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철근 누락 아파트...무량판 사태의 모든것
아파트 전체 부실시공은 아냐
시공사에만 책임 물어선 안돼
감리 대책마련에 더 집중해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91개 아파트 단지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 중 철근이 누락된 단지가 15곳이나 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얼마 전 발생한 GS건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신축 현장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가 우연이 아니었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GS건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현장도 LH가 발주했다.
무량판 구조는 애초 ‘원가절감형’ 공법으로 개발됐다. 상대적으로 두껍게 시공한 천장을 기둥과 바로 연결하는 공법인데, 보(beam·대들보)를 사용하지 않아 내부 공간이 넓고 공기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건설사 입장에선 기존 ‘기둥식 구조’(라멘구조로 불리며 수평으로 설치한 보에 기둥을 설치)나, ‘벽식 구조’(기둥 없이 벽이 천장을 받치는 형태) 보다 비용이 덜 드니 매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수평으로 지지해주는 보가 필요없고 공사 과정에 필요한 ‘거푸집’ 등이 적게 들어가니 공사비가 덜 든다는 거다. 실제 LH는 2017년부터 이 기술을 현장에 적용했고, 연간 750억원 이상 공사비를 절감했다고 한다.
문제는 안전성이다. 이 구조는 애초에 기둥 접합부가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내력벽’이나 수평으로 지지해주는 보가 없이 뾰족한 기둥 만으로 천장을 받쳐야 하니 기둥이 천장과 닿는 부분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 부위에서 소위 ‘펀칭현상’이 생길 우려가 크다고 한다. 기둥과 맞닿는 부위에 하중이 집중되면서 균열이 일어나고 뚫리며 붕괴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래서 그 맞닿는 부위에 철근을 보강하는 게 필수인데, 그걸 ‘전단보강근’이라고 한다.
▶‘순살 아파트’, ‘찰흙아파트’가 맞나?= 여기서 사람들이 불안해 하는 한 가지 사실을 짚을 필요가 있다. ‘순살아파트’니 ‘찰흙 아파트’니 자극적인 문구로 이번 사태가 알려지고 있지만, 정확한 팩트는 지하주차장을 지을 때 전단보강근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곳이 15군데였다는 것이다. 전체 아파트를 지을 때 들어가야 할 철근이 빠진 게 아니라, 지하주차장에서 기둥과 천장이 맞닿는 부위에 철근 보강을 제대로 하지 않은 현장이 15군데였다는 거다.
이걸 마치 모든 아파트 시공에서 철근이 빠졌다는 식으로 이해해선 안된다. 이는 현장별 ‘보강비용’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적발된 15개 현장에 각각 보강비용으로 책정된 금액은 작은 곳은 2000만원(파주운정3) 정도고 가장 많은 곳도 8억900만원(양주회천A15) 수준이다. 수백에서 수천가구 아파트 단지에 철근이 누락된 걸 보강하는 비용이라면 결코 이 정도 금액으로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진짜 심각한 건 따로 있다. 건설사를 믿을 수 없다는 거다. ‘전단보강근 시공도 제대로 하지 않은 건설사인데 다른 건 제대로 했을 리 있겠나?’는 의심이다. ‘우리 아파트도 불안하다’, ‘민간까지 전수 조사하라’는 목소리가 커진다.
GS건설은 이런 분위기에 따라 문제가 된 검단신도시 아파트를 5500억원을 들여 전면 재시공하기로 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15군데 아파트 현장도 전면 재시공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붕괴됐던 삼풍백화점까지 소환되면서, 정말이지 전국민적인 ‘무량판 포비아’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천문학적인 시공사 책임 정당한가?=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될 시공사들은 결국 전체 사업을 총괄한 발주처인 LH, 잘못된 설계서를 제시한 설계사, 엉터리 감리를 한 감리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혼자 독박으로 책임을 지는 게 억울하다고 느낄 게 뻔해서다. 업계 전반에 혼란이 불가피하다.
정부도 발주처, 설계, 시공, 감리 등을 포함한 건설업계 전반에 불법이나 특혜가 없었는지 조사하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각자 잘못한 만큼 공정하게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게 있다.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이 발견됐다고 아파트 전체를 새로 짓는 게 합리적인가? 전문가들은 대부분 터무니없는 결정이라고 한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불안하면 정밀안전검사를 하면 된다. ‘엑스레이’로 인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처럼 건축물 내부도 ‘비파괴검사’를 통해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철근 누락은 물론 내부 균열 등을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고, 콘크리트 압축 강도 등 건축물 안전과 관련된 다양한 검사를 할 수 있다. 찝찝하다고 멀쩡한 건축물을 부수는 건 사실 ‘비이성적’이다.
온라인에 떠도는 이야기 중엔 지하주차장 위로 아파트 주거동이 올라와 있는 경우 주저앉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괴담이다. 구조기술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지하주차장 위 고층 아파트가 세워져 있는 구조라면 설계를 할 때 하중을 분산한다. 주거동이 받는 하중과 지하주차장 하중을 별개로 작용하게 골조를 시공 한다. 여기에 지진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지진하중’까지 추가로 고려한다. 우리나라는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2017년 2월부터 3층 이상 또는 500㎡ 이상 모든 건축물에 내진 설계를 의무화했다. 한마디로 쉽게 무너질 건축물이 아니라는 거다.
▶무량판 구조는 다 나쁜가?= 국토부는 향후 전국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아파트 293곳을 전수조사하겠다고 한다. 이중 몇몇 단지는 지하주차장 뿐 아니라 아파트 주거동도 무량판 구조로 지었다고 알려져 입주자나 입주예정자들을 더 불안하게 하는데,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단 아파트 주거동이 무량판 구조라고 알려진 단지를 확인해 보면 대부분 100% 무량판 구조가 아니다. 벽식과 무량판을 혼합한 형태가 대부분이다. 무량판으로 지으면 층고를 높일 수 있고, 층간소음이 덜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적용한 형태가 일반적이다. 건설사들은 한때 이런 장점을 내세우며 무량판 구조로 시공했다는 걸 홍보에 활용하기도 했다. 무량판 구조가 일부 적용됐다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엄밀히 말하면 무량판 구조는 그 자체로 잘못이 없다. 전단보강근만 제대로 설치하면 아무 문제가 안된다. 제대로 지어서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는 무량판 구조 건축물이 백화점 등 상업시설엔 무수히 많다. 진짜 문제는 전단보강근을 설계에서 빼먹고, 시공에서 건너뛰고, 감리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시스템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무량판 구조에 대한 불안감을 확산 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무량판 구조 시공 결함을 대한민국 아파트 전체의 문제처럼 느끼도록 국토부가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오해가 없도록 무량판 구조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해 막연한 불안감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감리 체계를 강화하는 등 제대로 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가장 시급할 것이다.
박일한 기자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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