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길가다 칼 맞고 싶냐"…교사 1만명이 시달린다
#1.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교실에서 걷다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져 반깁스를 한 B학생의 학부모에게 '학생 안전을 책임져야 하니 등굣길에 매일 집 앞까지 차로 데리러 오라'는 요청을 받았다. A씨가 이를 거절하자 학부모는 교문 앞까지 매일 학생을 마중 나올 것을 요구했다.
#2. C교사는 친구를 괴롭혀 학교폭력 신고를 받은 D학생의 아버지에게 "개X같은 X. 우리 아이를 뭐로 보고 그러냐. 당장 찾아와 XX버린다"는 폭언을 들었다. E교사는 고등학교 근무시 학교 폭력 관련 개인정보 요구에 불응하자 한 학생의 아버지에게 "내가 조폭이다. 길 가다가 칼 맞고 싶냐"는 협박을 들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달 25~26일 설문조사를 실시해 이같이 접수받은 교권 침해 건수가 1만1628건이라고 3일 밝혔다. 교총 분석 결과 교권침해 대상은 학부모가 8344건(71.8%)으로 학생이 침해한 3284건(28.2%)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교총은 우선 이번달 발표할 예정인 교육부 고시에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을 즉각 교원이 제지할 수 있도록 교실 퇴실과 반성문 등 실질적 제재를 담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학교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 기능을 지역교육청으로 이관·강화하고, 학생생활기록부에 전학·퇴학·학급교체 등의 교권 침해 가해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고도 했다.
교권침해 학부모에 대해서도 교원지위법을 개정해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고발할 수 있게 하고, 지역교육청 콜센터 등 단일화된 민원창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아울러 아동학대 신고로 인한 직위 해제를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대통령령에 직위해제 요건을 마련하고, 학생인권조례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민원창구 단일화에 대해 "학교에서 콜센터나 민원 창구를 만들게 되면 교장·교감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진다"고 전제한 뒤 "교육지원청에서 민원에 대한 논리 타당성을 판단해 학교에 확인하는 등 제어하는게 필요하다"며 "학부모들은 학교보다 지역교육청에 연락하는 것을 더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자체로도 민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교육활동 침해 사례가 증가하는 이유(3가지 복수선택)를 묻자 교사들은 '학생·학부모 처벌 미흡(25%)'을 1순위로 꼽았다. 또 '교권에 비해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조(23.8%)', '교권의 직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형사법적 판단(15.9%)'이라는 답도 많았다. 반면 학부모들은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조(17.2%)를 1순위로 꼽았다. 이어 '학교 교육, 교원에 대한 학생 및 보호자의 불신(14.7%)', '교육활동을 침해한 학생·학부모에 대한 엄격한 처벌 미흡(12.9%)' 순으로 나타났다.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강화해야 할 조치에 대해 2가지를 택하도록 한 질문에서는 '교육활동 보호 관련 법령 및 제도 강화(47.6%)'를 꼽은 교사가 절반에 육박했다. 특히 학생이 교권침해로 교보위 심의에서 받은 징계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해야 한다는 데 대해 교사의 90%가 찬성했다. 같은 질문에 학부모 응답자는 75.5%가 동조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3~16일 전국 유·초·중·고 및 특수학교에 재직 중인 교원 2만2084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학부모 인식 조사에는 지난달 5~9일 2023년 학부모정책 모니터단 학부모 1455명이 참여했다.
한편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오후 교권 회복 및 보호를 위한 의견을 듣기 위해 초·중·고 학부모와 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교원이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보장받지 못하면 교권 추락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학생과 교원, 학부모 등 교육 3주체의 권한과 책임이 조화롭게 존중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하겠다"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달 중으로 교권보호 종합대책과 교원의 법적 생활 지도권 확립에 따른 고시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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