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도 혼자도 강했다…음악계 어벤저스 ‘고잉홈 프로젝트’ [고승희의 리와인드]
14개국 40개 악단 활약 연주자 한 자리에
1일 시작해 3일 ‘심포닉 댄스’로 마지막 공연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0분 안팎의 짧은 협주곡들이 이어졌다. 이날의 주제는 ‘볼레로 : 더 갈라’. 각각의 곡들은 산뜻하게 나풀거리다가도 난데없는 울적함이 찾아들었고, 감추지 못한 그 감정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더니 이내 명랑하게 일어서 춤을 췄다. 매 협주곡마다 오케스트라 단원 한 명 한 명이 협연자로 나섰다. 굳이 무대 앞으로 나오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 선 채 이어진 연주가 유려했다. 자신을 양보한 오케스트라 합주에선 들을 수 없던 화려한 개인기였다.
올해도 ‘고잉홈 프로젝트’가 돌아왔다. 한국을 떠나 14개국 40개 명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연주자 80여명이 뭉친 악단이다. 한국인 연주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원 중 일부는 외국인이다. ‘고잉홈’의 ‘홈’이 집의 개념을 넘어, ‘음악’이자 ‘가족’의 개념으로 확장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2021년 12월 창단, 지난해 첫 연주회를 갖고 다시 돌아온 ‘고잉홈 프로젝트’는 지난 1일부터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1일 ‘신세계’, 2일 ‘볼레로:더 갈라’ 공연을 마쳤고, 3일 ‘심포닉 댄스’를 앞두고 있다.
‘고잉홈 프로젝트’는 여러 면에서 특별하다. 이 악단은 2018년 당시 손열음이 예술감독으로 있던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전 세계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들과 함께 결성한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인연으로 확장됐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아쉬움, 음악을 통해 나눈 끈끈한 유대감, 타국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라는 공감대가 이들이 다시 뭉친 원동력이었다.
유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연주자이다 보니 단원들이 면면이 상당히 화려하다. ‘음악계 어벤저스’를 방불케 한다. 오래도록 명문 악단에서 닦아온 음악적 역량으로 눈빛만 봐도 완벽한 합을 이루는 실력파들이다.
고잉홈 프로젝트가 독특한 것은 악단의 연주회가 기존 오케스트라의 규정을 벗어났다는 점이다. 이 악단은 교향곡을 연주하지만, 지휘자가 없다. 지난해 창단 연주회에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지휘 없이 선보였다. 올해도 지휘자가 함께 하는 무대와 지휘자가 없는 무대가 공존한다.
‘볼레로: 더 갈라’는 고잉홈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그리그의 ‘심포닉 댄스’와 라벨의 ‘볼레로’를 지휘 없이 연주하며 함께 하는 조화로움을 살렸고, 협주곡을 통해 개개인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줬다.
10분 정도로 축약해 태어난 12곡의 향연에선 내로라하는 해외 악단에서 활약하는 연주자들의 현란한 드리블을 볼 수 있었다. 드라마틱한 감정선을 따뜻한 음색으로 선명히 들려주는 바수니스트 유성권(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산뜻하고 경쾌하나, 가볍지만은 않은 음색의 플루티스트 조성현(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종신 수석 역임), 깊이있는 화려함의 첼리스트 김두민(뒤셀도르트 심포니 종신 수석 역임), 유려하고 거침없는 선율의 첼리스트 문웅휘(코부르크 극장 오케스트라), 섬세하면서도 귀여운 씩씩함을 지닌 트럼페터 알렉상드르 바티, 화려한 기교의 정점을 보여준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린 일리에스쿠(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와 스베틀린 루세브(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 악장 역임)…. 협연자가 된 단원 한 명 한 명은 능수능란한 ‘밀당’(밀고 당기기)으로 음악을 가지고 놀았다. 음표 하나하나가 만나 관계를 맺어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이들 한 명 한 명이 모여 새로운 음악 세계를 만들어갔다.
이날의 공연에선 특별한 관전 포인트도 있었다. ‘고잉홈 프로젝트’ 아이디어의 모태가 된 손열음 역시 솔리스트가 아닌 악단 연주자 중 한 명으로 무대에 섰다. 하프시코드부터 피아노, 첼레스타까지 종횡무진했고, 연주가 없을 땐 퇴장하지 않고 악단의 빈 자리에 앉아 동료들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리허설까지 마친 상황에서 호르니스트 김홍박이 건강 문제로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플루티스트 조성현은 “공연 한 시간 전에 극적으로 승낙해 성사된 무대”라며 클라리네티스트 발렌틴 우류핀과 조인혁(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종신 수석 역임)이 연주하는 멘델스존의 두 대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소개했다. ‘고잉홈 프로젝트’의 3일차 공연에서 지휘를 맡은 발렌틴 우류핀의 이른 등판이었다. 충분한 리허설도 갖지 못한 변수였음에도 두 사람의 클라리넷은 서로 얽혀 소리를 쌓으며 인상적인 ‘대타’ 연주를 들려줬다.
두 번의 연주회를 마친 ‘고잉홈 프로젝트’ 발렌틴 우류핀이 지휘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와 오보이스트 함경이 함께 하는 오보에 협주곡 ‘스피릿 오브 더 와일드’(3일, 롯데콘서트홀)로 마침표를 찍는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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