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에 자원봉사 발길 '뚝'…'땀'으로 26년 이어온 무료급식소
땀에 흠뻑 젖고 한증막 같은 더위에도 자원봉사자 "뿌듯해"
(대전=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물에서 나온 것처럼 옷이 땀으로 흠뻑 다 젖어도 좋아요. 찜질방 갈 돈도 아끼고 좋죠 뭐."
지난 2일 오후 늦은 저녁, 대전 동구 벧엘의집에서 무료급식소 설거지까지 마친 자원봉사자 김다혜(33)씨는 땀이 뚝뚝 흐르는 얼굴로 활짝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노숙인 자활보호시설 벧엘의집의 무료급식소 자원봉사를 1년이 넘도록 한 번도 빠짐 없이 참여하고 있다.
봉사에 도가 튼 김씨와 26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무료급식소에도 여름은 여러모로 힘든 계절이다.
더운 날씨에 무료급식을 준비하기도 고되지만, 자원봉사자 수도 급감한다.
100%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만큼 후원이 많이 몰리는 연말에 비해 여름은 재정적으로도 어렵다.
벧엘의집 권용준 목사는 "폭염은 배식받는 노숙인들을 힘들게도 하지만, 기관에서도 자원봉사자 모집에 어려움이 있다"며 "여름에는 자원봉사자 수가 반으로 확 줄기도 하고 연말보다 후원도 적어 쉽지는 않지만 힘들면 힘든 대로 어떻게든 운영을 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오후 8시마다 열리는 대전역 서광장 무료급식소는 노숙인들과의 약속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 직원들은 센터 식당에서 오후 2시 30분부터 준비를 시작한다.
좁은 조리공간에서 따뜻한 밥과 국, 김치, 무침류 반찬, 조림용 반찬 180인분을 만들어낸다.
이곳에서 일한 지 2년이 넘은 50대 취사원은 "땀이 많이 나다 보니 여름이 아무래도 제일 힘들다"고 토로했다.
같이 일하는 여성 취사원도 좁은 조리실에서 나와 식당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땀을 닦아내며 "불 앞에 계속 있어야 하니까 너무 덥다"고 말했다.
조리공간에서는 선풍기 3대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화구의 센 화력과 이날처럼 푹푹 찌는 날씨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식당 내부에 에어컨이 있지만, 5평 남짓한 조리실의 열기 때문에 이날 에어컨 실내온도는 33도에서 내려가질 않았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35도를 기록했지만 사방이 막혀있는 좁은 공간에서 불 앞에 있어야 하는 이들의 체감온도는 이를 훨씬 웃돌았다.
센터 자활노숙인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정리를 마치면 7명의 자원봉사자가 오후 7시 30분 준비된 음식을 트럭에 싣는다.
햇볕은 낮보다 약해졌지만 찜통 같은 더위는 몸에 찰싹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어휴 어지러워."
음식을 트럭에 싣던 한 직원이 잠시 가만히 서서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며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습한 더위를 헤쳐가며 오후 7시 50분에 도착한 대전역 서광장에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무료급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노숙인들의 줄이 길에 늘어섰다. 그 바닥에는 돌멩이가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이들은 오후 6시부터 이곳에 줄을 선다고 한다. 바닥 위의 돌멩이는 '여기가 내 자리'라는 일종의 표시석이다.
배식받기 위해 대기 줄을 선 50대 여성 노숙인은 "어차피 매번 여기(역 광장)에 나와 있으니까 밥때가 되면 오후 6시부터 줄을 선다. 늦게 먹으면 밥이 떨어질까 무서워서"라고 말했다.
줄을 선 이들은 저마다 부채와 수건, 모자 등으로 더위를 쫓아내려 했지만 얼굴과 목덜미에는 숨길 수 없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오후 8시가 되면서 해는 거의 저물었지만 한증막에 있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끈적임이 온몸에 가득했다.
노숙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끈적해진 피부에 커다란 모기가 연신 달려들기도 했다.
너무 더우면 급식 인원도 준다고 하는데 이날이 그런 날이었다.
60대 한 여성 노숙인은 "나는 더워서 시설로 들어갔어. 이 사람들(노숙인)도 더우니까 (무료급식 줄이) 많이 줄긴 줄었네"라고 설명했다.
모자를 쓰고 부채질을 하던 한 80대 노숙인은 "이렇게 한 끼 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그러니까 더워도 매번 줄을 서서 밥 먹으러 오는 거지. 고마워 정말"이라며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다.
무료급식이 끝나도 자원봉사자들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사용한 모든 식기구를 설거지하고 조리실도 청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방수 앞치마를 두르고 비닐장갑을 낀 손 위에 고무장갑을 꼈다.
음식물이 묻어 있는 배식판은 뜨거운 물에 담가놔야 하는데 안 그래도 좁아 더운 조리실에 뜨거운 물까지 틀어져 있으니 말 그대로 찜질방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뜨거운 물로 한 번 설거지한 배식판은 식기세척기에 한 번 더 돌린다.
식기세척기에서 나온 배식판은 모락모락 김이 피어난다.
좁은 공간에서 세 사람이 함께 움직이며 설거지를 하고 있으니 열기가 배가 됐다.
어느새 땀으로 젖은 티셔츠는 피부에 밀착되고 이들의 머리, 얼굴, 팔은 땀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김씨의 말처럼 온몸에 숨어있던 땀이 한꺼번에 방출되는 듯한 극한의 습함이었다.
청소까지 다 마친 뒤 고무장갑과 비닐장갑을 벗으니 손에 고여있던 땀이 바닥에 줄줄 떨어졌다.
땀에 흠뻑 절여진 손은 수영하고 나온 듯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그래도 이들의 표정은 땀으로 빛나는 피부만큼이나 반짝였다.
활짝 웃어 보이던 한 자원봉사자는 "그래도 이 맛에 봉사하죠. 땀 흘리고 집 가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라고 했다.
벧엘의집 원용철 담임목사는 "자원봉사자들의 소중한 마음과 후원 덕분에 더운 여름에도 힘들지만 무료급식을 지금까지 운영해나갈 수 있었다"며 "비가 올 때나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무료급식소를 찾아주는 노숙인들에게도 자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앞으로도 이들과의 약속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sw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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