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반한 韓 공급망…대만 풍력단지서 '한국산' 늘어나는 이유

고성(경남)=권다희 기자 2023. 8. 3.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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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풍력과 한국 제조업의 기회<1> SK오션플랜트
①韓 기업이 '자국산' 규제 둔 대만서 단숨에 '1위' 된 이유
[편집자주] 해상풍력발전이 중심지 유럽은 물론 미국, 중국, 다른 아시아 지역과 신흥국까지 급속히 확산 중이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후 해상풍력 목표를 대폭 늘리며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지을 때 필요한 공급망 병목도 심화하고 있다. 철강, 터빈, 기계부품, 타워, 하부구조물, 케이블 등 해상풍력 공급망 확보가 이 분야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의 제조업이 해상풍력 공급망 측면에서 보유한 역량이 주목 받는다. 머니투데이는 해상풍력과 한국 제조업의 '시너지'를 이미 세계 시장에서 인정 받고 있는 대표적 한국 기업들을 통해 살펴본다.

경상남도 고성군 SK오션플랜트 제1야드 일부의 모습/사진 = 권다희 기자

경상남도 고성군 연안 '조선특구로'에 들어서자 'SK오션플랜트'란 이름이 큼직하게 박힌 초대형 크레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크레인이 서 있는 42만㎡ 규모 야드는 SK오션플랜트 전신 삼강앰엔티*가 해양 플랜트 등을 만들던 곳으로, 현재는 두꺼운 철강재로 만든 대형 파이프를 제작하는 공정이 한창이다. 해상풍력 발전기를 해저에 고정시키는 '하부구조물'을 만드는 과정의 일부다.
대만 해상풍력 시장 '자국산' 규제에도 한국 제품 쓰는 유럽 기업들
'제1야드'로 불리는 이 곳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엔 2017년 옛 삼강엠앤티가 STX조선해양 자회사 고성조선해양을 인수해 확보한 51만㎡ 크기 '제2야드'가 있다. 배를 만들거나 선박을 수리하던 이 곳도 현재는 상당부분 하부구조물 제작 공정에 투입된다. 지난달 19일 찾은 이 두 야드 사이에선 새로운 야드를 만들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기존 두 야드를 합친 규모의 1.5배 이상(165만㎡) 크기의 대형 야드가 2027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되는 현장이다. 이 '제3야드'에선 바다에 띄우는 형태의 해상풍력 발전(부유식 해상풍력)기의 하부구조물(부유체)을 만들 예정이다.

현재 1·2야드에선 길이 약 100m, 무게 약 2000톤의 재킷(고정식 하부구조물의 일종)을 매 해 50기 만들 수 있는데, 3야드가 완성되면 이 곳에서 40기의 부유체도 생산 가능하다. 여의도 면적에 육박하는 규모의 총 3개 야드에서 연간 100기 가까운 재킷과 부유체를 만들 수 있는 대형 하부구조물 생산 기지가 고성군에 들어서는 것이다.

제3야드를 짓는데 투입된 비용은 설비비용 등을 포함해 약 1조원. SK오션플랜트가 막대한 돈을 들여 생산능력을 키우는 이유는 하부구조물 수요가 해상풍력 시장 성장과 함께 급증할 것으로 예상해서다. 컨설팅사 맥킨지는 2020년 3기가와트(GW)던 아시아태평양(중국 제외) 해상풍력 시장이 2030년 최소 40GW, 2050년 최소 170GW로 커질 거라 전망한다. 해상풍력 개발사 입장에선 운송비를 감안할 때 이 거대한 하부구조물을 가까운 거리에서 조달하는 게 유리하다. 아시아 해상풍력 시장이 커지면 인근에서 하부구조물을 조달할 가능성이 높고, 아시아 하부구조물 제조기업 중 가장 두터운 수주 실적을 가진 SK오션플랜트가 이 물량의 상당 부분을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 2019년 전체 매출의 20%였던 해상풍력 부문이 올해 1분기 54%까지 커진 게 이미 실현 중인 추세를 반영한다.

주목할 대목은 SK오션플랜트에 붙은 '아시아 최대'란 수식어가 하부구조물 시장 진출 불과 수년 만에 만들어졌단 점이다. 중국을 제외하고 아시아 시장에서 해상풍력 도입이 가장 빠른 대만 시장을 선점하면서다. 옛 삼강엠앤티는 두꺼운 철강 파이프인 후육강관을 만들다 해양플랜트, 조선수리업 등을 하던 중 사업을 다각화하며 2017~2018년경 하부구조물 제작에 뛰어 들었다. 2019년 벨기에 개발사 얀데눌이 대만에 짓는 해상풍력 단지에 쓸 재킷 21기를 공급한 걸 시작으로 같은 해 세계 최대 개발사인 오스테드와 대만 단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해상풍력 시장은 실적 기반이라 얼마나 공신력 있는 개발사에 공급 했느냐가 이후 수주에 핵심인데, '깐깐한' 유럽사들과 연달아 계약을 체결하자 이후 일감이 몰려 들었다. 지금까지 대만에 공급한 하부구조물은 약 2GW 규모다. 재킷 기준 대만 시장 점유율이 절반에 이른다.

제3야드 조감도/제공=SK오션플랜트
철강부터 조선업 인프라까지…이미 갖춰진 해상풍력 공급망
하부구조물은 제작 난이도가 높은 제작물에 속한다. 풍력 터빈의 블레이드(날개)·나셀·타워(기둥) 등 1000톤이 훌쩍 넘는 거대한 구조물을 해저에 지지해야 해 높은 내구성이 요구되고 설비 수명도 20~30년으로 길다. 실적이 없는 기업이 진입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한국 내 해상풍력 시장이 아니라 자국산 사용을 요구하는 대만 시장에서 만든 실적이다. 유럽 개발사들이 대만 안에서 하부구조물 기업을 찾지 못하자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서다.

이 낯선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단기간에 선두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 중 하나로는 한국 내 구축된 제조업 공급망이 꼽힌다. 재킷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는 '재료'인 철강의 품질이 꼽히는데, 한국에는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고품질 후판(두꺼운 철판)을 공급할 수 있는 철강사가 있다. SK오션플랜트가 만드는 제품 기준, 재킷 하나를 만드는 데는 다리용 강관(철 파이프) 약 100개, 구조물 지지력을 높이는 엑스브레이스, 전선 등이 지나는 튜브 등의 부속 강관 약 230개가 필요하다. 이런 강관의 재료인 고급 강재를 공급할 수 있는 철강사는 전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재생에너지 공급망을 키우려 하지만, 미국 대형 철강사들의 경우 하부구조물용 고급 철강 생산을 수요만큼 공급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초대형 구조물을 둘 야드가 있다는 것도 핵심이다. 배들이 쉽게 접안 해서 구조물을 가져 올 수 있는 지형에 구축된 야드 등 조선업이 남긴 '유산'이 하부구조물 제작 역량으로 직결됐다. 수 백 개의 철 파이프를 이어 만들 거나 구조물 내부에 필요한 기계장치도 조달이 수월하다. 조선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관련 공급사들이 이미 경남 일대에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어서다. '생산 역량' 측면에서도 앞서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예를 들어 유럽 기업이 제공한 설계를 생산 시설에 맞게 수정하거나, 연간 수십개의 제품을 균질하게 만드는 역량 역시 '제조업을 해 본 경험'이 있기에 가능하다. 자동화가 진척돼 있긴 하지만 용접 품질, 협력업체와의 협업 등 제조업 완성도에선 '경험'의 영역의 역량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이 같은 제조업 역량과 공급망 등이 이미 구축돼 있는 국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중국의 경우 '중국 내 시장'으로 세계 시장과 이원화 되는 경향이 있고, 일본은 제조업 강국임에도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시장에서는 한국 보다 공급망이 촘촘하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해상풍력 시장이 개화할 경우 해상풍력 발전 단지에 투입되는 제품 시장을 한국 기업이 점유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되는 배경이다. 이승철 SK오션플랜트 대표는 "하부구조물 시장의 경우 일본의 공급망도 한국만큼 수급이 원활한 공급망은 구축돼 있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며 "일본 해상풍력 시장이 열리면 그 시장도 아마 한국 제품이 공급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여기에 해상풍력 발전 수요가 폭증 중인 유럽에서 인플레이션 등으로 공급망 병목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한국 기업의 공급력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해상풍력 밸류체인이 다양한 종류의 제조업 기반을 요구하는 만큼 고용 유발 효과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SK오션플랜트의 경우, 2년 전 약 600여명이던 직원수가 SK에코플랜트의 삼강앰엔티 인수 후 약 850명으로 늘어났다. 제3야드가 늘어나면 현재 협력업체 포함 약 2500명인 고용이 5000명 이상으로 늘어날 걸로 예상된다. 이승철 대표는 "지역의 대학교, 특성화 고등학교 등과 연계해 인력을 육성할 계획"이라 했다.

*2022년 SK에코플랜트가 삼강엠앤티를 인수한 후 2023년 2월 'SK오션플랜트'로 사명 변경

SK오션플랜트 제1야드에서 재킷을 만드는 공정의 일부/사진=권다희 기자


재킷 주요 구성 요소/제공=SK오션플랜트

고성(경남)=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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