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에 ‘펀치’ 맞은 미국 신용등급…바이든 정부 “경제 호전” 반발

이본영 2023. 8. 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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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한 이튿날인 2일 뉴욕 증권거래소 중개인이 단말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주요 신용평가사로서는 12년 만에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이튿날인 2일 미국 증시가 하락하며 그 효과가 나타났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등급 하락 파장은 2011년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지만, 미국의 신용도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 결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는 1.38% 떨어지며 4월 이래 최대 하락폭을 나타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17%,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0.98% 하락했다.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소폭 상승하며 연중 최고를 기록했다. 불안 심리 확산에 주식과 채권 값이 모두 떨어진 것이다.

피치의 이번 조정은 2011년 8월에 다른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가 역대 최초로 미국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내린 지 12년 만에 이뤄진 등급 강등이다. 12년 전 스탠더드앤푸어스의 발표 직후 뉴욕 증시의 3대 주요 지수가 5~6% 폭락한 것과 비교하면 이번 등급 강등의 파장은 일단 크지 않다. 그동안 미국 증시 상황이 좋았기 때문에 신용등급 강등을 계기로 이익을 실현하려는 매물이 쏟아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경제가 견조하다고 내세워온 미국 행정부와 조 바이든 대통령 쪽은 뒤통수라도 맞은 듯 연일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날 한 행사 발언을 통해 “전적으로 부당”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이라며 전날보다 반발 강도를 높였다. 바이든 대통령 선거캠프의 케빈 무뇨스 대변인은 성명을 내어 이번 강등은 “트럼프 강등”이라고 주장했다. 무뇨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자 감세를 해주는 바람에 재정이 악화됐으며, 그가 부채 한도 인상 협상 때 연방정부가 부도나게 놔두라고 공화당에 요구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바이든 대통령 쪽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대선을 고려하면 경제 운용에 대한 평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피치의 발표는 하필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줄고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 운용에 대한 평가가 호전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나왔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연율 2.4% 성장이라는 괜찮은 성적표를 기록하자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더 힘이 실리는 상황이었다. 인플레이션도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뉴욕타임스는 시에나대와 함께 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운용에 대한 평가가 호전되고 있다고 1일 보도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미국 경제가 ‘나쁘다’는 응답이 58%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49%로 줄었다. ‘좋다’거나 ‘아주 좋다’는 의견은 지난해 10%에서 올해 20%로 늘었다.

12년의 시차를 두고 3대 신용평가사들 중 두 곳이 미국 국채에 최고의 신용도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미국 정치·경제에 대한 불신 확대를 확인하는 의미도 있다. 무디스만 미국 신용등급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는 3대 신용평가사들 중 하나로 남게 됐다.

피치의 발표는 미국 재무부가 3분기 발행 규모로는 역대 최대인 1조70억달러(약 1310조원)어치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이튿날 나왔다는 점에서도 미국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옐런 장관은 이날 행사 연설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피치의 결정은 재무부 발행 채권은 세계에서 최고로 안전하고 유동성이 있으며, 미국 경제는 근본적으로 강력하다는 모두의 인식에 도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지금 미국 경제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신용평가사가 아니라 시장이 (신용도를) 결정한다”며 미국 정부를 편들었다.

반면 2011년 스탠더드앤푸어스에서 미국 신용등급을 역대 최초로 최고 단계에서 하나 밑으로 내리는 결정을 주도한 데이비드 비어스는 블룸버그티브이(TV) 인터뷰에서 “어느 신용평가사든 AAA 등급을 매길 수 있겠지만 이런 등급은 (미국에) 자동으로 부여되는 천부적 권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부채 한도 인상 협상 때 잇따라 국가 부도 위기에 내몰리면서 최고 신용등급을 기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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