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에 세수부족까지… ‘딜레마’에 부딪힌 부동산 규제완화
40조 세수펑크… “정부, 부동산 세제개편 속도조절”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추진했던 부동산 규제완화가 속도조절에 들어갈 분위기다.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정책상품을 출시하고 대출 문턱을 낮추면서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금리를 결정짓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가계부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규제를 빠른 속도로 완화하면서 세수부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부동산 세제 정상화’를 국정과제로 내걸고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등을 개편해 왔다. 부동산 규제완화 추진 속도를 조절하면서 부동산 시장을 포함한 경제 여건을 지켜볼 가능성이 커졌다.
◇”대출완화가 가계빚 늘려”… 한은 금통위도 “가계부채 우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가 역대 최고치를 찍자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에 속도조절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잔액은 6월말 기준 1062조원으로,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가계부채는 지난 4월부터 석 달 연속 늘었다.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올해 1분기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2.2%로 주요 34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그 배경으로 부동산 연착륙에 초점을 맞춘 대출 규제 완화가 지목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해 12월 투기·투기과열지구 15억원 초과 아파트에도 주택담보대출이 허용됐고, 무주택자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50%로 일원화됐다. 올해 1월에는 고정금리 정책자금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했다. 집값이 9억원 이하라면 누구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상관없이 5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특례보금자리론 심사를 통과한 대출은 3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달 27일부터 집주인의 전세자금 반환 목적 대출에 한해 DSR 규제가 해제됐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를 결정짓는 한은 금통위에서도 정부의 규제완화를 언급하며 가계부채 증가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은이 지난 1일 공개한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들은 “부동산·대출규제 완화의 영향으로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상당폭 확대된 점이 우려스럽다”, “물가 불안, 금융불균형 리스크 확산시에는 추가 금리 인상을 통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 등의 의견을 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올초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시기를 좀 더 길게 가져갔어야 한다”면서 “규제완화 영향으로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되면 가계부채 총액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정과제로 내건 ‘세제개편’… 40조 ‘세수펑크’에 속도조절
정부의 ‘부동산 관련 세제개편’은 올해 세수가 부족한 배경 중 하나로 꼽혔다. 올해 상반기 국세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조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6월 누계 국세수입은 178조5000억원으로 전년 같은기간보다 39조7000억원(-18.2%) 감소했다. 6월 기준 국세 수입 예산 대비 진도율 또한 44.6%에 그쳐, 지난해 6월(55.1%)에 비해 크게 못 미쳤다.
윤석열 정부는 ‘안정적 주거를 위한 부동산세제 정상화’를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정하고 속도감 있게 밀어부쳤다. 종부세에 대해서는 다주택자 중과를 완화했고, 기본공제를 확대했다. 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인하해 종부세 부담을 덜었다. 양도세를 두고서는 다주택자 중과를 한시적으로 유예했고, 일시적 2주택자에 대한 비과세 요건을 완화했다.
정부는 당장의 ‘세수 펑크’에 부동산 관련 세제개편 속도조절에 들어갔다. 지난달 27일에 발표한 올해 세법개정안에 부동산 관련 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에 지금 한시적으로 유예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완전 폐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설명회에서 “부동산 세제를 큰 틀에서 구조적으로 바꿀 필요성이나 긴급성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규제 완화 기조 그 자체는 바뀌지 않겠지만 경제상황을 점검하고 지켜보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전국의 집값이 반등하고 있는데 일시적인 반등인지를 우선적으로 지켜볼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주택가격이 상승한 만큼 주담대 여력이 확대되고 있어, 거시경제 여건에 대해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 “지금과 같은 시기에 주택시장이 저점을 확인하는 과정이냐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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