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 솔밭 ‘그림 같은 집’의 비밀 [디자인플러스]

2023. 8. 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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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풍경을 존중하는 건축 디자인 원계연·이제선 스튜디오더원 소장
솔밭 집 ‘감솔채’·책 향기 그윽한 ‘서향각’
반외부공간 건축으로 기존의 풍경 존중
“숨통 틔운 건물, 거주자 건강한 삶 도와”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단독주택 ‘감솔채’ 전경 [박완순 건축사진작가 제공]

“참 재미있는 게 단독주택을 의뢰하는 건축주분들을 집 지을 땅을 결정하기 직전에 찾아오세요. 그럼 저희는 너무 반갑죠! 이 작품의 건축주와도 땅 고르는 작업부터 같이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대지에서 다 같이 캠핑도 했고요.”(원계연 스튜디오더원 소장)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떤 방법이든 땅을 훼손하게 된다. 결국 자연과 교감하되 자연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건축사무소 스튜디오더원의 원계연·이제선 부부 건축사는 이 두 가지 욕망의 적절한 접점을 찾는 것을 자연 속에 집을 지을 때의 좌표로 삼았다. 강원도 토박이인 부부가 자연을 존중하고, 거주자의 건강한 삶을 그려주는 방식이다.

지난달 27일 강원도 원주 스튜디오더원 사무실에서 이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단독주택, 공공건축물 등 다양한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기존의 풍경을 존중하는 건축’이다. 이는 한옥의 대청마루처럼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반(半) 외부공간’을 통해 완성된다. 개방된 공간을 둬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며, 더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야외 활동과 자연을 좋아하는 건축주가 잘 놀고, 잘 쉬기 위해 만든 집 ‘감솔채’가 대표적이다. 고성군에 위치한 이 단독주택은 철근콘크리트조와 목구조로 이뤄졌다. 원 건축사는 집 지을 땅을 찾아가 본 뒤 ‘이 땅의 언덕과 소나무에 손을 대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건축주와 하룻밤 캠핑을 하며 그런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집터에 건축물이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래서 건축주에게 동의를 구해 언덕 부분은 집의 뒷마당으로 남겨 기존 집터의 형상을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 소나무가 심겨진 부분을 고려해 단 한 그루도 베지 않을 수 있게 설계하고, 내부 공간도 기존 지형을 순응하게 했다. 그래서 마치 소나무와 함께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킨 듯한 ‘솔밭의 집’이 완성됐다. 마치 산에 ‘슥 끼어든 듯한’ 모습을 의도했다고 한다.

이 집의 반외부공간은 대청마루가 떠오르는 공간이다. 두 마당을 나누기도, 이어주기도 하며 안과 밖을 연결한다. 반외부공간인 노천탕에선 소나무가 우뚝 서 있는 마당과 멀리 산을 볼 수 있다. 이런 공간이 이들 부부가 가장 공을 들인 지점이다. 뚜렷한 용도가 없고 보기에 따라 실용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숨구멍을 트이게 해주는 공간. 오히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장 다양한 용도가 생길 수도 있다.

“대청 같은 공간들이 현대 건축으로 오며 어느 순간 뚝 다 사라졌어요. 그렇게 대단한 의지로 ‘뭘 되살리겠다’ 이런 건 아닌데, 땅에 어울리는 건축물을 하려고 고민했죠. 저희가 시골 사람들이라 그런지 저런 공간이 그냥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실내와 외부의 강한 경계를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자연과 소통하고 싶은 분들에게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아요. 비 오는 날 운치 있다고 많이 말씀해 주세요.”

원주 단독주택 서향각의 대청과 구들방 [박완순 건축사진작가 제공]

산속 외딴 ‘놀집’이 아닌 동네 한복판의 ‘살림집’ 또한 이런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원주에 있는 나지막한 단독주택 ‘서향각’은 대청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살림 공간, 오른편에는 별채가 있다. 이 집도 자연과 포근히 어우러지는 경량 목구조다. ‘책의 향기가 있는 집’이란 이름처럼 별채는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재로 꾸며졌다. 두 공간 사이에는 대청, 쪽마루 등 반외부공간이 마련됐다.

최근에는 늦은 밤 살림 공간에서 서재를 오갈 때 닫아 외부공간과 차단할 수 있는 문을 달았다. 대청 공간의 개방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미닫이와 여닫이를 복합한 안고지기 방식을 활용했다. 일반적인 문짝을 달기엔 ‘이 집이 너무 아까워서’ 디자인을 1년이나 고민해 결정한 방식이다. 지붕 아래까지 처마가 길게 내려온 모습은 한옥을 닮았다. 원 소장은 “집을 같이 작업한 분 중 한옥 목수 출신이신 분 덕에 전통 한옥의 대청이 (설계에) 반영됐다. 어떤 분과 시공하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자연과 일상의 화합에 공들이는 만큼, 가장 보람 있는 순간도 건축주가 집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 집이 사람을 닮아갈 때다, “가끔씩 연락이 와서 대청에서 빗소리를 듣고 있다며 ‘나 너무 잘 살고 있다, 고맙다’고 표현해 주세요. 너무 고맙죠. 그게 가장 큰 보람이에요. 또, 집이 사는 사람에게 조금씩 맞춰 변해가는 것도 생명력을 갖는 방법 같아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예쁘게 변화하고 자라나고 있는 거죠.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을 볼 때도 기분이 좋습니다.”

건축사무소 ‘스튜디오더원’의 원계연(왼쪽)·이제선 소장 [원계연 소장 제공]

원계연·이제선 소장은 집을 넘어 공공건축에서도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공간, 친환경적 목구조를 적용하는 것에 도전하고 있다. 일례로 ‘춘천 지역먹거리 직매장’은 춘천시에서 발주한 설계공모에 목구조 건축물을 제안해 당선된 프로젝트다. 당초 공모지침에는 목구조를 권유하지 않았지만, 건축물의 용도가 목구조 건축물과 어울렸다고 판단해 구조적인 실험에 도전했다.

이들은 한국 목구조 전반적인 상황과 경험으로 구조기술사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고 봤고, 이 부분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우연한 계기로 단독주택에 목구조를 적용하다 보니 너무 매력적이었죠. 공공건축으로 넘어오면서 구조적인 실험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도전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이제 전 세계적으로 탄소를 저장하는 목재가 많이 쓰이고 있어요. 탄소중립 실현의 방법이 목구조 적용이 된 거죠. 아주 작지만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가장 돋보이는 점은 건물의 중앙에 반외부공간인 옥외데크를 배치했다는 것이다. 풍경을 차단하지 않는 트인 공간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에 어울리는 공간이 됐다. 또, 주변 건축물과 비교해 덩치가 커질 수밖에 없어 위압감을 주지 않고 인근 주거지 스카이라인을 고려해 단층으로 구성했다.

지붕 형상도 건축물처럼 원초적이고 기능적인 박공으로 구성했다. 원계연·이제선 소장은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노하우를 얻게 됐다고 전했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모든 걸 쏟아부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동료 설계자, 구조기술사, 공공기관 등 건축주에게 목구조 건축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신호를 전달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무려 5개의 프로그램(어린이집, 헬스케어센터, 청춘살롱(노인정), 작은도서관, 다목적실)을 갖춘 춘천 ‘교동살롱’ 또한 폐쇄적인 관공서 건축물이 아니라, 마을과 어우러지는 공간이 될 수 있게 했다. 경사지에 조성된 마을에 위치한 이곳은 마을의 ‘골목길’이 되고, 커뮤니티 형성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게 설계 목표였다. 우선 건축물로의 진입동선과 각 공간 간 이동 동선은 동네 주변 골목길의 연장 선상으로 계획했다. 이 마을은 10여년 전 노후불량주택 철거가 이뤄지며 골목길도 사라졌다고 한다. 비탈마을의 경사를 활용해 골목길을 되살리고, 각 공간을 찾는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만날 수 있게 했다.

마을 단위 커뮤니티 공간을 재해석해, 이웃 간 소통할 수 있는 정다운 공간도 구석구석 배치했다. 2개 동으로 구성된 교동살롱의 중심공간에는 A동 2층 옥외데크엔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형상화한 기둥을 설치했다. 기둥 주변으로 건물을 통하는 모든 동선이 중첩된다. 이 주변에 특별한 용도가 없는 넉넉한 공간을 할애해, 마치 느티나무 그늘 아래 평상이 떠오르는 곳을 만들었다. 청춘살롱 앞 통로에는 어르신들이 쉴 수 있는 벤치를 마련했고, 비탈길 옆에는 텃밭이 심어졌다.

다양한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자연에 대한 존중, 그리고 다양성과 자율성을 갖춘 공간이다. 어떻게 보면 효율성 측면에선 건축물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공간’이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건축물의 규모, 도시 규모가 커질수록 밀도가 높아져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뚜렷해지는 건축물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부분(반외부공간)을 통해 외부와 내부가 다양한 관계로 만난다면, 거주자의 삶 또한 다양하고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더 책임감을 느끼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이 많습니다.” 고은결 기자

k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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