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의 강박적인 작업자 네 명이 모이면?

임지영 기자 2023. 8. 3.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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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인생〉은 이슬아 작가와 이훤 작가의 첫 번째 책이다. 이들은 이번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끝내줬다’고 요약했다. 강박적인 작업자들이 만나서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갔다.

서울 일대 '극한 호우'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된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지도 앱이 안내하는 대로 걸음을 옮겼더니 정류장 뒤가 바로 주택가였다. 낮은 지붕의 집들이 이어졌다. 폭이 좁아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우산을 기울여 통과하면서도 의심을 거두지 못했는데 갑자기 시야가 트였다. 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북한산과 정릉에 둘러싸인 2층짜리 단독주택 담벼락에 문패 크기의 작은 간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헤엄 출판사’와 ‘작업실 두 눈’이다. 현관문을 두드리자 이훤 작가가 나왔다. 책에서 본 단어가 떠올랐다. ‘키는 백팔십사 센티미터’ ‘성큼성큼’. 뒤이어 등장한 이슬아 작가가 물었다. “아침 드셨어요?”

〈끝내주는 인생〉은 이슬아 작가와 이훤 작가가 함께 만든 첫 번째 책이자, 이슬아 작가의 열세 번째 책이다. 올해는 그가 구독형 연재 프로젝트 ‘일간 이슬아’로 출판계를 들썩이게 만든 지 5년 되는 해다. 그사이 산문, 인터뷰, 서평, 칼럼, 서간문, 소설까지 영역을 넓혀 책을 냈다. 최근에는 본인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원작으로 드라마 각본을 쓰고 있다. 이훤 작가는 고등학생 때 미국에 건너가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2014년 데뷔해 〈양눈잡이〉 등 세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사진산문집을 낸 시인이자 사진작가다. 한동안 ‘구글 어스’로 지구 반대편 상대의 집을 방문하던 두 사람이 이제 한 집에서 각각 출판사와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끝내주는 인생>에서 각각 사진과 글로 협업한 이훤 작가(왼쪽)와 이슬아 작가. ⓒ시사IN 조남진

드라마를 쓰고 있지만 ‘본진은 출판계’라는 이슬아 작가는 이번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끝내줬다’고 요약했다. “해놓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어제도 이훤 작가와 이런 작업을 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 이 끝내주는 작업의 시작은 이슬아 작가가 데뷔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토크에 자주 다니던 독자 이슬아는 어느 날 행사 뒤풀이에서 김진형 편집자를 만났다. 평소 흠모하던 편집자였다. 모든 직업군 중에 편집자가 가장 좋고, 편집자와 이야기하는 게 가장 재미있다는 이슬아 작가는 행사 이후에도 김진형 편집자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와 함께 책 만드는 미래를 상상했지만 좀 더 준비가 되었을 때 하고 싶었다. 2020년부터 올해 초까지 쓴 글을 이메일로 보내며 ‘다음 시절’로 넘어가기 전, 너무 늦기 전에 책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원고를 읽은 김진형 편집자(아카넷 & 디플롯 주간)의 반응은 ‘이슬아도 나이가 들었구나’였다. 작가도 수긍했다. “지난 수필집, 특히 첫 번째 수필집을 보면 너무 데뷔를 잘하고 싶어서 도발적이려고 애를 많이 썼다. 전체적으로 차분해지고, 좋은 의미로 지쳤다. 기쁨에 관한 것이든 슬픔에 관한 것이든 좀 더 속 깊어진 문장들이 담긴 것 같다.” 글에 등장하는 인물의 연령대도 초창기보다 다양해졌다. 작가에게 결혼도 하고 애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할머니 독자의 일화로 책이 시작된다. “계속 달라지는 작가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고 싶다”라는 의미다. 어린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세대를 껴안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헤엄 출판사와 작업실 두 눈의 간판. ⓒ시사IN 조남진

산문 스물세 편 중 한 편은 이훤 작가의 ‘사진 산문’이다. 김 주간의 아이디어였다. ‘텍스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사진이 아니어도 된다. 텍스트와 별개로 하나의 이야기를 써주면 좋겠다. 그런데 쓴 글과도 이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으로 산문을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가까운 창작자이자 친구이고 동료였던 두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이훤 작가는 “책에서 사진은 보통 텍스트를 꾸며주는, 부가적인 매개로 인식된다. 시각 작업자로서 그게 늘 아쉬웠다. 책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 이상으로 기능하고 읽힐 수 있는 게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언어도 그 안에 체계가 있다. 종류가 다른 언어를 책 한 권에 담는 시도는 잘 없었기 때문에 반가웠다”라고 말했다.

그가 ‘끝내주는 인생’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 여덟 장으로 첫 챕터 ‘내 손을 떠나는 이야기’를 완성했다. 이슬아 작가가 하는 말과 완전히 포개지진 않지만 어떻게 교차할 수 있을지 고심했다. 사진으로 산문을 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훤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개별적으로도 완전한 동시에 책 속 텍스트와도 입체적으로 상호하는 이야기를 부탁하는 요청으로 받아들였다. ‘들어서는 문’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작업이라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이 시리즈의 장르는 산문이기도 하고 시이기도 하다.”

이훤 작가의 사진 산문 일부. '나를 만들고는, 내 손을 떠나는 이야기.' ⓒ디플롯 제공

직육면체의 세부 사항에 집착하는 사람들

이슬아 작가와 이훤 작가의 첫 인연을 묘사한 글도 책에 나온다. 두 사람은 2020년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스승 중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배우는 걸 좋아하는 이슬아 작가가 시카고에 있는 이훤 작가에게 영어 강습을 부탁했다. “그 시기에는 외국어를 너무 배우고 싶었나 보다. 수능을 안 봤기 때문에 영어를 잘해야 할 이유도 없고 작가가 토익·토플을 할 이유도 없었다. 모국어를 좀 새롭게 느끼고 싶어서 배웠다. (이훤 작가의) 라디오 인터뷰를 듣는데 영어를 아름답게 구사하길래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슬아 작가는 화상 영어 수업 시세를 조사한 뒤 적절한 가격도 제안했다. 평소 작가의 책을 좋아하고 그의 행보를 응원하고 있던 이훤 작가로서도 낯선 경험이었다. “동료들이 서로의 작업을 좋아해서 잘 지낼 수는 있는데 영어를 가르쳐달라고는 하지 않는다. 처음 받아본 부탁이었다(웃음).”

<끝내주는 인생>의 표지 사진은 이훤 작가가 찍었다. ⓒ시사IN 조남진

그렇게 이슬아 작가는 ‘만져보지 않은 사람’과 난생처음 절친이 되었다. 두세 시간 이어진 대화에서 영어로 말한 건 한 시간 정도다. 17년간 외국에서 생활하고 이민자 정체성이 짙었던 이훤 작가에게도 일상적인 한국어 대화가 절실했다. 사고하는 한국어와 발화하는 한국어 사이에 갭이 있었다. 둘 사이를 잇는 다리가 부서져 있는 느낌이었다. “영어가 늘어가는 과정도 재미있었지만 한국어가 퇴화한 사람의 언어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한국어로 전시를 설명하는 자리는 좀 있었기 때문에 아카데믹한 한국어만 남더라. 섭섭하기도 했다. 아무리 친해져도 딱딱하고 예의 바르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친한 사이에 할 수 있는 농담을 했는데도 ‘그렇게 말해준다니 정말 기쁘다’ 이런 식으로 답했다(이슬아).”

1년 뒤에 직접 만났고 그 전부터 시각 작업자와 활자 작업자로 같이 일했다. 작가가 운영하는 헤엄 출판사의 책 표지와 프로필, ‘일간 이슬아’ 포스터를 같이 작업했다. 이슬아 작가는 작가이자 출판인으로서 좋은 사진가와 작업하는 게 얼마나 풍요로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일간 이슬아’를 처음 발행할 때 어머니가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찍어준 사진의 ‘누끼(배경을 제거하여 필요한 이미지만을 잘라내는 작업)’를 따서 이미지 작업을 했다. 비주얼에 공을 들이지 않는 것이 콘셉트이던 시절을 지나 이훤 작가와 본격적으로 일하며 문장이 '이미지를 타고 더 멀리멀리 가는' 걸 목격했다.

최근 드라마를 쓰고 있는 이슬아 작가는 자신의 '본진'이 출판계라고 말한다. ⓒ시사IN 조남진

〈끝내주는 인생〉의 표지 사진도 이훤 작가가 찍었다. 6주 동안 사진을 ‘기다렸다’. 책의 주요 화두를 마음속에 굴리며 어떤 장면이어야 모든 걸 풍성하게 은유할지 생각했다. “슬아 작가의 텍스트는 은유보다 직유의 형태에 가까운 말하기가 많기 때문에 무조건 표지 사진은 은유의 꼴을 띠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접적이지 않은 이미지이되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든 담겨야 했다.” 출장 겸 여행을 간 일본에서 어떤 비탈길을 지날 때였다. 세 소년이 벽에 야구공을 던지고 있었다. 한 명이 던지면 다른 한 명이 받고 그 공을 받은 친구가 벽에 공을 던지면 또 다른 친구가 받았다.

그 풍경이 ‘완벽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인생을 살 때도 내 안에서 길어 올린 뭔가를 세상에 던지고 나면 이후의 일은 내 손을 떠난다. 나를 떠난 이야기가 내 앞에 펼쳐지기도 하고 그것이 돌아오기도 한다. 우리가 끝내준다고 말하는 순간들을 대변하는 은유 같았다.” 일본어를 몰라 번역 앱에 의지해, 책에 들어갈 중요한 작업을 하고 싶은데 ‘들어와 줄 수 있느냐’고 세 소년에게 물어보았다. 그렇게 짧은 머리의 세 소년이 표지에 실렸다.

책 만드는 과정은 ‘너무 수월한 동시에 너무 치열’했다. 판형, 종이의 질감, 두께, 가격, 사진의 밝기, 간격, 위치, 조사 하나를 두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슬아 작가가 김 주간에게 ‘하나하나 관여해 피곤하냐’고 묻자 "정성과 예의를 갖추는 선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침범해야 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훤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네 명(이훤, 이슬아, 김진형, 박연미 디자이너) 모두 자기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 대한 확신이 있는 강박적인 작업자들이다. 서로를 존중하지만 자신이 쌓아온 미감의 세계를 배반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넷이 만나 가장 멀리까지 갈 수 있는 데가 어딘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편집자 말도 들어봐야 한다며 이슬아 작가가 말했다. “애초 이 직육면체(책)의 세부 사항에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직업의 사람들이라는 게 솔직히 너무 우스꽝스러운데 정말 진지하게 했다.”

김진형 주간은 이슬아 작가에게 ‘별점표’를 건네기도 했다. 원고 챕터별로 아름다움, 재미, 유익함, 실용성 항목을 두고 별점을 매겼다. 주요 키워드와 촌평까지 있다. “별 다섯 개도 있지만 두 개짜리인 글도 있다. 만약 아름다움에 별점 두 개인 글을 쓸 거면 왜 작가로 살아가고 있나 생각했다.” 개고에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언젠가 복수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김 주간이 쓴 책의 ‘보도자료’가 도착했다. 똑같이 네 가지 항목의 별점을 매겼다. 별점표는 보통 ‘절대’ 공개를 안 하지만 이슬아 작가가 출판계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해서 참고 자료 삼아 건넸다는 게 김 주간의 변이다.

이슬아 작가의 산문에는 자신의 가족이 자주 등장한다. '모부(母父)'인 복희씨와 웅이씨, 동생 찬희씨, 외조모부인 존자씨와 병찬씨가 이번에도 ‘결정적 순간’을 함께한다. 무당이었던 증조모 순남씨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이슬아 작가가 가진 재주의 유래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가장 많이 대하는 사람들이자 가장 웃기고 가장 짜증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인 건 여느 가족과 비슷하다. 가장 큰 차이는 “안 쓰기에는 너무 웃긴 존재”라는 점이다. 또 얼마든지 가공해도 좋다고 허락해준 사람들이다. “이야기라는 걸 너무 잘 이해하고 있는 모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이상해도 어차피 그 이야기는 본인들보다 작고 단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란 재미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자기들과 동일시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너무 좋다. 이런 사람을 오랜 뮤즈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훤 사진작가는 2014년 데뷔해 <양눈잡이> 등 시집 두 권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시사IN 조남진

친구들 역시 그의 산문에 자주 나온다. ‘친구들 연합’이 있다. 그 안에는 작가 친구들도 있다. “누군가를 글의 소재로 삼는 것이 예민한 시대지만 우리끼리는 우리 얘기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합의가 있다. ‘네가 어지간히 알아서 썼겠지’ 하는 마음이다. 그래도 조심스러운 부분은 허락을 받고 게재한다. 이 글이 나를 해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드는 단계에서는 서로 마음껏 쓰라고 하는 것 같다.” 이슬아 작가는 ‘무해하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무해함이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널리 쓰이는 것이 시대의 징후이긴 하겠으나 ‘무해한 관계’가 어디 있나. 서로 이런저런 해를 입히지만 그럼에도 쌓아온 우정의 역사가 있고 기본적으로 애정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침범해도 괜찮은 것 같다.” 글에 직접 등장하는 이훤 작가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 장면을 이렇게 뽑아내네, 프로네... 생각했다(웃음). 글쓰기는 여러 소재를 이어가는 작업이라 창작자와 그 주변은 서로 침범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랑도 우정도 가까운 애랑 하는 편’인 이슬아 작가도 팬데믹을 겪으며 변화가 있었다. 멀어도 친구가 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번 책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만남인 것 같다. 어떻게 만나지 않고도 만날 것인가. 몸을 부딪히면서 만난다는 게 무엇인지 요가원과 태권도장을 소재로 하는 글에서 그 감각을 탐구하고 있다(이슬아).” 이훤 작가는 결국 ‘가까운 애’가 되었다. 지난해 한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17년 동안 불가능했던 일상과 만남이 여기서는 쉬웠다. 기분이 이상하다. 지금도 인터뷰지만 언어가 다르다는 생각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중 하나가 되기 수월한 환경’인데 미국에 살 때는 커피숍이나 식당같이 일상적인 장소에 가도 이 중 한 명이 아니라는 걸 자주 느꼈다.”

“더 정치적인 글 쓰고 싶어”

이슬아 작가가 보기에 이훤 작가가 가진 소수자 감수성은 창작자로서의 강점이다. “그 사회에서 1등 시민은 아니었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어렵게 얻었지만 소중한 시선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으로 이주하면서는 이 나라에 있는 타국인들로 관점이 옮아가는 걸 느낀다.” 이훤 작가가 보기에 이슬아는 어떤 창작자일까? “다층적인 창작자다. 창작의 한 과정만 책임지려고 하지 않고 기획하는 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임하는 사람이다. 여러 장르의 예술을 하는데 그때마다 함께하는 사람들을 (작업 안에) 열심히 초대하고 같이 이루어가는 공기를 만든다. 이런 게 늘 멋있다.” 협업자로서 이슬아 작가는 아름다움도 고집하지만 멈출 때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글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이슬아 작가는 낙천적인 편이다. 이런 기질이 오랫동안 콤플렉스이기도 했다. “삶에는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한 건강함이나 명랑함이 창피할 때가 있다. 특히 친구들이 쓴, 나와 다른 훌륭한 글을 볼 때 그렇다. 첨예하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유가 있다.” 드라마를 쓰면서도 그렇다. 드라마는 세상과 어떻게 불화했는지가 중요한 장르인데 갈등을 매끈하게 봉합하려는 기질이 나올 때가 있다. 화합하려는 관성이 작가로서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슬아 작가는 최근 예스24가 실시한 ‘올해의 젊은 작가’ 온라인 독자 투표에서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5만594표(9.4%)를 받았다. 인생에서 받은 상 중 가장 크고 독자가 뽑아주어 더 특별하다. 첫 책을 낸 지 5년, 동시대 독자와 작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키워왔다. “가진 힘을 좋은 곳에 쓰고 싶은데 사실 되게 알량한 힘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가진 지면에서 중요하되 덜 얘기된 사람들, 이슈들을 다루려고 노력하지만 보통 생활할 때는 소재만큼의 반경만 생각한다.”

최근 몇 년, 동물권에 관심을 가졌다. 인간이 아니라 자주 누락되었던 존재에 대해 생각해왔다. 육식을 안 한 지 5년 되었다. 언어 앞에 느끼는 불안감도 있다. 노키즈존이나 실버존 같은 말을 들을 때는 단어 단위로 싸우지 않으면 나중에 물러설 곳이 없겠다고 생각한다.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칼럼을 읽고 정치적이라며 싫어하는 독자도 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후원회장이라는 이유로 미움을 받기도 한다. “오히려 내 글이 충분히 정치적이지 않다는 게 콤플렉스였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해서 더 정치적인 글을 쓰고 싶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자발적으로 구독료를 받고 글 쓰는 연재 노동자의 삶에 접어든 지 5년이다. 이제 누구나 알 만한 작가가 되었지만 전업 작가가 '일종의 상태'라는 생각에는 변함은 없다. “엄마 아빠의 삶을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고정된 직업이 없는 분들이었고 언제나 적응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제일 좋아하는 일이라 웬만하면 (글쓰기를) 계속하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출판) 생태계가 건강해야 한다. 종이책이 죽는다는 얘기를 오래전부터 했지만 여전히 좋은 책이 많이 나오고 훌륭한 독자가 많다. 이 업계를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가 인생의 화두이기도 하다.” 퇴거 위기에 처한 마포구의 ‘플랫폼P’ 관련 기자회견에도 나가고 칼럼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출판 시장이 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밀려나면 조금씩 판이 작아지는 거잖나.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 되는 면들이 있다.” 아름답고 이상하고 웃긴 군상이 다 모여 있는 출판계를 배경으로 드라마도 쓰고 싶다.

인쇄 상태를 점검하는 이슬아 작가(오른쪽)와 이훤 작가. ⓒ디플롯 제공

두 사람은 책도 사진도 잘 안 되면 비건 만둣집을 차릴 생각도 있다. 이훤 작가에게는 만두를 빠르고 예쁘게 빚는 능력이 있다. 한 번에 수백 개씩 만들어 냉동실에 두고 먹는다. “그것도 사실 기계가 더 잘하겠지(이훤).” “그치만 기계보다 우리가 저렴할 거야(이슬아).” 출간 일주일 만에 4쇄 인쇄를 앞둔 작가들이 주거니 받거니, 건강한 현실감각을 드러내는 동안 작가의 강연에 왔다는 할머니 독자가 생각났다. “또 얼마나 삶이 달라지겠어요? 그럼 또 얼마나 이야기가 생겨나겠어요. 나는요, 계속 달라지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고 싶어요.”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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