시로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는 일찌감치 이번 잼버리 대회를 두고 안전 문제 등이 제기돼왔다. 새만금해수유통추진공동행동은 2020년 해창갯벌을 메운 현재 잼버리 개최 장소가 황무지로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없다며 대회 추진을 비판한 바 있다.
전북민중행동과 평화와인권연대, 전북환경운동연합도 개막 전날 온열 질환과 야영지 배수 문제, 벌레 물림 등에 따른 안전사고를 우려하며 야영지 행사 취소와 대회 중단을 촉구했다. 전북녹색연합은 역시 기자회견문을 통해 “폭염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4만3000여명의 청소년과 자원봉사자, 대회 관계자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대회 강행은 너무나도 무모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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