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랜드마크 vs 랜드마크] 네옴 라인시티와 파리 부아쟁 플랜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도시 프로젝트 네옴의 구체적인 모습이 발표된 지 1년 만인 이번 주 우리나라 DDP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2016년, 석유 의존시대 이후의 미래에 사우디가 나아갈 방안을 찾으려는 사우디의 미래비전 2030 프로그램으로 네옴 프로젝트를 구상한 지 7년 만이다.
네옴에는 산업지구 옥사곤, 관광지구 트로제나, 라인시티 등 세 개의 사업이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길이 170km, 폭 200m, 높이 500m로 계획되는 라인시티다.
라인시티는 기존의 도시들이 분산되어 개발됨으로서, 도시 인프라 건설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사람들의 이동에 비효율적이라는 측면에 착안해, 건물과 도로, 서비스라인을 일직선의 도시 구조속으로 끌어모아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로 구상되었다.
서울시 면적의 16분의 1밖에 안되는 좁은 개발 면적 안에 서울시 인구와 비슷한 900만명을 수용하는 컴팩트한 토지집약형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보행 5분 이내에 도시 기능의 대부분을 해결하게 함으로서 자동차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도로도 매연도 없다.
모든 도시 기능을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수직적으로 분산 해결해 지상부의 땅에 얽매이지 않는 무중력 도시를 표방한다. 또한 일직선의 도시 외부를 거대한 반사유리로 덮어 사막의 태양광을 차단하면서 태양광 에너지를 얻고 풍력을 이용해 제로에너지 도시로 만든다 청사진이다.
2022년 제시된 사우디의 라인시티 모습
정말 그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꿈의 도시가 만들어지리라는 추측을 해보게 된다. 그러나 도시는 교통이나 밀도, 서비스와 에너지라는 하드웨어가 갖추어졌다고 지탱되는 것은 아니다. 인구 900만 명은 사우디 인구 3600만 명의 4분의 1이다. 이 많은 인구를 이주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라인시티는 사우디의 신도시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세계인들이 함께 거주하는 코스모폴리스를 꿈꾸는 것이라 생각된다. 세계인들이 자유롭게 거주할 미래도시의 사회시스템을 함께 제안한다. 라인시티를 자유무역도시로 만들어 전 세계의 미래형 무역 중심도시를 목표로 한다. 유럽과는 2시간 거리이며, 전 세계 인구의 80%가 거주하는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교통의 요지이다.
그러한 곳에 정치적으로 독립적이고, 종교나 인종의 차별이 없으며, 독립된 화폐(현재 제안된 화폐는 데이터다)와 경제적 독립성에 사법권까지 주어진 도시가 들어선다고 상상해 보라. 또한 그 도시가 친환경적이며, 에너지 걱정이 없고, 일자리가 넘쳐나며, 모든 것이 AI에 의해 서비스 되고 이동까지 편리하다면, 당연히 그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라인시티는 100년 전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가 제안한 이상도시, 파리의 ‘부아쟁 플랜(Plan Voisin)’을 연상케 한다. 1925년, 르 꼬르뷔지에는 19세기 유럽의 산업화·도시화 물결 속에서 전통적인 도시들이 겪는 교통, 환경문제에 주목하며, 빛나는 도시라는 미래형 도시를 제안했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부터 시떼섬까지 기존의 낡은 건물들을 헐어내고, 녹지 사이에 햇볕이 잘 비치도록 충분한 인동간격을 가진 고층 아파트 블록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거 공급난을 겪으면서 그의 플랜은 신생국가들에 적용됐다.
우리나라에도 1963년 마포아파트 단지라는 현대식 아파트 단지를 필두로 많은 아파트 단지가 지어졌는데, 결국은 그의 비전이 실현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르 꼬르뷔지에가 간과했던 것은 파리라는 도시가 갖는 역사성이었지만, 신생 국가들에게는 새롭고 멋진 이상형 도시의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100년 前의 파리 개조계획, 부아쟁 플랜
라인시티 사업을 총괄하는 사우디의 왕세자이자 국무총리인 마호메트 빈 살만은 이 미래도시가 마치 인류에게 새로운 꿈을 주고 자유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했던 미국 신대륙의 환상을 실현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하드웨어가 되는 물리적 구조만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식하고 비즈니스 방식으로 미래 신도시를 창조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이미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 경제인들, 리더 그룹들과 접촉하며 MOU를 맺고 인센티브를 주며 신도시 개발을 위한 자신의 밥상에 숟가락을 하나씩 얹어 놓으라고 권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삼성, 현대 등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스리랑카와 인력 조달협약을, 독일과는 그린에너지 협약을 맺었다.전기차 포뮬러대회, 홍해 국제영화제, 동계 아시안게임 개최와 아시아 풋볼연맹 후원 등등 많은 협력을 맺으며 도시가 가져야 할 소프트웨어를 하나씩 확보해가고 있다.
만일 사우디의 신도시 라인을 그저 세계의 여느 신도시와 같이 만든다면, 세계 어느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도시의 시작은 분명 누군가 나서서 도시를 만들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겠지만, 결국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고 싶어 할 것인지’ ‘나는 누구와 함께 살 것인지’ ‘공동체의 가치와 문화는 공유할만한 것인지’ 와 같은 이슈일 것이다.
라인씨티는 단순해 보이는 과격한 아이디어로, 너무 좁은 곳에 살고 싶지 않다는 견해가 피력되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건축가로서 ‘서울로 7017’을 설계한 건축가인 위니마스가 얘기하듯 ‘이런 곳에 한 번쯤 살아 보고 싶다’는 도시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또 그 속에 포함될 소프트웨어의 상상력을 보여줌으로써 전 세계의 주목을 끄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이 도시가 정말 성공적인 결과물이 될 것인가는 지금부터의 일이다. 사막의 기후에서 에너지 문제가 해결될 것인지? 사우디에서 투자할 5000억달러라는 비용의 2,3배에 달하는 도시개발 비용을 어떻게 유치해 올 것인지? 물음표 투성이다.
새로운 경제체제, 새로운 세제, 투자개발자의 권한 배분, 인프라와 개별 건축물의 소유권 관계, 물의 공급 문제, 한정된 공간 안에서 쓰레기 등 혐오시설의 처리 문제, 시간이 지나면서 생길 빈부격차에 따른 주거지 쇠퇴 문제, 범죄예방과 프라이버시의 균형 문제 등등 해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도시에는 유기적인 성질이 있다. 라인시티가 지금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결국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것이다. 부아쟁 플랜이 결국 현실적으로는 변형된 형태로 적용되었지만 누구라도 르 꼬르뷔지에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부인하지는 못했던 것처럼, 라인시티도 그 자체로 분명 인류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줄 것이다.
비록 라인시티가 100층이 넘는 500m 높이로 지어지지 못하더라도, 170㎞의 연속된 길이로 지어지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5분 이내 거리에서 서비스되는 역세권 중심의 노드 거점들이 개발되고 라인을 통해 이웃 노드들과 연결된다면, 효율적인 도시의 장점을 살리면서 우리가 염려하는 도시의 경직성도 해소할 수 있다. 라인이 갖는 상징적 가치를 유지하며, 미래도시의 기능을 충족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한 번쯤 방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리고 충족된 일자리에 의해 머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것이 라인시티의 성공이기도 하겠지만, 라인시티가 가진 선형적 수직도시의 이상적인 모습이 인류에게 미래도시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라인시티의 목표에서 염려되는 것은 인지적 도시이다.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하고 상상 속에서만 드러나는 AI에 의해 통제될 인지적 도시가 인류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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