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짓눌렀던 어린 시절, 스토리텔러 자양분 됐죠”
스포츠·저승 판타지 이어 우주 SF에 도전
“희로애락 녹아들어야 대중적 스토리 탄생
형식·내용 조화 잘 이루는 감독 되고 싶어”
“용서를 하는 마음보다 용서를 구하는 용기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신과 함께’도 이러한 주제로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로 뭔가 해소가 되지 않았어요. 아쉬운 마음에 우주라는 공간에서 용서와 위로를 다룬 겁니다. 재국(설경구)의 연기를 보면서 (제 맘이) 해소됐죠.”
김용화 감독은 지난달 28일 서울 삼청동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영화 ‘더 문’을 연출한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김 감독은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로 흥행에 성공한 데 이어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 신화를 쓴 흥행 전문 감독이다.
저승에서 인간의 용서와 위로를 그린 김 감독은 이번에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택했다. ‘더 문’은 유인 달 탐사선의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달에 홀로 남겨진 우주 대원 황선우(도경수)의 생존 여정과 그를 구하려는 이들의 필사적인 노력을 그린다.
▶스포츠·저승 판타지 이어 우주 SF...끝 없는 도전=그는 이번에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김 감독은 앞서 ‘국가대표’와 ‘신과 함께’ 등을 통해 스포츠 영화나 판타지는 한국에선 어렵다는 편견을 보란 듯 깼다. 이번엔 ‘더 문’으로 우리나라가 우주 SF(Science Fiction)의 불모지라는 편견에 또다시 도전장을 낸 셈이다. 그는 “도전하지 않으면 담보되는 것이 없는 반면 뭔가를 뛰어 넘었을 때의 보상은 더 크게 주어진다”며 “창작의 고통은 있지만 남들과 똑같이 해선 나아질 확률은 적다”고 강조했다.
‘신과 함께’에서 저승을 배경으로 압도적인 시각특수효과(VFX) 기술을 선보였던 김 감독은 이번에 할리우드 영화에 버금가는 우주 세계를 보여준다. 광활하고 서늘한 달에 안착하는 모습부터 달 표면으로 쏟아지는 유성우와 우주의 중력 세계까지 사실적으로 그린다. 더 문의 제작비는 286억원. 이 가운데 VFX에 61억원을 투자했다. 우리나라에선 대작으로 여겨지는 큰 비용이지만 할리우드 우주 영화 제작비가 최소 1억달러가 투입되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그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려고 했다.
김 감독은 “같은 스토리여도 공간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우주와 같은 절대적으로 절박한 공간에서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했을 때 감정적인 충만이 훨씬 크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은 소품 하나 하나도 고증을 거쳤다. VFX팀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으로부터 자문을 받아 프리 비주얼 작업에만 6개월 이상을 투자했다. 월면차는 달에서 실제로 운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제작했고, 우주선 세트 역시 실물에 가깝게 만들었다. 700개에 가까운 오디오 채널을 통해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우주 공간이나 황선우의 귀에 울리는 발자국 소리 등 사운드의 생동감도 높였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 SF도 다이나믹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더 문’은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만든 작품”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감독상 앞에 무너졌다...그가 펑펑 운 이유=우주의 사실적인 고증이 한 축이라면, 주인공들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 서사는 영화의 또 다른 축이다. 주인공들 사이엔 복잡한 인연이 얽혀 있다. 영화에서 김재국이 생존의 기로에 놓인 황선우에게 결정적인 과거사를 꺼내며 감정을 쏟아낸다. 용서를 구하고 위로 받는 장면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가 ‘신과 함께’에 이어 ‘더 문’에서도 용서와 위로의 메시지를 다룬 배경에는 그의 개인사가 크게 작용했다. 김 감독은 애초 영화 감독이란 꿈을 꿨을 때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감독으로서 경제적 자립을 이루겠다는 것과 관객들을 기쁘게 하면서 감독상을 받겠다는 것. 다행히 그는 목표를 예상보다 빠르게 성취했다. 그의 세 번째 작품인 ‘국가대표’로 감독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휩쓴 것. 그는 모든 상패와 돈을 책상에 올려두고선 펑펑 울었다. 기쁘기보단 허무해서다.
김 감독은 “상패들과 돈을 보니 인생이 너무 허무했다”며 “‘내가 겨우 이거 받으려고 좋은 사람인 척, 효자인 척하고 살며, 주변 사람들의 도움 요청을 모른 척하고 위기를 피했나’라는 후회가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 때부터 그는 용서, 구원, 위로로 영화의 방향을 틀었다. 특히 용서 그 자체보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용기에 무게를 뒀다. ‘신과 함께’ 시리즈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용서와 위로인 것도 이 때문이다. ‘신과 함께’ 1편에서 수홍(김동욱)이 청각 장애인 홀어머니에게 눈물의 수화로 애정과 절절함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의 마음이 담긴 대표적인 장면이다.
사실 김 감독은 효자였다. 어머니는 간경화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각혈을 하거나 쓰러지길 반복했고, 아버지는 뇌출혈로 몸 한 쪽의 거동이 불편했다. 한 번도 부모가 건강했던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는 어머니가 의식불명에 빠져 돌아가실 때까지 병수발과 병원비를 책임졌다. 그러나 여전히 스스로를 불효자라고 여긴다.
그는 “어머니가 고통으로 괴로워하시거나 의식이 없으셨을 때는 ‘어쩌면 어머니 입장에선 빨리 돌아가시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며 “외부에선 나를 효자라고 평가했지만 실제로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불안이 짓눌렀던 어린 시절...스토리텔러로 변신한 계기=어두웠던 어린 시절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감독 생활의 자양분이 됐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언젠가 그를 떠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이를 잊기 위해 그는 학교에서 재미난 이야기로 친구들을 웃기기 시작했다. 하루는 만담꾼으로 변신했다가 다른 날엔 소설가로 변하는 식이었다. 그는 점점 스토리텔링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김 감독은 “기쁨 속의 슬픔, 성공 속의 좌절, 좌절 속의 희망 등 감정적인 레이어가 다층적으로 구성돼 있어야만 대중적인 스토리가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더 문’ 이후 여러 차기작을 검토 중인 가운데 ‘신과 함께’의 3·4편을 준비 중이다.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잘 이루는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김 감독은 차기작에도 여전히 회한과 용서의 메시지를 담을 예정이다.
“사는 동안 감정적으로 충만해지려면 그동안 살면서 저지른 많은 실수들에 대해 미안하다고 용기 내어 사과해보세요. 상대방이 본인을 바라보는 눈빛부터 달라지고, 사회적 관계도 매우 좋아집니다.” 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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