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40대 엘리트’ 태국 총리의 꿈… 군부와 탁신계 야당, 결국 손 잡나
태국 군부 축출을 내세웠던 ‘탁신계’ 야당 프아타이당이 지난 5월 총선에서 승리한 1당 전진당과의 연정(聯政) 포기를 선언하면서, 태국의 정치적 혼란이 심화하고 있다. 로이터통신·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프아타이당은 2일(현지 시각) “전진당과 협력하지 않고 차기 정부 구성에 나설 것”이라며 부동산 기업가 출신 세타 타위신을 차기 총리 후보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촌난 스리깨우 프아타이당 대표는 이날 “보수 진영의 반대로 (전진당과의) 연합을 깰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프아타이당은 구체적인 연정 방안을 2주 안으로 밝히겠다는 방침인데, 친(親)군부 진영과 공동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탁신가(家)와 군부 등 지난 20년간 태국 정치를 양분하며 대립해 온 두 세력이 공동 집권한다.
야권 지지자들은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의 총리 선출이 무산되자 프아타이당이 집권을 위해 군부와 연정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군부를 향한 ‘가문의 복수’에 나선 패통탄 친나왓이 군부와 손잡는 것은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이다. 프아타이당을 이끄는 패통탄 친나왓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친나왓의 막내딸이다. 2014년 쁘라윳 짠오차 육군 총사령관 주도의 또 다른 쿠데타로 탁신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 총리가 실각한 이후 10년간 쁘라윳 총리 주도의 군부 체제가 이어져 왔다. 이날 전진당 지지자 수백 명은 방콕 소재 프아타이당 당사로 몰려가 인형을 불태우고 붉은 페인트를 뿌리는 등 시위를 벌였다.
군부 중심의 상원 지지 없이는 행정부 수반인 총리를 배출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프아타이당의 ‘배신’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총리 선출을 위해서는 상원 249명과 하원 500명 등 국회의원 749명 가운데 과반의 표를 얻어야 하는데, 상원은 모두 군부가 임명한 인물이다.
지난 5월 14일 태국 총선은 패통탄 등 탁신가와 쁘라윳 짠오차 총리 주도 군부의 대결 구도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총선 결과 군주제 개혁·징병제 폐지 등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운 전진당이 압승했다. 피타 대표의 ‘하버드대 출신 40대 개혁 기수’ 이미지가 가세한 전진당의 예상 밖 승리를 두고 20여 년 되풀이된 통신 재벌 출신 탁신가와 군부의 대결 구도가 깨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군부 축출’이라는 공통 분모로 묶여 있는 전진당과 프아타이당 등 야권 정당 7곳은 피타 대표를 총리로 내세우고 공동 정부를 구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피타의 선거법 위반 논란이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친군부 성향 선거관리위원회가 피타의 태국 방송사 주식 보유 전력을 문제 삼았다. 태국 선거법은 방송사 주주의 공직 출마를 금지하고 있다. 논란 속에서 실시된 지난달 13일 총리 투표에서 피타는 과반을 얻는 데 실패했다. 엿새 뒤 2차 투표를 위해 상·하원 의원들이 모였지만 “한번 떨어진 후보를 두고 다시 투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우세해 2차 투표는 무산됐다. 피타는 2당인 프아타이당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히며 연립 정부 구성권을 프아타이당에 넘겨줬지만, 2일 프아타이당이 전진당을 빼고 연정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이다. 한편 프아타이당의 정신적 지도자인 탁신 전 총리는 오는 10일 15년 이상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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