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군인 테니스장은 괜찮고, 주택 건축은 안되나"

CBS노컷뉴스 주영민 기자 2023. 8. 3. 05: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골치거리 서해5도 탄약고①]들쭉날쭉한 군부대 지침
"폭발물 위험" 건축 허가 반대한 군부대…폐업 위기의 마을기업
폭발 위험 반경 내에 있는 초등학교·보건소·면사무소·군인아파트
군 부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건축 허가…심각한 재산권 침해
불법건축물에서 만든 상품이 옹진군 인기상품?…'엇박자 행정' 옹진군
경제활동 막혔지만 떠날수 없는 연평도…발목잡는 군부대
편집자 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의 섬 연평도는 남북 분단의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간직한 섬이다. 군과 민간인이 함께 섞여 살면서 민간인 주거지역과 탄약고 사이의 안전거리를 전혀 지키지 못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북한의 포격도발뿐만 아니라 자체 폭발사고로도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이곳에서 탄약고는 주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곳이자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곳이다. CBS노컷뉴스는 연평도내 탄약고와 주거지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한 탄약고 인근 건물들. 모두 탄약고와 주거시설 안전거리인 381m 이내에 있다. 구글어스 화면 캡처
▶ 글 싣는 순서
①"왜 군인 테니스장은 괜찮고, 주택 건축은 안되나"
(계속)

"차라리 내가 폭약이 터져 죽더라도 우리 가족들이 아무런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서 허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을 못해 굶어 죽나. 폭발물이 터져 죽나 죽는 건 똑같으니까요."

"폭발물 위험" 건축 허가 반대한 군부대…폐업 위기의 마을기업


인천 옹진군 연평도 최초이자 유일한 마을기업을 운영하는 A(61)씨는 인근 군 부대의 고무줄 지침 때문에 폐업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2016년 전역한 A씨는 부인의 고향에 정착해 연평도 수산물을 이용한 마을기업을 설립하기로 하고 2021년 옹진군청을 찾아 연평도의 한 탄약고 인근 농지에 집과 수산물가공시설을 짓겠다고 신고했다.

현장을 확인한 공무원은 해당 부지가 탄약고와 가까이 있지만 설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안내했고 이에 따라 토지 매입, 건축설계, 농지보전부담금 납부 등의 단계를 밟았다.

그러나 옹진군에 주택 건축 허가신청서를 낸 A씨가 받은 결과는 "허가를 내줄 수 없다"였다. 국방부의 '탄약 및 폭발물 안전관리 기준'에 따라 탄약고 인근 381m 내에서 신청한 건축허가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인근 군부대의 의견 때문이었다. 즉 해병 연평부대가 탄약고와의 거리를 이유로 허가를 반대했다는 것이다.

폭발 위험 반경 내에 있는 초등학교·보건소·면사무소·군인아파트


스마트이미지 제공

A씨는 이같은 조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A씨가 주택과 수산물가공시설을 짓는 토지 인근에는 연평 초·중·고등학교와 교직원 관사, 면사무소, 보건소, 농업기술센터, 안보수련원, 천주교 성당, 해병대 연평부대 기혼자 장교 관사 등이 있다. 심지어 탄약고 바로 옆엔 군인전용 테니스장이 있다. 모두 탄약고 반경 381m 안에 있는 건물들이다. 게다가 A씨가 주택을 지으려는 곳 바로 옆은 연평면사무소 관사다.

더욱이 탄약고 인근 381m 이내에서 A씨보다 약 3개월 먼저 토지를 매입해 2층 주택을 지어 건축 허가를 받은 이웃도 있었다. 해병 연평부대는 A씨의 주거시설에 대해서는 "탄약고 반경 381m 내에 있어 건축을 동의할 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이웃의 주택에 대해서는 "주거시설이어서 동의한다"고 밝혔다. A씨는 "폭발물 이격 거리 문제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면서 연평도의 주요시설이 모두 이 범위 안에 있다"며 "이렇게 허가 기준이 들쭉날쭉할 수 있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군 부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건축허가…심각한 재산권 침해


A씨는 지난 2년 동안 옹진군과 연평부대에 건축 신고 처리 불가 이유를 물었다. 옹진군에서는 "연평부대가 건축 허가를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이고, 연평부대는 "건축 허가기관은 옹진군"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탄약고 반경 381m 내에 주요 건축물들이 지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A씨가 확인한 내용은 접경지역인 연평도의 부지 대부분이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을 적용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연평도에서 지어지는 대부분의 건축물은 관할 부대인 해병 연평부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전체 면적이 7㎢에 불과한 데다 산지가 많은 연평도에서 군사시설을 제외하면 민간인 거주지역 대부분이 해당 법의 적용을 받는다. 연평부대가 연평도 건축허가에 대한 사실상의 결정권자인 셈이다. 33년간 군복무하다 최근 전역한 A씨는 "군에 오랫동안 몸 담았지만 연평도처럼 군 부대에 의한 재산권 침해가 심각한 곳은 처음"이라면서 "탄약고 옆에는 군인전용 테니스장을 지어놓고 주민들에게는 집도 짓지 말라는 것이어서 더욱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불법건축물에서 만든 상품이 옹진군 인기상품?…'엇박자 행정' 옹진군

옹진군청. 옹진군 제공

A씨는 최근 해당 부지에 임시 수산물가공시설을 짓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군부대의 건축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불법건축물이다. 이를 철거하지 않으면 수천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마을기업으로 설립했기 때문에 연평도 주민들이 직원이고, 이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회사 문을 닫을 수 없다.

다행히 A씨의 마을기업이 판매하는 연평 꽃게와 말린 새우 등은 옹진군이 농·수산물 유통 확대를 위해 개설한 온라인 쇼핑몰 '옹진자연'의 인기 품목들이다. '옹진자연'의 매출액의 절반가량은 A씨의 마을기업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옹진군이 구축한 온라인 쇼핑몰의 인기 상품이 불법건축물에서 생산한 제품인 것이다. 옹진군이 생산시설을 지을 수 없게 하면서 온라인 상품 판매는 허용한 결과다.

A씨의 마을기업이 최근 새로 출시한 수산물가공식품은 인천관광기념품에 선정됐다. 한국어촌어항공단이 위탁운영하는 인천시 산하 인천어촌특화지원센터에서 2023년 인천관광기념품 공모전을 열었는데 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A씨의 제품은 인천관광공사가 홍보·마케팅을 지원하고 인천관광안내소에서 전시 판매될 예정이다.

경제활동 막혔지만 떠날 수 없는 연평도…발목 잡는 군부대


그러나 A씨의 마을기업이 새로 출시한 이 제품의 실제 생산장소는 전북 전주시다. 해당 제품을 제작하려면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을 받아야 하는데 연평도 불법건축물에서는 이 인증을 받을 수 없다.

이에 A씨의 마을기업은 전북 전주시의 한 생산공장에서 연평도 수산물을 보내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산단가도 연평도에서 생산할 경우보다 40%이상 높아졌다.

A씨는 "군부대의 들쭉날쭉한 건축 허가 심의 기준에 대한 문제점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면서 "연평도 주민의 재산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옹진군과 군부대의 태도 역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불만에는 여러 불합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연평도를 떠날 수 없는 주민들의 울분이 담겨 있다.

연평도 주민들은 연평도포격전 직후인 2010년 집단 이주 지원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민들이 섬을 떠나면 '군사요새'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포격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대신 '서해5도 지원특별법'을 제정해 주민들이 연평도에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이 받는 지원금은 월 20만원이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CBS노컷뉴스 주영민 기자 ymchu@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