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상장피 너머 '기술지원비'…거래소, 코인회사에 "5천만원 안내면 상폐"
입금처 알려준 뒤 "기한 내 완료하지 않으면 상폐" 메일도
(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 "오늘 내로 절차 완료되지 않을 경우 내일 상장폐지 공지될 예정입니다."
국내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지닥이 지난해 11월 A코인 발행사 측에 보낸 메일 내용이다. 메일에 나온 '절차'는 '기술지원비 입금'을 말한다. 해당 거래소는 원화(KRW) 입금을 위한 은행 계좌번호와, 가상자산 입금을 위한 지갑 주소도 메일에 적었다. 안내한 계좌와 지갑으로 '기술지원비'를 입금해야 상장을 유지시켜주기로 A코인 발행사와 협의한 결과다. A코인은 해당 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어 온 코인이다. 발행사가 기한 내에 입금을 하지 않자 지닥은 곧바로 상장 폐지를 강행했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의 어두운 민낯이 또 한 번 드러났다. 그간 돈을 받고 상장을 약속하는 '상장피(fee)'는 업계 관행처럼 여겨졌으나, 상장피를 넘어 거래소에 지급해야 하는 돈이 또 있었던 것이다.
거래소는 거래량이 적은 코인 발행사들에게 상장 폐지 전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걷었다. 기술 컨설팅을 제공한다는 '기술 지원비'가 그것이다. 기술 지원비를 정해진 기한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상장 폐지를 강행하겠다는 메일도 보냈다.
3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주요 코인마켓(코인 간 거래만 지원) 거래소 지닥에 상장돼 있던 A코인 발행사는 지난해 11월 거래소로부터 상장 폐지를 예고하는 메일을 받았다.
지닥 측은 "상장심의위원회의 상시 모니터링 및 심의를 통해 귀 발행사의 토큰이 상장 폐지 대상으로 결정됐다"며 상장 폐지 사유는 '시장성 결여'라고 안내했다. 상장 폐지와 관련한 질의 및 소명을 언제까지 보내라고 기한을 안내하기도 했다.
통상 '시장성 결여'는 거래량이 적다는 의미다. 이에 A코인 발행사는 직접 유동성을 공급해 일정 거래량을 유지하겠다는 취지의 개선안을 보냈다. 거래소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거래소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기술 지원비'라는 새로운 비용을 요구했다. 기술 지원비는 말 그대로 기술 지원, 시스템 통합 등에 쓰이는 비용이라고 했다.
결국 A코인 발행사는 원화(KRW) 2000만원어치, 가상자산 3000만원어치를 지급하기로 했다. 해당 발행사 관계자는 <뉴스1>에 "기술 지원비라고는 하지만 그 비용을 내지 않으면 상장 폐지가 되는 것이므로 일종의 상장 유지비인 셈"이라며 "상장 시 상장피를 내거나, 발행사가 직접 거래 유동성을 공급하는 경우는 있어도 기술 지원비는 처음이었다"고 토로했다.
이후 거래소는 정해진 기한까지 총 5000만원 비용을 입금하지 않으면 원래대로 상장 폐지를 하겠다는 경고성 메일을 보내며, 다시 한 번 기술 지원비 입금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A코인 발행사는 기한까지 약속한 비용을 전부 입금하지 못했다. 입금 기한이 지나자 지닥은 곧바로 상장 폐지 공지를 올렸다.
지닥 측은 이 같은 사실이 없다며 부인했다. 상장피는 물론, 상장 유지 명목으로 받는 금액도 절대 없다는 주장이다.
기술지원비는 존재하나, 상장과는 관계 없는 기술 컨설팅 비용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술지원비는 코인 발행사와 별도로 맺는 기술 컨설팅 계약에 따른 비용으로, 거래소는 노드 지원 등 기술 컨설팅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장 유지 또는 폐지와는 관계가 없다"며 "기술 지원비를 낸다고 해서 상장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상장 폐지가 된 이유에 대해서는 "시장 유동성을 개선하라고 했는데, 개선이 약속한 기한까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계약서에도 이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고 밝혔다. 실제 A코인 발행사와 지닥이 맺은 계약서를 보면, 해당 기술지원비가 '세틀먼트 버젯(Settlement Budget)'으로 기재돼있다. 지닥은 "세틀먼트 버젯은 지닥 사용자에게 배분되거나 지닥의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또 시스템 통합, 기술 지원, 인건비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계약서에는 상장 관련 내용이 없다는 게 지닥 측 주장이다.
반면 코인 발행사의 입장은 확연히 달랐다. 비용을 내지 않으면 상장 폐지를 하겠다는 메일이 그대로 남아 있을뿐더러, 거래소의 '기술 지원'을 받기 위해 돈을 지불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발행사에게 기술 지원비는 상장 폐지만은 막기 위한 '상장 유지비'였던 셈이다.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의 상장피는 이미 사회적 문제가 돼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상태다. 지난달 26일 출범한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도 거래소들의 상장피 의혹을 수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상장피 이외에도 거래소들이 추가로 요구하는 비용이 있는데다, 일종의 '상장 유지비'까지 존재하는 현실이 드러난 만큼, 후속 대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코인이 있다면 절차에 따라 상장 폐지를 해야 한다. '상장 유지비'를 받아가면서 상장 폐지를 미룬다면 거래소만 배를 불리고, 피해는 또 투자자들이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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