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태양은 무죄, 윤 정부 업적 될 수 있다
국산 실리콘 태양광은 경쟁력 상실했지만
페로브스카이트 등 새 가능성 남아있다
2008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2세대 태양광 기술 원천 특허 확보를 발표했을 때 ‘한국도 태양 혁명 주도 세력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썼다.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태양광 발전이 한 축을 이룰 것이고, 태양광 기술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한국에도 큰 기회가 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태양광은 생소할 때였다. 그런데 그 10년 후 우리나라에서 태양광 비리까지 벌어질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 ETRI가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태양광 실리콘 패널은 대형 생산 시설이 필요하지만 어려운 기술은 아니었다. 이런 분야는 중국을 당할 수 없다. 지금 세계 실리콘 패널 시장은 중국이 거의 장악했다. 한국은 대부분 업체가 포기했고 한화솔루션이 겨우 버티고 있는 정도다. 또 하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문재인 에너지 탈레반의 등장이었다. 그가 일으킨 탈원전 평지풍파는 이미 경쟁력을 잃은 국내 태양광을 중국의 시장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국 태양광 설치한다고 한국 산림을 파헤친 꼴이었다. 무리하고 비합리적인 세금 사업에는 반드시 비리가 끼어들게 돼 있다.
한국의 자연 조건은 태양광 발전에 불리하다. 그러나 세계엔 적합한 곳이 많다. 세계 태양광 발전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산업으로서는 큰 기회가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에 따르면 작년 세계에서 신규 설치된 태양광 발전 설비는 270기가와트에 달한다. 쉽게 말해 원전 270기 이상의 발전 용량이다. 3년 만에 2배가 됐다. 올해 전망은 320기가와트다. 원전 320기 규모의 태양광 발전 설비가 새로 생기는데 이 중 한화가 차지하는 몫은 10기가와트 정도다.
태양광 실리콘 패널 시장에서 우리가 다시 경쟁력을 가질 수는 없다. 한화도 보조금을 주는 미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다. 184년 전 우랄산맥에서 발견된 광물에 러시아 광물학자 페로브스키 이름을 붙인 것이다. 2009년 일본 학자 미야사카가 이 물질로 태양 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발표했다. 놀라웠지만 당시 발전 효율이 3% 정도로 낮아 관심을 끌지 못했다.
페로브스카이트가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2년 성균관대 박남규 교수가 효율 9.7%의 전고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발표하면서다. 일각에서는 미야사카와 박 교수를 노벨화학상 후보로도 거론한다고 한다. 그 1년 전 정부가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단을 설립했다. 연구 과제마다 매년 100억원 정도를 최장 9년간 지원하는 장기원천기술개발 사업이다. 그중 하나가 멀티스케일 에너지시스템 연구단인데 1년 만에 박 교수의 획기적 연구 결과가 나왔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아직 실험실 수준에 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할지, 그때도 실험실 수준의 품질이 구현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론적으로는 실리콘 패널의 절반 값으로 생산 가능하다. 얇은 박막 형태로 만들 수 있어 산림을 파헤치지 않고 빌딩, 자동차 지붕, 무인기, 실내 조명, 웨어러블 기기 등에 설치해 발전할 수 있다. 만약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한 해 시장 규모가 최대 300조원까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금 태양광 실리콘 패널 시장이 128조원 정도다. 2026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282조원이다.
박남규 교수 발표 이후 세계적으로 페로브스카이트 효율 높이기 경쟁이 벌어졌다. 2020년까지 우리 독무대였다. 세계 기록을 일곱 번 경신하면서 울산 UNIST 석상일 교수팀이 효율 25.2%까지 달성했다. 25%면 태양광 실리콘 패널과 차이가 없다. 그런데 바로 이때쯤 문 정권 태양광 비리가 벌어졌다. 사람에게 죄가 있고 ‘태양’엔 죄가 없지만 지금 업계에선 ‘태양’은 금기어가 됐다고 한다.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태양’이 들어가면 금융권에서 고개를 돌리는 지경이다.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페로브스카이트 효율 세계기록도 중국(26.1%)이 가져갔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럴 때가 아니라고 안타까워한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실리콘 패널과 달리 후발국이 쉽게 따라올 수 없다. 한국은 관련 기술 특허 191건을 등록했거나 출원했다. 세계 최고다. 한국은 이 분야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추종자가 아니라 선도자가 될 수도 있는 산업 분야다.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벽은 높다. 특히 안정성과 내구성 확보가 어렵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성공 가능성을 절반 정도로 예측한다. 그러나 일본, 미국, 중국, 유럽 모두 연구 중이어서 언젠가는 극복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 법규까지 바꾸는 나라도 있다.
윤석열 정부에 ‘태양’은 마땅치 않은 단어다. 자칫 문재인 태양광 비리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리는 엄단해야 하고 우리 산림을 파헤쳐 태양광 설치하는 것도 그만둬야 한다. 하지만 수출 산업은 다른 얘기다. 발상을 전환하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윤 정부의 업적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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