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김은경 위원장, '미안하다' 한마디가 왜 그렇게 어렵나
김은경 혁신위원장, 노인 폄하 논란…공식 사과는 거부
양이원영도 비하 발언 공감 논란…N번째 말실수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둘째 아이 22살 된 지 얼마 안 된 아이인데, 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인지, 2학년인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어요. 엄마 왜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해?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생각할 때는 평균 여명을 얼마라고 보았을 때 자기 나이부터 여명까지, 엄마 나이로 여명까지 해서 비례적으로 투표를 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 (중학생이 보기엔) 그 말은 되게 합리적이죠."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은 지난달 30일 2030 청년과의 좌담회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발언 이후 김 위원장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노인을 폄하했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청년들과 가진 좌담회에서 아들이 중학생 시절에 낸 아이디어를 소개하며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했을 뿐, '1인 1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부인한 바 없다"라고 해명했다.
사과는 없었다. 입장문에서 "중학생의 아이디어를 왜곡해 발언의 취지를 어르신 폄하로 몰아가는 것은 전형적인 갈라치기 수법"이라고 하는 걸 보니 김 위원장은 억울함이 앞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해명이 아니라 사과를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청년들이 모여있는 자리였으니 '청년 정치 참여 독려'를 위해 꺼낸 아이디어라는 것이 '여명 비례 투표'였다는 변명을 누가 공감할까?
세대 간 갈라치기를 부추긴 것은 '남은 수명에 따라 투표권을 비례해서 줘야 한다'고 에둘러 말한 사람 아닌가. 일각에서는 '민주당은 6070 지지율이 낮아 노인층을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그런 말이 나온 것'이라는 날 선 비난까지 나왔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여당에 비난할 구실만 만들어 준 격이다. 국민의힘은 곧바로 김 위원장을 비판하며 혁신위 해체를 주장했다.
여기에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도 '막말 대열'에 합류하며 논란을 키웠다. 양이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위원장의 발언이 "맞는 얘기"라면서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은 그 미래에 살아 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라는 내용을 썼다가 당 안팎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나마 양이 의원은 논란 3시간 만에 "제가 쓴 표현으로 오해를 불러일으켜 죄송하다. 나이 많은 이들의 정치 참여를 무시하거나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는데 잘못 표현했다"라며 빠른 사과에 나섰다. 다만 "청년층의 정치 참여의 필요성과 함께 제 자신을 생각하며 장년층과 노년층의 정치 참여 책임에 대해 쓴 글"이라는 변명도 덧붙였다. 김 위원장과 같은 논리다.
양이 의원이 김 위원장 말에 공감이 가서 쓴 글이라도 문제, 발언의 적절성을 떠나 혁신위원장이기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에 쓴 글이었어도 문제다. 전자는 판단력 부족, 후자는 의도를 의심받을 수 있어서다. 양이 의원이 논란이 되는 상황을 알면서도 김 위원장의 편을 들어준 상황은 '무조건적 지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양이 의원은 일찍부터 '친명(이재명)'임을 강조하며 오는 총선에도 '비명' 양기대 의원의 지역구인 광명 지역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출범 이후 '이재명 1년 평가'가 없는 혁신위를 두고 당내에서는 '친명 혁신위'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한 비명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양이 의원이 글을 올린 의도를 두고 "당연히 친명끼리 편을 들어준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 위원장도, 양이 의원도 말실수로 여론의 비판을 받은 것이 처음이 아닌 만큼 더 조심했어야 한다. 부주의한 발언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는 것,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라고 변명하는 것도 반복된 패턴이다. 김 위원장은 초선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소통이 안 됐다며 '코로나 학력 저하' 현상에 비유하며 의원들의 비난을 샀다.
양이 의원의 말실수는 이미 여러번 언론에 오르내린 바 있다. 대표적으로는 지난 4월 '넷플릭스가 한국에 3조 3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거꾸로 이해해 "윤 대통령이 넷플릭스에 3조 3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왜 투자하나"고 쓴 페이스북 글이 있다.
꼬투리 잡히기 싫으면 꼬투리 잡힐 일을 안 하면 되지 않을까. 사석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여당은 우리가 실수하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비판 거리가 생기면 국민의힘에서 곧바로 정쟁 소재로 이용하고, 민주당은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 피로도가 높아지면 투표소에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 정당이 우세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혁신위가 '당 쇄신'과 '도덕성 회복'을 외치고 출항했으나 난데없는 난관들을 자초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김 위원장이 앞으로 공식 석상에서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발언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너무 큰 기대일까. 이어지는 김 위원장의 실언 논란이 '여의도 문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은 아직 사과하지 않고 있다.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김 위원장에게는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들까.
many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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