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미디어 시장 생산성의 역설을 돌파해야 할 때

2023. 8. 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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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오픈루트 전문위원)

기업의 가장 근원적 목표는 지속가능성이다. 지속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 중 핵심은 생산성이라 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 생산성이란 토지, 자원, 노동력 등 생산요소가 투입된 양과 그것으로부터 얻어진 생산물의 산출량의 비율을 의미한다. 일정한 자원에서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얻는가와 일정한 부가가치를 얼마나 적은 자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가 고민이다.

MIT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Robert M. Solow)는 1956년 기술변화의 생산성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1909년부터 1949년까지 공수(manhour, 인시, 人時) 대비 GNP로 계산된 생산성이 크게 증가한 미국 경제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산성을 분석했다. 생산성 증가의 87.5%는 기술의 변화(기술의 진보)에 따른 것이며, 12.5%는 자본 사용의 증가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솔로우가 말한 기술적 변화는 단순히 기술 수준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고숙련도를 포함한 것을 의미하고, 자본의 사용은 노동 한 단위당 자본의 크기를 뜻한다. 즉, 생산성은 노동, 자본, 기술에 대한 투자를 얼마나 적절하게 해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지가 핵심이다.

솔로우는 연구를 지속하며 1987년 뉴욕타임즈 기고를 통해 '생산성의 역설(productivity paradox)'을 주장한다. 생산성의 역설이란 컴퓨터나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통해 생산성 향상이 반영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미디어 산업에 적용해보자. 먼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서비스는 미디어 산업에서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며 유통하고 전달하고 소비자가 이용하는 C(ontents)-P(latform)-N(etwork)-D(evice)의 모든 영역을 혁신했다.

이는 OTT 비즈니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유료방송 플랫폼, 지상파, 방송채널사용사업자, 콘텐츠 제작자 등 모든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연관 산업인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5G), 게임, 증강현실 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만, 이런 기술의 발전이 OTT산업을 비롯한 미디어 산업의 생산성을 증가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솔로우의 생산성 역설이 관측되고 있다.

Global OTT revenues

PWC가 조사한 세계 OTT시장의 매출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20년 성장세를 기점으로 지속성장은 하고 있으나 성장세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특수가 끝나고 다른 레저 수단과의 경쟁이라는 외생적 요인이 성장의 속도를 줄이고 있다.

국내 OTT 사업자들은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솔로우의 생산성 역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 국내 OTT사업자 등은 막대한 제작비와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더불어 기술개발에도 애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생산성은 증가해야하는 데 많은 지표나 언론 보도는 OTT사업자의 생산성에 대해 비관적이다. 물론 이러한 투자와 성과 사이에는 시차효과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TT 산업이 불안한 것은 기업의 본원적 행위인 콘텐츠 투자와 수익 추구를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기업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쟁의 심화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품질의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수급하는 데 경쟁의 심화는 콘텐츠 제작비 상승을 불러일으킨다. 경쟁으로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을 높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작비가 올라갔으니 생산성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그 시장가격이 조정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추가보상권이나 저작권, 망 이용대가와 같은 각 영역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외생적 변수들이 시장가격을 왜곡하고 있다.

헐리우드는 현재 멈춰 있다. 미국작가조합(WGA)이 진행하던 파업에 배우-방송인 노동조합이 파업에 동참하며 그 파급이 커졌다. 1960년 이후 63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넷플릭스, 아마존 등이 가입되어 있는 AMPTP(영화 및 TV제작연맹)과의 협상이 결렬된 탓이다. 추가보상에 대한 비율과 AI와 관련된 문제로 인해 사태는 더욱 촉발되었다.

추가보상권이나 AI 활용에 대한 이슈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현상적으로 살펴보면 넷플릭스는 생산성 저하를 피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에서 콘텐츠를 제작함으로써 위협을 피하고 있다. 반면, 넷플릭스보다 작고, 미국 제작시장에 의존적인 기업들은 큰 혼란에 빠져있다. 생산성은 기술 및 자본과 함께 결국 노동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미국의 콘텐츠 시장은 극심한 생산성 하락이 예상된다. 경쟁심화로 인한 운영효율성 저하와 기술의 변화의 저하가 발생할 것이다. 문제는 이미 그러한 현상이 그전부터 시작되었는 데 이번 사태가 생산성 저하에 기름을 붓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디어 기업의 생산성, 기술, 순수효율성, 규모의 효율성 변화 지수

필자가 한국 미디어 시장의 생산성, 기술변화, 효율성을 분석한 결과 2020년에서 2021년 기술의 변화 및 순수효율성(운영효율성)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지표가 1보다 높으면 생산성 향상, 반대인 경우 하락으로 판단할 수 있는 데 2021년 이후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각 이해관계자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플랫폼 사업자의 지속성이다. 결국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의 중간다리이자, 의사결정의 최초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플랫폼이 유통하지 않을 경우 어떨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이 급박한 글로벌 경쟁에서는 각 영역에서 서로간의 양보와 동료의식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플랫폼 투자에 대해 인색하고, 각종 규제의 위협에 둘러싸인 국가도 드물기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은 결국 자본, 기술, 노동의 삼박자가 두루 맞아야 한다. 이를 위해 OTT 사업자에게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등의 지원정책이 필요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국내 창작자에 대한 지원도 이뤄져야한다. 플랫폼 사업자의 부담을 잠시 정부가 함께 짊어지고 노동의 품질 향상을 위한 기업과 정부의 협력적 인력양성 정책 등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김용희 오픈루트 연구위원 yh.kim81@dgu.ac.kr

〈필자〉김용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과 미디어 분야 전문가다. 미디어와 경영 관련 학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미디어 정책 관련 각종 연구반과 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하며, 미디어 산업을 보는 폭넓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미디어 산업에 사회·경제 효과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미디어 컨설팅과 연구를 수행하는 오픈루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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