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떠나간 피해자, 돌아오는 가해자
[아이뉴스24 신수정 기자]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 우리나라의 법적 처벌이 너무 가벼워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21일 오후2시께 전 국민을 공포와 분노에 떨게 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사례를 보자. 말만 들어도 오싹한 무차별 칼부림이 벌어졌다. 범인은 신림역 4번 출구에서 80여m 떨어진 상가 골목 초입에서 길을 지나가는 불특정 남성 4명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1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후 가해자는 범행 현장에서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됐다.
피해자는 이유도 모른 채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 세상과 이별했다. 목숨을 건진 이들도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얻었다.
그의 살해 동기는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어서 그랬다"였다.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은 수많은 이들은 분노했고,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된 유족들도 가해자를 사형해달라고 청원했다. 자신을 해당 사건으로 인해 숨진 피해자의 사촌 형이라고 밝힌 A씨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유족들은 피의자가 반성하지도 않는 반성문을 쓰며 감형을 받고, 다시 사회에 나올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미 다수 범죄 전력이 있는 피의자에게 교화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다시 기회를 주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마지막 사형이 집행된 이후 더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전문가들은 "최근 법원이 사형 선고 자체를 잘 하지 않는 추세"라며 가해자에게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도 작다고 전했다.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시민들이 사형을 호소하는 청원, 탄원서를 제출하면 법원에서 부담을 느끼겠지만 사형 선고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최근 무기징역형을 받은 기결수가 교도소에서 같은 수형자를 살해한 사건의 경우 원심에서 사형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에서 파기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 역시 "사형의 경우 2010년대 들어 선고 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오원춘, 김홍일, 김길태도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긴 했지만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니 사형은 사실상 폐지된 거나 다름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며 "조 씨 같은 흉악범들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최종적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의견과 같이 가해자에게 무기징역 혹은 그 아래 등급에 해당하는 형이 선고될 경우, 그는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무기징역을 받더라도 20년 후 가석방이 가능하다. 그러니 언제 다시 사회로 나올지 모르는 흉악범 때문에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강력 범죄가 잦아질수록 '우리나라의 법은 피해자보다 피의자를 더 생각한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 또 '사형을 다시 집행해야 한다'거나 '종신형을 도입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그들이 저지른 행동에 비해 받는 형벌은 너무나 가벼워 보이기 때문에 나오는 목소리라 볼 수 있다. 가벼운 형벌은 또 다른 범죄자들에게 붙잡힌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나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보다 그저 '재수가 없어서 걸렸지만, 몇 년 살고 나가면 된다'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만약 사형이 선고되더라도 어차피 저 안 죽잖아요." 지난 2019년 개봉된 영화 '악인전'에서는 죄 없는 사람들을 여럿 죽인 뒤 붙잡힌 연쇄살인범이 이런 말을 내뱉는다. 영화감독이 사회에 던지고싶은 메시지였을텐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건 그만큼 현실을 잘 반영해 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몇 명을 죽였든, 어떻게 죽였든, 그들은 죽지 않는다. 운이 좋다면 다시 사회로 나갈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조건 형량을 높이거나, 사형을 집행한다고 범죄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형벌은 본인이 저지른 죄의 대가에 맞게 받아야만 질서가 바로 선다. 잔혹범죄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국가는 이런 사건들이 계속 이어지지 않도록 현명한 판단과 법 제정을 보여줘야 한다.
/신수정 기자(soojungsin@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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