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기침체’ 대신 ‘부채’ 공포…금융혼란 시한폭탄 되나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자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가 글로벌 금융 시장을 뒤흔들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문제는 하루 이틀된 사실이 아지만 이번 강등이 그동안 외면해왔던 재정적자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셈이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1년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낮췄을 당시 연준을 이끌던 밴 버냉키 의장이 일찌감치 미국의 재정문제를 지적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이번 피치의 강등 조치로 재정 압박은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기간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추진 과정에서 씀씀이가 대폭 커졌다. 여기에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지난해 3월 이후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면서 미 정부의 재정적자 이자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피치는 2025년까지 미국의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18%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AAA등급 국가의 중간값인 39%를 3배 가량 웃도는 수치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부담해야 할 이자도 불어나고 있다. 미 의회예산처(CBO)에 따르면 2024회계연도에 미 정부가 갚아야할 순이자는 국방을 제외한 전체 재량지출의 약 4분의 3에 달하는 74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자를 내고 나면 정부가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재정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 운신의 폭이 줄 수 밖에 없다.
물론 미국은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비자발적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리는 없다. 하지만 재정 안정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돈을 마구 찍어내는 식의 정치적 재앙에 가까운 조치 없이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고 WSJ은 지적했다.
LPL파이낸셜의 퀸시 크로스비 수석 전략가는 블룸버그통신에 “궁극적으로 적자를 억제하지 못하면 미국 경제의 엔진인 소비자의 재량소득이 상당히 줄어들 정도로 세금을 인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용 강등 소식이 나온 날 미 재무부는 3분기 동안 1조30억달러의 국채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5월 발표한 차입계획인 7330억달러보다 훨씬 많은 것이며, 9000억달러 수준일 것이란 시장 전망을 웃돈 것이다.
이는 신용등급 강등 소식과 맞물리며 미 국채 시장을 흔들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10베이시스포인트(bp) 상승한 4.12%까지 오르며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높이 올랐다. 30년물은 4.2%로, 약 9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2년물은 4.88%로, 장단기 금리 역전폭은 80베이시스포인트(bp)에 달했다.
다행인 것은 2011년과 달리 매크로 환경은 우호적이고 미국의 경제 체력은 튼튼하기 때문에 당장 시장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12년 전보단 덜하다는 것이다. 2011년 S&P가 강등을 단행할 땐 금융위기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글로벌 경기가 유로존 재정위기로 재차 하강 우려에 시달리면서 신용 위험 확산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CLI)가 7개월 연속 상승하며 글로벌 경기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견조한 고용지표 속 7월 ISM제조업지수가 46.6로 전월(46.0)보다 반등하는 등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췄단 안도감 속에 경착륙은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하다.
또 S&P의 신용등급 하향에도 꾸준히 미 국채가 ‘안전자산’의 지위를 유지하며 얻은 학습효과도 이번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 파장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실제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로 낮춘 뒤에도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미국 정부 보증’ 조건이 달린 채권을 사실상 AAA등급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CNBC 인터뷰에서 “미국은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번영하는 국가이고 가장 안전한 국가”라며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AAA등급을 받는 것은 웃긴 일”이라고 밝혔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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