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밀어낸 한국발 ‘초전도체’…전 세계 동시다발 검증
상온과 상압(보통 대기압) 환경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내용을 담은 한국 연구진의 최근 논문을 둘러싸고 국제 과학계가 한바탕 술렁이고 있다.
‘꿈의 물질’이 개발됐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초전도체가 온라인 소통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올랐다. 기술 전문매체 ‘와이어드’는 소셜미디어 트위터(현 엑스)와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서 챗지피티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이 사라지고 응집물질물리학(초전도체)이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으며 온라인 베팅 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고 전했다.
관련 연구자들이 저마다의 해석과 평가, 추측을 소셜미디어 등에 쏟아내고 증시에선 관련 기업 주식들이 들썩이는 등 과열 양상이 벌어지자 국내 관련 학회가 논문 공개 10여일만에 검증 작업에 나섰다.
초전도란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기 저항은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점차 감소하다가 특정 온도가 되면 아예 사라진다. 전기저항이 사라지면 에너지 손실 없이 전기를 보낼 수 있어 에너지 이용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초전도체엔 이것 말고도 자력선을 밀어내는 반자성 특성이 있다. 이런 특성은 자성체(자석)를 공중에 뜨게 할 수 있어 자기부상열차나 진공열차(하이퍼루프), 정밀계측기, 핵융합로 등 광범위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극저온(영하 100도 이하) 초고압(상압의 10만배 이상) 상태에서만 초전도 현상을 구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극저온 장비를 갖춘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양자컴퓨터 등 극히 제한된 분야에서만 초전도체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이 상온 초전도체 개발에 나섰지만 여전히 숙원 과제로 남아 있다.
논문 내용은?…“20여년 연구의 결정판”
한국 연구진은 지난달 22일 사전출판논문 온라인 공유집 ‘아카이브’에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초전도체에 관한 논문 2편을 올렸다. 이 웹사이트는 아직 다른 과학자들의 검토를 거치지 않은, 즉 학계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상태의 논문을 올리는 곳이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 등 이 회사 연구진을 주축으로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출신 김현탁 박사 등이 저자로 등재돼 있다.
한국 연구진은 논문에서 ‘변성 납-인회석’ 결정 구조인 ‘LK-99’라는 짙은 회색 물질이 임계 온도 127도(400K)에서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이 시작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임계 온도 이하인 상온에서도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는 걸 뜻한다. 라나카이트(산화납과 황산납의 혼합물)와 인화구리를 925도의 고온에 5~20시간 구워 만든 이 물질이 초전도 현상의 두 가지 주요 특징인 제로 저항과 자기 부상 능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납을 기반으로 한 인회석(아파타이트) 구조에서 납 원자 10개 중 1개가 구리로 치환되면서 약간의 부피가 줄어든 것(0.48%)이 초전도 현상을 유발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라나카이트는 산화납과 황산납을 1 대 1 비율로 혼합한 뒤 725도에서 24시간, 인화구리는 구리와 인 분말을 섞은 뒤 550도에서 48시간 반응시켜 얻었다.
연구진은 논문에 붙인 ‘감사의 글’에서 상온 초전도체 발견은 1990년대 고려대 화학과 최동식 명예교수(1943~2017)가 주장한 이론을 바탕으로 20여년에 걸쳐 연구를 진행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국제공개학술지 ‘APL 머티리얼스’에도 논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최 교수와 함께했던 연구자들이 2008년 창업한 기업이다.
한쪽만 공중에 뜬 초전도체…표본 부실 탓?
미국 국립아르곤연구소의 마이클 노먼 박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연구진이 사용한 재료의 세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노먼 박사에 따르면 구리와 섞기 전의 아파타이트는 기본적으로 비전도성 광물이어서 초전도체 제작에 좋은 재료가 될 수 없다. 게다가 납과 구리 원자는 전자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납 원자의 일부를 구리 원자로 대체해도 전기적 특성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는 또 납 원자가 무거운 점도 초전도 현상을 구현하는 데 장애 요소라고 지적했다.
오스트레일리아 퀸슬랜드공대 마부베 샤바지 선임연구원(재료과학)은 ‘더 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그럴듯한 이론을 제시했지만 명확한 실험적 증거는 내놓지는 않았다”며 “논문에 제시된 데이터가 결정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이 공개한 비디오에서도 마이스너 효과로 불리는 자기 부상 능력이 완전히 구현되지는 못했다. 연구진은 자석 위에 LK-99 조각을 놓고 초전도 현상을 실험했지만, 한쪽 가장자리만 자석 위에 뜨고 다른쪽 가장자리는 자석에 여전히 붙어 있었다. 연구에 참여한 김현탁 박사(현 윌리엄앤메리대 연구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 인터뷰에서 “이는 표본이 불완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논문 모두 유사한 측정치를 제시하지만 한 논문은 많은 결함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신의 허락 없이 ‘아카이브’에 공개됐다"고 덧붙였다.
샤바지 연구원은 “실험 표본이 불완전했기 때문일 수 있지만 상온 초전도체에 대한 강력한 증거라고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똑같이 따라하면 초전도성 재현될까
상온 초전도체의 진위를 판별하는 관건은 한국 연구진이 제시한 합성 방식을 다른 연구자들이 그대로 따라해도 초전도체 특성이 나타날 수 있느냐에 있다.
해외 과학자들이 이에 관한 검토 또는 시험 결과를 사전출판 논문 공유집 ‘아카이브’를 통해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의 시네이드 그리핀 연구원은 1일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LK-99의 구조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기존 초전도체보다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됐다는 논문을 올렸다. 그러나 중국 베이항대 연구진은 LK-99를 합성해 실험한 결과 자기부상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도 과학자들도 초전도 특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국 화중과학기술대 연구진은 LK-99 결정 구조를 재현해 반자성 특성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영상을 공개했다. 하지만 초전도체의 특성인 공중 부양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초전도체 연구 경험이 있는 윤복원 조지아공대 연구원(물리학)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국 연구진이 공유한 비디오의 물질은 (반자성체가 아닌) 강자성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현탁 박사는 ‘뉴사이언티스트’에 “현재 진행 중인 동료 검토 저널 게재 작업이 마무리되면 LK-99를 만들어 시험하려는 모든 이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LK-99는 비교적 만들기 쉽다는 점 때문에 비전문가그룹을 포함해 이미 수십개 팀이 공개 또는 비공개로 재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초전도학회 “상온 초전도체라 할 수 없어”
한국 과학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회장 최경달)는 김창영 서울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상온 초전도 검증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학회는 2일 “정상적 절차에 따른 국내외 연구기관의 검증 결과를 지켜보고자 했으나 지난 수일간 국내외에서 결과의 진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고, 동료 연구자들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다른 주장들이 추가되는 상황”이어서 검증위원회를 구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학회의 입장은 일단 부정적이다. 학회는 발표문에서 “두 편의 논문을 통해 발표한 데이터와 공개된 영상을 기반으로 판단할 때 상온 초전도체라고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학회는 퀀텀에너지연구소에서 시편(물질 표본)을 제공하면 서울대, 성균관대, 포항공대 등이 검증에 참여해 측정을 한다는 방침이다.
학회에 따르면 성균관대 양자물질 초전도 연구단, 고려대 초전도 재료 및 응용 연구실, 서울대 복합물질상태연구단 등에서도 LK-99 재현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노벨물리학상 10여명 배출한 ‘블루오션’
초전도체는 그동안 5차례에 걸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들이 10명 이상 나올 정도로 세계 과학계의 블루오션 연구 분야로 꼽힌다.
초전도체 발견과 개발의 역사는 110년 남짓에 이른다. 1911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카메를링 오네스가 수은을 액체 헬륨으로 영하 269도까지 냉각하자 갑자기 전기 저항이 사라지는 걸 발견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는 이 공로로 191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후 과학자들은 앞다퉈 좀 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 발견에 나섰다. 1957년엔 미국 과학자들이 초전도 현상을 이론적으로 규명(BCS이론)하는 데 성공했고, 1986년엔 스위스 과학자들이 영하 238도(절대온도 35도)의 임계 온도를 갖는 최초의 고온 초전도체를 발견했다. 절대온도 30도(영하 243도) 이상의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물질을 고온 초전도체로 분류한다. 이 두 성과는 각각 1972년, 1987년 노벨물리학상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초전도 현상을 구현한 최고 온도는 영하 23도다.
영광의 이면엔 음지도 있었다. 미국 로체스터대 랑가 다이어스 교수 연구팀은 2020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15도, 100만기압에서 작동하는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으나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동료 학자들의 지적이 잇따르자 ‘네이처’는 2022년 논문을 철회했다.
다이어스 교수는 올해 3월 또다시 ‘네이처’에 21도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초전도체(루테튬, 수소 및 질소 화합물)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전의 사태를 기억하는 과학자들은 이번에도 의문을 표시했다.
최근 발표된 한국 연구진의 논문이 노벨상의 영광을 향해 질주해갈지, 아니면 학계의 검증 문턱 앞에서 멈춰버린 숱한 논문 대열에 합류할지 조만간 나올 동료 학자들의 검증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48550/arXiv.2307.12008
The First Room-Temperature Ambient-Pressure Superconductor
https://doi.org/10.48550/arXiv.2307.12037
Superconductor Pb10−xCux(PO4)6O showing levitation at room temperature and atmospheric pressure and mechanism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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