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익률 제고, 말은 쉽지만 [아침을 열며]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도입된 재정계산제도는, 2003년부터 5년 주기로 국민연금의 장기적인 건강상태를 점검하여 그에 걸맞은 대책을 마련함에 목적이 있다. 필자는 2003년 1차부터 2023년 5차에 이르기까지 5차례에 걸쳐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렇다 보니, 시기별로 재정계산위원회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도 달라져 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2003년 처음 시행한 1차 재정계산은, 우여곡절도 많았으나 가장 열의를 가지고 운영되었던 재정계산위원회(당시 명칭으로는 국민연금발전위원회)였던 것 같다. 재정계산을 처음 시행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외국 사례도 열심히 들여다봤다. 공식적인 위원회를 구성하여 초장기간에 걸친 재정추계를 처음 실시하다 보니, 위원회의 긴장감이 꽤 높았다. 이해집단을 대표하는 위원과 전문가뿐 아니라 정부 부처 사이의 신경전도 있었다.
국민연금발전위원회 산하의 제도발전전문위원회 간사위원을 맡았던 필자는, 단 하루 만에 정부 부처로부터 50통 가까운 전화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간사위원이 중립을 지키지 않는 것 같다는 정부 부처들의 입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특정 이슈들에 대해 정부 부처가 자신들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재정안정을 중시하는 부처와 재정안정과 함께 노후소득보장의 적절성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부처와의 시각 차이에서 기인했다.
이처럼 적지 않은 논란 끝에, 2003년 1차 국민연금재정계산에서는 재정평가기간을 70년으로 설정하고, '재정평가기간 말의 적립배율 2배를 재정안정지표로 설정'하였다. 이 내용이 의미하는 바는, 재정평가기간인 70년 후, 즉 2003년부터 70년 후인 2073년 말에 가서도 그 시점으로부터 2년 동안, 다시 말하면 2075년에도 1년 동안 연금으로 지급할 돈을 확보하고 있어야 국민연금이 재정안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시 간사위원으로서 '80년'의 재정평가기간을 선호하였던 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위원들이 거의 없다 보니, 결국 타협안으로 70년이 우리 국민연금의 재정평가기간으로 설정되었다. 필자는 2008년 2차 재정계산위원회부터 2018년 4차 재정계산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재정평가기간 연장을 주장해 왔다. 처음에는 80년으로 10년의 기간 연장을 주장했고, 2018년 4차 재정계산 때에는 100년으로 평가기간을 30년 더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추계기간은 여전히 70년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연금을 배워 온 일본은 100년의 추계기간을 채택하며, 100년 뒤 적립배율 1배, 즉 2123년에 가서도 1년 동안 연금 지급할 돈을 확보하고 있다. 2055년에 적립금이 소진되는 우리와 크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지난 20년 동안 평균수명이 크게 늘었음에도 재정평가기간 연장이 없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 연금 받는 기간이 늘어나게 되어 재정평가기간 연장도 불가피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2018년의 4차 재정계산위원회에서는 재정평가기간을 70년에서 40년을 단축하여, 30년의 기간에 대해서만 평가하자는 황당한 재정안정화 방안이 등장했다. 4차 재정계산에서는 2057년에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평가기간을 기존의 7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한다면, 2018년에 30년을 더한 2048년은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되기 이전이다 보니, 강력한 재정안정 조치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꼼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안이, 2018년 4차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의에서 그것도 첫 번째 재정안정방안으로 제안되었다. 지나고 나면 너무도 황당한 제안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음에도, 그 당시의 정치상황에서는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재정안정방안이 거리낌 없이 제시될 수 있었다.
과거 4차례의 재정계산을 소환하는 이유는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과정에서도, 2018년 꼼수 재정안정방안의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연금개혁을 하지 않아서 똑같은 수준의 재정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1.8%포인트는 더 올려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제대로 된 재정안정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5년 전보다 더 악화된 제반 요인들로 인해 2%포인트 이상의 추가 인상 요인이 발생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윤석열 정부에서도 제대로 된 재정안정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단 10년 만에, 그 10년 전의 국민연금에서 예상했던 동일한 수준의 재정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4%포인트 정도의 보험료를 추가로 인상해야 한다는 뜻이다.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지난 25년 동안 단 1%포인트도 올리지 못했던 점을 상기하면, 크게 부담이 되는 수치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재정안정방안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여러 주제를 동시에 다루다 보니 논의할 시간이 크게 제약되고 있음에도, 재정안정방안 마련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부수적인 주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서다. 기금운영을 잘해서 수익률을 높이면, 올해 3월에 발표된 5차 재정추계의 재정안정 달성에 필요한 보험료율보다 보험료율을 적게 올리면서도 재정안정 달성이 가능하다는 주장들이 득세하면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서다.
국민연금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할 전문가는 없다. 문제는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는 우리의 노력도 중요하나,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연금 수급연령 연장과 보험료 인상 등과 같이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워도, 일단 도입에 성공하면 확실한 재정안정효과를 가져오는 정책수단과 달리,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는 우리 통제권 밖에 있는 외생변수라서 그러하다. 기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 아무리 기금자산의 포트폴리오를 잘 구성할지라도 외부 여건 변화에 따라, 당초 예측치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서다.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국민연금을 이러한 '예측의 오류' 위험에 과다하게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설령 확률적으로는 90% 이상 달성이 가능할지라도, 만의 하나 예상치 못한 주변 환경변화로 인해 '예측의 오류'가 커질 경우에는 수습할 방법이 없어서다. 이미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친 우리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해 몇 개 남지 않은 고통스러운 정책수단을 채택하려는 노력 대신에, 기금 수익률 제고를 통한 재정안정이 달성 가능하다는 '희망고문'에 매달릴 가능성이 커 보여서 하는 말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은, 외국의 공무원연금 같은 특수직역의 공적연금과 민간이 운영하는 기업연금과는 그 속성이 크게 다르다. 비유하자면, 주변 여건이 빠르게 변화할 경우 이러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쾌속정보다는, 정치적 제약 등으로 인해 빠른 대응이 어려운 항공모함과 같은 특성이 있다. 항공모함으로 비유되는 국민연금은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항공모함 속성의 국민연금이 미래 예측이 불확실한 자본시장의 높은 수익률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수습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함에도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가 확정적인 국민연금 재정안정방안의 주요 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넘쳐 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우리가 시나리오로 설정한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는 상상을 초월한 어려움이 닥쳐올 수 있어서다.
현재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나 국회 연금특별위원회에서는 5차, 즉 금년 3월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제시한 기금 수익률보다도 수익률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주장들이 거듭 제시되고 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기금운영을 잘 해왔던 외국의 소규모 국가 또는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기금의 과거 수익률 데이터로 우리 국민연금의 미래 수익률을 예측하고 있어서다. 지난 수세기 동안 전 세계가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지구 환경 파괴를 통한 지속이 불가능한 길을 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 고도 성장이 더 이상 지속이 불가능할 것임을, 최근 들어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는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를 통해 체험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지구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 즉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보다는 비용이 더 들어가는 방향으로의 기업 운영이 불가피할 것이며, 이는 곧 기업의 이윤 감소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고도 성장이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배경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과거에 비해 기금운용 수익률이 떨어질 것으로 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운영할 연기금 규모도 덩달아 늘어나게 돼서다. 투자자금이 많아지면 투자 수익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금 대비 높은 수익률을 제공할, 투자 대상이 될 자산이 제한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라서 그러하다. 외국의 과거 데이터에 근거하여 우리 국민연금이 향후 70년에 걸쳐 매년 지금보다도 더 높은 기금운용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미래 전망의 '예측 오류'가 커질 수 있다고 보는 배경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과거와 현재보다 더 높은 국민연금의 미래 기금운용 수익률을 당연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좌고우면하면서,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봐야 할 때인 것 같다.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를 통한 국민연금 재정안정 달성을, 재정안정 방안이 아닌 재정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정 가능한 시나리오 중의 하나로만 참고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그 어떤 연기금보다도 앞서서 지속 가능(ESG)한 경영을 하는 기업 위주로 투자하고 있는 네덜란드 공무원 및 교직원연금(ABP, National Civil Pension Fund),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일본 공적연기금(GPIF, Government Pension Investment Fund)은 캐나다연금(CPP, Canada Pension Plan),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에 비해 수익률이 낮은 편이다. ABP는 여타 연기금보다 먼저 '인권존중(Respects for human rights)'을 바탕으로 ESG 성과가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철학을 채택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천연자원 보존 등이 2050년까지 주요한 테마라고 판단해 관련 분야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모든 세대를 위해(For All Generations)'서라는 모토를 내세우는 일본 공적연기금 역시, 2015년부터 초장기 투자자로서 지구 환경 훼손과 같은 '부정적인 외부성을 초래하며 얻는 단기적인 수익 추구'와는 거리를 두는 투자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일본 연기금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기금운영을 잘못해서라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는 기업 위주의 기금 투자와 항공모함 속성의 전 국민 대상 공적연금의 특성을 감안한 투자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수출주도형, 그리고 제조업 중심의 우리 경제가 처한 국내외 현실을 고려한다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과거보다는 기금운용 수익률을 더 낮게 잡는 것이 현실적으로 보인다. 지구 환경 훼손을 초래한 수세기 동안의 고속 성장으로 인해, 지구인 대다수가 체험할 수 있을 정도의 환경변화, 아니 환경재앙을 목도하고 있어 그러하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갈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의 기업 경영이, 우리 국민연금의 기금투자가 택해야 할 길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보다 앞서가는 주요 연기금의 투자행태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때이다. 지난 16년 동안 재정안정 조치를 미루다 보니, 꽤나 고통스러울 국민연금 재정안정방안을, 그것도 시급하게 마련해야만 함에도,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를 통한 재정안정 달성이 가능하다는 논거로 인해, 재정안정 조치의 절박성과 시급성이 희석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커 보여서 하는 말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한국연금학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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