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해체 수준’ 혁신하겠다더니… 달라진 게 없는 LH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이한준 사장 주재로 비상 대책 회의를 열고 무량판 지하 주차장 철근 누락 사태 대책을 내놨다. 설계부터 감리까지 건설 과정의 부정을 막기 위해 ‘반(反)카르텔 공정 건설 추진 본부’를 설치하고, 부실 시공 업체는 한 번만 적발돼도 계약 대상에서 퇴출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 LH 전관 출신들로 엮인 이권 카르텔, 이른바 ‘엘피아(LH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악습을 없애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과 2년 전 직원 땅 투기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에도 정부와 LH는 ‘해체 수준의 혁신’을 한다며 퇴직자가 현업 직원과 결탁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런데도 이번에 부실 시공으로 적발된 아파트 15곳 중 8곳의 감리 업무가 LH 출신이 영입된 업체에 돌아갔다. 심지어 작년 1월 공사 중 붕괴된 광주광역시 화정동 아파트의 감리를 맡았던 전관 업체(광장건축사사무소)가 올해 4월 지하 주차장이 붕괴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는 물론, 최근 정부 점검에서 적발된 단지 15곳 중 두 곳의 감리까지 맡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업체는 지난 5년 동안 LH에서 23건, 428억원 규모의 감리용역을 따냈다고 한다. 지난 2년간 사실상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 셈이다. 2021년 정부는 기능 조정 등을 통해 LH 직원 수를 2000명가량 줄이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800명 감축에 그치고 있다.
LH는 직원 8885명(공기업 4위), 자산 213조원의 거대 공기업인 데다 연간 발주액 10조원에 달해 건설업계 영향력이 막대하다. 게다가 LH 사업비는 국민 재산인 국토를 팔아서 만든 돈이다. 이 때문에 어느 기관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지만, 이에 맞는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해체 수준’ 혁신안, 구호에 그쳤다
2021년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 후, 지난 정부는 정세균 당시 총리까지 나서 “해체 수준의 혁신을 추진하겠다”며 ‘LH 혁신 방안’을 내놨다. LH의 고질적 병폐로 꼽히던 전관예우도 없애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실행 과정에서 유명무실해지거나 허점이 드러나며 ‘이권 카르텔’ 근절 효과는 극히 미미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당시 정부는 LH 퇴직자의 유관 기업 취업 제한 대상을 ‘상임이사 이상’에서 ‘2급(부장급) 이상’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제도 시행 후 실무에 밝은 3급(차장급) 출신이 전관으로 기업에 가는 경우가 잇따랐다고 한다. 특히 LH에서 2급 이상 직원은 500명 안팎으로 전체 직원의 5%(당시 직원 기준) 수준에 그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LH 출신 전관들이 담합해 일감을 나눠 먹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직업 선택 자유 침해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막대한 이권을 고려하면 공무원에 준하는 취업 제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년 임박해 이직… “사실상 로비 창구 역할”
LH 출신의 이직은 60세 정년이 임박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를 담당하기보다 LH를 상대로 한 로비 창구로서 역할을 맡는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LH에서 (정년까지) 할 만큼 충분히 한 후에, 민간 기업으로 옮겨 사실상 정년을 연장하는 셈”이라고 했다.
2021년 정부는 퇴직 5년 미만 LH 출신이 취업 또는 창업한 기업은 LH와 수의계약을 못 하도록 했다. 하지만 경쟁입찰에 참여하는 길은 열려 있었다. LH의 경쟁입찰은 심사 과정에서 ‘전관 기업’에 높은 점수를 준다는 의혹 때문에 투명성 논란이 많은 분야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LH가 발주한 감리 사업 가운데 40%를 LH 퇴직자를 영입한 기업 12곳에서 따냈고, 이번에 부실 시공으로 적발된 아파트 15곳에서도 일부 전관 기업이 2~3개 현장의 감리 업무를 따냈다.
전관예우는 LH가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로 나뉘어 있던 1980년대부터 이어져 온 뿌리 깊은 관행이다. 이전 정부도 전관 폐해를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 전관 영입 업체가 응모하면 평가 점수를 깎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국가계약법상 특정 조건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이 불가능해 무산됐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권 카르텔을 없애려면 LH 출신 전관이 없는 기업이 공공주택 사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 기업들에 입찰 시 가점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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