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 실험 안된 초전도체 논문 급하게 낸 듯...아직까진 결과 회의적"
"전세계 물리학계, 한국이 발표한 논문에 관심 집중
"국제 과학계, 지금까진 초전도체 특성 확인 실패"
"현재로선 국내 연구진이 발표한 LK-99가 초전도를 보일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성공이 아니더라도 과학은 그 과정에서 또 한번 진보할 것입니다."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를 개발했다는 국내 연구진의 발표로 전세계 과학기술계가 들썩이는 가운데 박제근 서울대 양자물질연구단장(물리천문학부 교수)은 "1~2주 안에 관련 검증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단장은 국내 대표적인 양자물질 및 자성소재 연구자다. 세계 최초로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을 연구해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점을 인정받아 2016년 한국과학상, 올해 포스코청암상 과학상을 수상했다.
앞서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 등이 참여한 고려대 연구진은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상온상압에서 초전도성을 갖는 납 기반 물질 'LK-99'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LK-99 샘플 이용한 검증 실험으로 판정 전망
꿈의 물질이자 현대 재료과학과 응용물리학의 '성배'로 꼽히는 상온상압 초전도체는 전자기 위에서 이뤄진 인류 문명의 모습을 180도 바꿔놓을 만한 파괴적 기술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다수의 연구자들이 "마침내 개발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발표에 대해 과학기술계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다. LK-99에 대한 전문가 검증위원회를 발족시킨 한국초전도저온학회도 현재로선 LK-99가 상온 초전도체라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물질 샘플을 이용해 검증 실험을 하면 명확한 판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박 단장의 연구분야는 양자물질과 자성소재인 만큼 초전도체 분야와 맞닿아있다. 핵심 연구주제는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이다. 반데르발스 힘은 원자와 분자, 표면 간의 인력과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힘의 일종으로, 화학결합보다 상대적으로 약하면서 유기화합물의 화학적 성질이나 용해도를 결정한다. 서로 끌어당기는 반데르발스 힘으로 결합한 물질을 제어하면 완전히 새로운 반도체나 반금속, 초전도체 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새로운 소재 발명은 탈탄소, 기후변화, 에너지 부족 같은 인류의 난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대에서 물리학과 학·석사를 받고 영국 임페리얼대학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은 박 단장은 영국 런던대학 연구교수, 인하대 물리학과 조교수,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를 거쳐 2010년 서울대로 적을 옮겼다. 영국물리학회 석학회원이기도 하다.
박 단장은 자신이 발굴한 독특한 물질을 바탕으로 전기적·자기적 성질을 조절할 수 있는 '차세대 광소자 기술'을 세계 최초로 구현해 국내외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기술를 반도체에 적용하면 열 손실을 줄이고 에너지 소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관련 연구성과는 세계적인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수차례 발표했다.
◇세계 과학자 모이는 국제학회서도 발표 내용 갖고 긴급 토론
그는 올여름 5주간 해외에 머물며 영국 런던, 미국 UC 산타바바라와 아스펜, 스위스 주오즈와 아스코나 등에서 열리는 5개 국제학회에 참가해 초청강연을 하고 있다. 현재 미 아스펜의 아스펜물리학센터에서 여는 학회에 참가 중인 박 단장은 비대면 인터뷰를 통해 "초전도체를 비롯한 응집물리 연구 분야의 전세계 전문가들이 모인 이곳에서도 한국에서 나온 두 편의 초전도체 관련 논문이 화제"라면서 "학회에 모인 연구자들이 지난주 관련 긴급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상온 초전도체에 대한 과학계의 관심이 높다"고 밝혔다.
다만 국내외 과학기술계가 이번 발표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 차분하다. 국내외 주요 연구기관들이 이론 시뮬레이션과 검증 실험 연구를 하고 있지만 초전도 성질을 실험적으로 확인한 곳은 아직 없다.
중국 화중과학기술대 연구진이 2일 LK-99 합성에 성공했다며 관련 영상을 공개했지만 초전도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 단장은 반자성 특성을 확인한 정도라고 설명했다. 반자성은 인접한 원자의 자기 모멘트들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향해서 전체적으로 자기력을 띠지 않는 상태다. 중국 연구진에 앞서 미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원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LK-99의 이론적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초전도 특성을 검증한 것은 아니다. 이밖에도 미국, 중국, 한국 등 세계적인 연구그룹이 관련 검증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국제 과학계, 현재로선 초전도체 성질 재현 실패
박 단장은 "아카이브에 LK-99 실험 결과와 이론적 검증을 한 논문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논문이 실릴 것"이라면서 "그러나 현재 발표된 실험 논문 두 편과 이론 논문 두편 모두 한국 연구진의 발표를 지지한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두 편의 실험 논문은 이번 발표를 검증하는데 실패했다. 시료의 구조 분석을 보면 두 그룹 모두 한국 연구진의 시료를 합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무저항과 자기부상이라는 초전도체 성질을 재현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밝혔다.
또 "이론 논문 두 편도 한국 그룹의 실험을 지지한다고 보기 힘들다. 이들 논문은 아주 초보적인 에너지띠 계산이고, 이를 통해 '페르미 레벨' 근처에 편평한 띠(flat band)가 있다는 것을 본 것"이라고 했다. "한국 연구진이 내 놓은 구조를 보면 그렇게 놀라운 것이 아니다. 구리 원자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충분히 예상되는 결과"라는 박 단장은 "남은 질문은 이론적으로 발견한 편평한 띠가 어떻게 초전도를 일으킬 수 있는지인데, 두 이론 논문 모두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실험과 이론 모두 추가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현재로서는 그리 전망이 좋지는 못 하다"고 했다.
아스펜 학회에 참가 중인 전세계 전문가들의 시각도 비관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불행히도 지난 30년 이상 '상온 초전도체 발견'이 학계에 있어 왔고, 모든 주장이 다 거짓으로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재현 실험 부족한 상태서 급한 논문 발표 아쉬워"
다만 이번 발표에 대한 재현 검증이 안 되더라도 과학적 부도덕성만 없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짚었다. 학자들이 실험을 하다 보면 수없는 실패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박 단장은 "기본적으로 과학은 실패의 연속이고, 인간이 하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을 하는 것도 종종 있는 일"이라면서도 "현재까지 결과만 보면 재현 실험에 실패한 연구에 대해 논문을 급하게 발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물질 자체는 연구가 별로 안된 만큼 기초연구를 더 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 연구진이 시료 합성 방법을 2편의 논문과 이전에 발표한 한편의 논문에서 자세히 공개해서 전 세계 연구진이 바로 재현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다행이라고 박 단장은 짚었다.
이번 연구의 성공 실패를 떠나서 박 단장 역시 초전도 기술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그러면서 고온 초전도 선재를 사용해 높은 자기장을 구현하는 자석과, 저항이 없는 선재를 전력 배송에 사용하는 분야에서 한국 연구진과 기업의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싼 액체질소로 냉각만 해도 초전도가 되는 물질을 산업에 응용하려는 노력은 이미 세계적으로 많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상온상압 초전도체가 발견된다면 산업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을 이용해서 양자현상을 구현하는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해선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도 세계 연구자들의 관심이 매우 높은 분야다. 국내에서 전세계가 주목하는 주요 연구분야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면서 "다만 지금은 기초연구 단계인 만큼 미래 응용을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운전기사 1억3000만원 받고 `깜놀`…스위프트 초파격 보너스 지급
- 혼자 사는 20대女 집 앞에 닭꼬치 둔 50대男... "좋은 친구 되고 싶어"
- 강남서 롤스로이스 인도 덮쳐… 20대男 운전자, 마약 양성반응
- "피곤하지? 이거 먹어" 졸피뎀 먹이고 女직원 성폭행한 40대男
- 편의점 진열대 차는 아이 말리자..."점주에 음료수 집어던진 부모"
- 韓 "여야의정 제안 뒤집고 가상자산 뜬금 과세… 민주당 관성적 반대냐"
- 내년 세계성장률 3.2→3.0%… `트럼피즘` 美 0.4%p 상승
- `범현대 3세` 정기선 수석부회장, HD현대 방향성 주도한다
- 내년 6월부터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기간 3년 단축"
- [트럼프 2기 시동]트럼프 파격 인사… 뉴스앵커 국방장관, 머스크 정부효율위 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