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무리한 대극장 추진…‘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울리다

남지은 2023. 8. 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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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극장 작품 5개월 만에 대극장 버전으로 수정
대본, 무대 등 준비 과정 삐걱대며 화제작 생채기

세종문화회관 소속 서울시뮤지컬단의 뮤지컬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뛰어난 여성주의 서사로 호응을 얻은 작품이다. 의병활동을 한 양반의 딸(버들)과 과부(홍주), 무당의 손녀(송화)인 세 여성이 자유와 꿈을 찾아 하와이로 떠난다. 지상낙원인 줄 알았던 그곳에서도 가혹한 운명은 계속된다. 그런 세 여성이 서로 돕고 연대하며 스스로 길을 닦는 모습에 관객들은 감동했다. 초연(지난해 11월22일~12월11일) 때도 “우리 엄마들의 굴곡진 인생이 떠올라 눈물을 훔쳤다”는 관객의 후기가 이어졌다. 서울시뮤지컬단 소속 배우들의 호연까지 더해져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그런데 불과 7개월 만에 상황이 달라졌다. 호평일색이던 ‘알로하, 나의 엄마들’(7월15일~8월19일)은 재연을 시작한 뒤에는 반응이 시원찮다. 첫날 표가 나가지 않아 이례적으로 당일 40~50% 할인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 통계를 보면, 7월 총 15회 공연을 기준으로 티켓 판매수는 유료·무료 합쳐 6120건에 그친다. 회당 400장(객석수 1221석) 남짓이다. 객석점유율은 33%로, 지난해 68%(전회 기준)의 절반 수준이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초연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 의외”라고 했다. 재연은 세종문화회관 중극장 엠(M)씨어터를 벗어나 대극장인 국립극장 해오름무대에 올랐다. 서울시뮤지컬단 작품이 세종문화회관을 벗어난 것은 지방 공연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라 관심을 끌었다. 무대는 넓고 깊어졌지만, 음향 등의 문제로 대사가 잘 들리지 않고 산만해졌다는 관객평도 눈에 띈다.

뮤지컬계 안팎에서는 세종문화회관의 무리한 대극장 강행이 서울시뮤지컬단의 모처럼 좋은 작품에 생채기를 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애초 중극장에 맞춰 제작한 작품을 짧은 기간에 무리하게 대극장용으로 바꾸면서 처음부터 삐걱댔다는 시각이 많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초연이 끝난 직후인 올해 초 대극장 재연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대본이 공연 한달여를 앞둔 6월에 완성되는 등 준비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초연을 쓴 오미영 작가가 대본을 수정했지만 재수정 요구가 이어지다 결국 하차했고, 지난 3월 이나오 음악감독이 대본 집필을 이어 맡으면서 크레디트 공방이 불거지기도 했다. 두 사람이 ‘오해를 풀었다’며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이 작업 과정이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 측면이 크다. 서울시뮤지컬단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서울시뮤지컬단 작품 중에서 재연을 이렇게 빨리 결정한 경우는 없다. 촉박한 가운데 대본 작업은 물론, 크레디트 정리 과정을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준비 시간을 더 부족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대본이 늦게 나오면서 연습, 의상, 무대 세트까지 모든 일정이 늦춰졌다. 애초 7월12일 공연을 예고했으나 준비 부족으로 사흘 늦춰 15일에 개막했다. 처음 개막일이었던 12일까지 무대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 리허설도 다른 공연의 절반밖에 하지 못했고, 의상까지 갖춰 입고 제대로 한 리허설은 공연 전날 진행됐다. 한 뮤지컬 관계자는 “뮤지컬단 내부에서도 공연을 미뤄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무리하게 대극장 공연을 추진하면서 배우들에게 주어진 환경도 열악해졌다. 초연 때와 달리 대극장 재연에서는 주연인 버들과 홍주, 송화 역에 배우 세명씩을 캐스팅했다. 한달간 공연하면서 한 역할을 세명씩 번갈아 맡는 경우는 흔치 않다. 조연을 포함해 앙상블(여러 역할을 맡는 이른바 단역)의 부상 등 돌발 상황에 대비한 대역인 스윙도 없었다. 리허설 도중 앙상블을 맡은 배우 두명이 부상을 입자 대체 인력이 없어 역할 자체를 없애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연 연출가는 “스윙을 두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역할 자체를 뺐다는 게 더 충격적이다. 모든 인물이 무대를 구성하는 요소인데, 대사도 없는 앙상블은 없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촉박한 준비 과정이 빚은 문제점들을 현장에서 보완해 준 건 서울시뮤지컬단 배우들의 오랜 호흡과 뛰어난 연기력이다.

서울시뮤지컬단 김덕희 단장은 개막 전인 6월29일 개인 소셜미디어에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초연 당시 반응이 좋았고, 대극장에서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이라 판단했다. 2월부터 작가, 작곡가, 연출가, 총괄프로듀서가 대극장 버전의 대본 및 음악 수정에 대해 논의했다. 촉박한 일정이지만 모두 함께 노력했다. 2달 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수정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며 진행 과정을 밝힌 바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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