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경계해야 할 3대 오류[시평]

2023. 8. 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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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여야 8개월 앞 총선 대비 집중
與는 尹 역할, 野는 李 리스크
현역 의원은 공천 받기 총력전
다선 험지 출마論 타당성 없고
무조건 신인 우대도 비합리적
개인 명예회복 수단돼선 안 돼

정치권은 이미 내년 4·10 총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총선 승리를 위해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원팀을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총선에 얼마나 부담이 될 것인지를 계산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현직 의원들은 공천을 보장받기 위해 눈치 보기에 바쁘다.

총선과 관련해 오랫동안 당연하게 생각해온 몇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는 이른바 당내 개혁파들이 단골 메뉴로 들고나오는 ‘다선 의원들은 험지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역주의에 안주하고 있는 노회한 정치인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현직 의원이 지역구를 잘 관리하고 의정 활동에 문제가 없는데 다선 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승리가 불투명한 새 선거구로 옮기라는 압박은 타당하지 않다. 선당후사(先黨後私)를 말하지만, 정계 은퇴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선거 승리가 전부인 의원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고, 결국 공천 갈등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둘째, 새로운 인물의 충원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현직 의원 이점을 고려할 때 당내 경선에서 신인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런데 공천 원칙에 무조건 현역 의원의 일정 비율을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은 타당치 않다. 초선 의원이 많아지면 국회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건 착각일 따름이다. 국회의 문제는 다선 의원들 때문이며 정치 신인이 많이 포진하면 국회가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제21대 국회에서 초선 의원이 156명이다. 절반이 훨씬 넘는다. 제15대 총선 이후 초선 의원 비율이 40%보다 낮았던 적이 없다. 심지어 제17대 국회에서는 초선 비율이 62.5%였다. 의원 개인들의 비리뉴스를 보면서 새 인물로 교체되면 국회가 나아질 것처럼 생각되지만, 국회의 문제는 의원 개인이 아닌 대통령과 국회 관계 그리고 정당 간의 신뢰 등 구조적인 문제다. 참고로 역대 미국 하원에서 초선 비율은 20% 미만이다. 현직 재선율이 80%가 훨씬 넘어도 다선 의원이 많아서 의회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찾아볼 수 없다.

셋째, 총선을 개인적 명예회복 기회로 이용하는 부당함을 경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의 적폐 청산을 강하게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사법적 처벌 대상이었던 인물 중 일부가 출마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당선되면 이들은 자신이 받았던 처벌이 부당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를 개인적 영달과 욕망의 기회로 삼겠다는 반민주주의적 생각이다.

위에서 언급한 정치적 착각들은 개별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정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당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운영돼 왔다면 다선 의원들의 역할과 정치 신인 충원의 기회가 균형을 맞출 수 있고, 따라서 인적 충원에 대한 인위적 간섭의 필요가 없다. 또,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외부 인재 영입이라는 이벤트도 결국은 정당이 정치 엘리트를 제대로 육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정당은 타 정당과의 갈등 심화를 통해 에너지를 얻고 연명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지자 결집 역시 당의 정체성과 정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대 정당에 대한 적대감을 조장하는 전략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로 정치가 사회 갈등을 공식화하고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모색하는 기능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상호 존중은 사라진 지 오래고 무조건적 반대와 의혹 제기를 통해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 일상화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지난 7월 말까지 개정해야 할 공직선거법의 일부 조항도 정당 간 이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총선은 8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제도 개정의 미래는 암담하다. 국민 대다수가 요구하는 위성정당 방지대책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실정이다. 의원정수와 선거구 크기 등 정당들의 이해가 걸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이 된다. 이런 무능한 정당들이 또 천연덕스럽게 표를 호소할 것이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의회를 포함한) 정부를 가진다는 알렉시 드 토크빌의 말이 한국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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