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여름을 견디는 법

임진주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자 2023. 8.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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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더위가 찾아왔다. 앞으로 점점 더워진다는데, 선풍기와 에어컨 없이 살 수는 없을까. 손쉽게 더위를 피하자고 선풍기를 돌리고 에어컨을 켜는 건 기후 위기를 부추기는 일 아닐까 걱정스럽다. 시원한 바람을 쐬는 데 죄책감이 들었다. 폭염만 온 게 아니다. 장마도 찾아왔다. 비가 오면 시원해질 줄 알았더니 습도가 문제다. 이번엔 꿉꿉함을 견딜 수 없어 선풍기를 틀었다. 빗줄기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재난 현장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너무 뜨겁거나 아니면 너무 꿉꿉하거나. 무슨 날씨가 중간이 없어. 입맛이 떨어졌다. 할 일은 많은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났다. 처음 만나는 여름이 아닌데.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보내고 싶었는데.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계절성 우울증은 주로 가을, 겨울에 찾아온다. 그런데 기사를 보니, 여름에도 계절성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내가 이러는 것도 날씨 때문인가? 날씨 탓한다고 여름이 사라질 리가 없는데. 말은 이렇게 해도 막상 여름이 사라지면 서운할 것 같다. 여름이 무조건 싫은 건 아니다. 여름에만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낮에는 매미, 밤에는 풀벌레 울음소리. 땀을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 여름 노래 플레이리스트. 숲과 들판의 짙은 푸르름. 수박, 빙수, 아이스크림. 얼음을 가득 채운 탄산음료. 바다와 계곡으로 떠나는 여행.

나는 앞으로도 더위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힘없이 축 늘어지고, 새벽마다 잠을 설치겠지. 하지만 길고 지겨운 여름도 언젠가는 끝나겠지. 겨울이 오면, 여름이 그리울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여름을 견뎌야 한다. 여름을 견디는 데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면서, 여름의 특별한 즐거움을 만끽하기, 물론 이 방법이 정답은 아니다. 여름을 견디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여름을 견디는 방법은 달라도, 이번 여름이 당신에게 가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폭염이 불러온 분노는 열정으로 바꾸고, 꿉꿉한 습기 대신 촉촉한 감성으로 채우기를. 당신의 앞날이 여름날 햇살처럼 눈부시게 빛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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