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관리 목표, '많이' 아닌 '누구와 어떻게'

■ 이동고 재무설계사
해외 주재원 퇴직 후 재무설계 2막
일반 은퇴자 눈높이 맞추는데 초점
‘축적’보다 ‘행복한 경험’이 더 중요

[서울경제]

“자산관리의 최종 목적은 ‘무조건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나 가족과 행복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돼야 해요. 단순하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목표를 세워 보세요.”

이동고(59·사진) 씨는 ‘생활밀착형’ 재무설계사다. 은퇴 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들던 시기, 재무설계 강의를 쫓아 다녔다. 그런데 강의를 들을 때마다 ‘일반 직장인의 눈높이와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기회로 봤다. 이 시장에는 일반 은퇴자의 눈높이에 맞는 재무설계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장의 빈틈을 파고들어 중장년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상담을 해주는 재무설계사가 됐다. 라이프점프는 2일 서울 종로 본사에서 그를 만나 전직 스토리와 퇴직자들을 위한 재무설계 팁을 들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 본사에서 이동고씨가 중장년 재무설계 팁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 /. 정예지 기자

강의에 은퇴 경험 녹여 내니 인기

그는 직장 생활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다. 1989년 LG전자가 ‘골드스타’라는 브랜드명을 가지고 있을 당시 해외사업본부에 입사한 뒤 이집트와 멕시코 등을 거쳐 2014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주재원 생활을 너무 오래 했을까. 해외에서 보낸 시간만큼, 국내에서 입지는 좁아진 듯했다. 인생 2막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왔다. 은퇴를 준비하며 이런저런 교육을 찾아 듣던 중 재테크 강의에서 그는 ‘번쩍’하는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인 재테크 강의는 자산가를 대상으로 했다. 주식과 펀드, 보험, 연금, 부동산까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전문가는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강연 내용이 강사의 출신이나 기관의 성격에 따라 편향적인 경우가 많았다. 꾸준히 재테크 강의를 듣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퇴직금을 종잣돈 삼아 실전 투자도 하며 재테크 경험을 쌓았다. 강의에 그가 직접 겪은 투자 실패와 성공 사례를 넣었다. 비록 비금융권 출신이지만 은퇴한 사람의 실제 경험을 넣으니 반응이 좋았다. ‘생활밀착형’, ‘현실 경험’ 중심의 재무설계사로 길을 찾았다.

해외 영업 노하우로 자기 세일즈

지금은 어느덧 8년 차 강사로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지만 첫 2년은 도전과 인내, 좌절이 반복되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는 이집트와 멕시코에서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 바이어들에게 세탁기와 TV, 냉장고를 팔던 과거를 떠올렸다. ‘일단 부딪히자’. 해외 주재원 생활에서 그가 얻은 교훈은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결과를 반드시 얻어낼 수 있다는 단순하면서 명확한 사실이었다.

포트폴리오를 하나하나 쌓아갔다. 구청에 일일이 찾아가 담당자 이메일을 알려 달라고 한 뒤 강의 제안서를 보냈다. 그렇게 강의 경험을 쌓고, 다시 제안하는 일을 반복했다. 재능 기부도 자처하면서 기회를 만들갔다. 그렇게 발품 팔아 지자체 평생학습관과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서울자유시민대학,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에서 강의했다. 그는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해요”라고 말했다. 중간중간 그의 직무 경험을 되살려 현대그룹의 해외 주재원을 대상으로 강의하거나 해외 주재원 생활기를 담은 책 ‘해외 주재원 생활백서’도 출판했다.

퇴직자들을 위한 재테크 팁

그는 재무설계는 인생설계와 맞닿아 있다며 은퇴 후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 인생 계획을 먼저 세워보라고 말한다. 국가에서 은퇴 후 필요한 적정 생활비를 발표하지만 본인의 삶에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다. 본인이 어떤 성향인지, 행동반경은 어떤지를 아는 게 재무설계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손실을 보면 새로운 투자로 실수를 만회하려 하고, 투자가 과감해진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가져가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부터 고수익을 기대하지 않고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고수익을 기대하는 것, 아무리 좋은 기회가 들어오더라도 투자 자금을 대출하는 것 등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재무설계 전문가는 ‘과정’ 전문가이지 미래를 점치는 ‘미래’ 전문가는 아니다”라며 노후를 타인에게 온전히 맡겨서는 안 되며 자신의 책임과 결정으로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소프트랜딩할 수 있게 ‘멘토’ 만드세요”

그는 은퇴를 앞둔 4050에게 은퇴하기 전 멘토를 만들어 두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회사 일에 너무 매진하지 말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업무 시간에는 열심히 일하지만 퇴근 후에는 멘토를 만나 인생 설계를 미리 하라는 것이다. 먼저 은퇴 한 선배 중 활발히 활동하는 선배에게 자문 받는다면 “은퇴 후의 삶에 ‘소프트랜딩(Soft landing·연착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월세를 받고 살고 싶으면 원룸을 산 선배에게서 배워야죠. ‘이게 좋다더라’ 그런 말뿐인 것은 크게 도움 되지 않더라고요.” 또한 회사 선배만 만나지 말고, 여러 모임에 등록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것도 추천했다. “회사 사람들만 만나면 과거 이야기만 하고, 예전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옥으로 한국을 알리고 일자리 창출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다. 우리 한옥을 지켜내는 것이다. 해외에서 살다 한국으로 들어오니 한옥이 눈에 들어와 전국 곳곳의 한옥 고택을 둘러봤다. 그런데 한옥을 가진 분들은 고령 세대고, 대부분의 증손은 도시에 살기에 방치되는 등 관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2019년 한옥고택관리사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한류로 인해 한국 문화가 인기가 많아지는 만큼 한옥을 관광 상품과 연계하고, 이를 관리할 중장년을 양성해낸다면 우리 전통문화를 지속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정예지 기자 yeji@lifejum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