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챗GPT의 최고 승자는 노벨상 작가 모옌이라 생각한다”
2023년 8월 현재 인터넷 서점에서 챗GPT를 검색하면 225종이 나온다. 모두 올해 나온 책이다. 한 해가 다 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나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단기간에 이토록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온 분야가 있었나?
그 책들을 보면 이 시대가 챗GPT에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도 같다. 지식, 돈, 미래, 교육, 기회, 삶의 목적, 업무, 그림 그리기, 글쓰기. 수많은 챗GPT 책의 키워드다. 별로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핫한 ‘챗GPT’로 낚는 책도 있다. 이 책들을 클릭하다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글쓰기에 대한 책이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챗GPT 책 거의 대부분이 말이다. ‘기회’나 ‘돈’이 들어간 책이더라도 결국 글쓰기다. 챗GPT를 활용한 글쓰기. 보고서, 자기소개서, 시, 소설, 더 나아가 책 쓰기를 위한 별도의 챗GPT 책도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 놀랐는데, 첫째는 글쓰기가 이토록 중요했나 하는 것이고, 둘째는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또 나는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글쓰기가 중요하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은 소수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원하고 있었다!
당신도 그럴 듯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챗GPT는 희망을 주는 것 같다. 글쓰기를 연습하지 않아도 챗GPT를 활용하면 단번에 프로가 될 수가 있다고 말이다. 질문만 제대로 하면 챗GPT가 능란한 답을 줄 수 있고, 유료 버전을 쓰면 더 근사한 결과를 내줄 수 있다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일이다. 읽고 쓰기를 되풀이하는 것만이 글쓰기의 유일한 정도(正道)라고들 해왔는데, 이 모든 걸 뒤엎는 일이니 말이다.
챗GPT 전도사 모옌 사례를 보자. 중국 소설가 모옌은 문학상을 받은 동료 소설가 위화에 대한 축사를 챗GPT로 작성했다. 쓸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 챗GPT를 이용했다고 하자 장내가 술렁였다고. 중국에서도 화제가 되고, 중국을 넘어서까지 알려져 나까지 알게 되었다. 5월 일이다.
“이 상을 받는 사람은 정말 놀라운 작가고, 나의 좋은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는 대단하고, 그러니 나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챗GPT를 활용한 축사다. 박사과정 학생에게 챗GPT를 이용해 도와달라며 네 키워드를 줬다고 한다. ‘위화’ ‘살다’ ‘원청’ ‘발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서 이 부분을 읽던 나는 ‘발치’에서 터졌다. 이건 명백히 위화를 ‘멕이면서’ 동시에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 내고자 한 노림수라서. 친하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살다’와 ‘원청’은 위화의 소설 제목이고, ‘발치’는 작가가 되기 전의 위화가 치기공사였던 사실을 짚은 것이다. 챗GPT를 활용했다는 양심 고백(?)을 하고 나서 모옌은 이런 말을 한다. 지금까지 쓴 글은 모두 손수 쓴 게 맞으며, 나는 글쓰기의 힘을 즐긴다고. 앞으로도 소설을 쓸 때는 손수 쓰겠다고 말이다. ‘글’을 쓸 때는 다른 사람이 되는데, ‘펜’을 내려놓으면 또 다른 사람이 된다는 말도 한다. 진지하게 글을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이 갈 만한 이야기다. 현실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글을 끌고 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이 해프닝 이후에 들려올 후속 이야기를 기다렸다. 별게 없었다. 사실, 5월에도 그랬다. ‘중국 유명 소설가의 자기 고백’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글을 못 쓰게 되는 현상)’ ‘노벨상을 받은 작가도 저런다니 다른 사람들도 긴장해야겠다’ 등등 웃지 못할 반응 정도였다. 자기 고백? 라이터스 블록? 중국의 반응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는 그다지 관심도 없는 데다, 모옌의 유머는커녕 속뜻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챗GPT를 가장 잘 활용한 사람으로 나는 모옌을 꼽겠다. 근엄한 줄만 알았는데 첨단을 갖고 놀 줄도 아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까지 던졌으니. 챗GPT의 본질을 꿰뚫어 그럴 수 있었다. 위화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모옌이 한 이 말을 함께 나누고 싶다. “문학은 현실을 넘어설 수 없고, 현실은 늘 문학보다 더 광대할 것이다.” 문학 대신 챗GPT를 넣어도 이상할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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