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병헌 "저도 처음 보는 제 얼굴에 놀라"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배우 이병헌의 낯선 얼굴이다. 스스로의 대한 '불안감'을 '믿음'으로 바꾼 이병헌이다.
이병헌이 주연을 맡은 텐트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연출 엄태화·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앞서 블라인드 시사회와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감상한 이병헌은 "그런 극단적인 감정들을 연기한 뒤 관객들에게 처음 보여줄 땐 같이 동화되고, 그 정서를 같이 이해하면 굉장히 큰 안도감이 생긴다"며 "그전까진 굉장히 불안하다. 과연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 저 정성에 같이 들어올 수 있을지 그런 불안감이 있다. 영화가 상영되고 나서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고 말했다.
특히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병헌의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가 제작에 참여했다. 다만 이병헌은 "저희가 제작에 참여한 줄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시나리오만 보고 마음에 들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었다. 설정 자체는 살짝 만화적이었다. 제가 사실 만화적인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러 가지 모습들이 담겨있었고, 그 안에 벌어지는 갈등이나 감정들이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설정은 만화적이지만 그 안에 내용은 현실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병헌이 맡은 캐릭터 김영탁은 황궁 아파트의 주민 대표다. 재난 상황 속에서도 불의를 보고 나서는 모습으로, 주민들의 만장일치를 얻어 주민 대표로 발탁된다.
이병헌은 김영탁에 대해 "그냥 대본에 있는 그대로 했다. 대본에 있는 걸 살아있는 인물처럼 연기하려면 배우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땐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 워낙 말이 많지 않고, 디렉션도 많이 주시는 분이 아니었다"며 "제가 일부러 대화를 많이 이끌어내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저는 촬영장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이다. 그러면 감독님이 골라준다"고 말했다.
또한 이병헌은 "전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이해한다고 믿는다. 그건 아마 보통의 배우들이라면 다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를 만나던, 그 캐릭터를 이해하고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상상하고 이입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다만 극단적인 감정을 느꼈을 땐 제가 이렇게 연기했지만, 이건 주관적인 판단이니까 사람들에게 이 정서를 고스란히 전해줄 수 있을지 고민된다. 반대로 더 보여줘야 하는 장면인데 제가 너무 자제해서 모자란 감정을 보여주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불안감은 항상 함께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특히 이병헌은 김영탁을 연기하기 위해 비주얼적으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사방으로 뻗은 까치집 머리에, 얼굴은 검댕이 묻은 꼬질한 모습이다.
이에 대해 이병헌은 "분장팀, 감독님과 외모 설정을 했다. 머리숱이 굵고 많은데 옆으로 자라나는 스타일로 하기로 했다. 깎은 지 좀 오래된 머리로, 약간 터치를 해서 (이마에) M자가 살짝 있는 느낌이다. 팬은 많이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영탁이 같으니까"라고 웃음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이병헌은 "눈치 못 채셨겠지만 분장팀과 다 같이 의논해서 변화를 준 건 처음 헤어스타일과 나중의 헤어스타일의 서있는 머리 각도가 다르다. 나중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권력을 얻기 때문에 머리가 뻗쳐있다. 마치 고양이가 등에 털을 세운 모습"이라고 귀띔했다.
극 중 김영탁은 가장 극단적으로 감정이 치닿는 인물이다. 주민 대표로 선정된 뒤 황궁 아파트를 이끌어가며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점차 권력에 맛을 알게 되는 인물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이병헌은 극단적일 정도로 얼굴을 크게 사용했다. 이는 관객들이 이병헌을 낯설게 느낄 정도였다.
이병헌은 "얼굴의 표정을 생각하면서 연기하진 않는다. 어떤 감정을 연기하고 뒤늦게 '표정이 이랬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며 "모니터를 보고 저도 못 봤던 얼굴이 나와서 놀라긴 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저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고 감탄했다.
그러면서 이병헌은 "영탁은 절대 악(惡)이 아니다. 되돌아보면 경악스러운 짓을 저지르지만, 상식적인 인물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있을법한, 상식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극단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정신의 끈을 놓으며 저지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병헌은 "불안감만 갖고 연기를 한다면 힘들어서 못할 거다. 제가 맞을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일부러 믿고 있다"며 "불안해하는 감정들이 지속되면 그 캐릭터를 온전히 그려내지 못할 거다.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괜찮다' '믿는다'를 반복한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들 중에 결과를 봤을 땐, 그런 불안감 속에서 영화를 만든 뒤 관객들 반응을 보면 내 판단이 맞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고 전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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