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다 보면 누구에게나 선호하는 여행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눈이 부시게 화려한 도시부터 산이나 바다 같은 광활한 자연이 끝없이 펼쳐진 곳까지, 저마다 매력을 느낀 포인트도 각양각색이다. 그중 나보영 작가를 매료한 곳은 탐스러운 포도알이 영그는 장소였다.
작가는 십수 년 전, 프랑스 보르도의 와이너리에 발을 딛자마자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이후 와이너리에 편지를 보냈다. 직접 방문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이렇게 시작한 와인 여행으로 작가는 유럽 5개국을 돌았다. 이 여정을 정리해 한 권으로 엮은 책이 바로 ‘유럽 와이너리 여행’이다.
유럽 와이너리 여행이라는 단순한 제목하에 작가는 그간 보고 느낀 모든 일을 담았다. 특히 사전식 정보 나열 대신 현장에서 마주한 일화를 자연스럽게 풀어냈기에 누구나 술술 읽기 좋다.
아직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근교 여행지 리스트도 추가했다. 지역별 교통편, 추천 코스까지 소개해 책을 읽고 있노라면 해당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진다.
이에 나보영 작가를 만나 그의 여행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나 작가와의 일문일답.
자기소개 부탁한다.
9년 차 여행 작가다. 여행책 ‘유럽 와이너리 여행: 어른에게도 방학이 있다면, 와인이 시작된 곳으로’, ‘리얼 후쿠오카 PLUS 벳푸·유후인’ 등을 썼다. 이 밖에 SBS, KBS를 비롯한 채널에서 방송 여행 코너에 출연하거나 ‘코엑스 여행 페스타’와 같은 강연을 통해 여행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여행 작가라는 직업이 아직 생소한 사람도 있다. 이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여행지에 다녀와서 책 출간, 신문과 잡지에 기고나 연재, 방송 출연과 강의 등을 하는 직업이다. 새로운 여행지, 자신만의 테마가 있는 여행지, 그중에서도 특별히 전문 지역으로 삼은 여행지에 다니면서 취재와 촬영을 한다. 다녀온 후에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세상에 여행 이야기를 전한다.
여행 작가라는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어릴 때부터 책과 여행을 좋아했다. 새로운 걸 발견하고, 낯선 것과 마주하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항상 그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표현해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잡지사에서 여행, 와인, 음식 분야를 담당하면서 경력을 쌓았고, 회사를 나온 후 완전히 여행 작가로 전향했다.
그간 여행했던 곳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여행지는 어디인지.
프랑스 루아르(Loire)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루아르강을 품은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강을 따라 이어지던 15~16세기 성의 압도적인 풍광과 계곡마다 자리한 와이너리에서 만드는 섬세한 화이트 와인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 전 ‘유럽 와이너리 여행’이라는 책을 간행했다. 어떤 책인가.
유럽 5개국의 28개 와이너리 여행기를 담은 여행 에세이다. 읽는 사람이 함께 여행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프랑스에서 출발해서 포르투갈에 이르기까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지하 동굴 저장고, 열기구를 타고 올라 포도밭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와이너리, 중세 성이나 수도원이었던 와이너리 등 독자가 책을 읽으며 색다른 장소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책에서 소개한 장소에 가보고 싶어진다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기점 도시 정보와 해당 와이너리까지 가는 법도 안내했다.
많고 많은 주류 중 와인에 빠지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작가가 생각하는 와인의 매력은.
여러 주종을 접해봤는데, 오감을 집중해 “어떻게 이런 향과 맛이 가능한 것일까”라고 궁금해진 술은 와인이 처음이었다. 와인은 같은 지역에서 같은 품종의 포도로 태어나도 재배, 수확, 발효, 숙성에 따라 셀 수 없을 만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완성된다.
각각 맛을 보면, 결코 단순하거나 직설적이지 않고, 천천히 매력을 드러내면서, 해마다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마치 보면 볼수록 궁금하고 끌리는 사람처럼.
본격적으로 와이너리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처음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 갔을 때, 고성과 저택 와이너리에 단숨에 반했다. 와이너리 사람들과 함께 포도 수확 체험 후에 맛본 보르도식 새참도 특별했다. 그때부터 전 세계의 와이너리를 다녀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방문한 와이너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그 이유는.
성이자 와이너리인 슐로스 폴라즈(Schloss Vollrads)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일기에 등장하는 곳인데, 지금도 그가 사랑했던 맛의 와인을 만든다. 직접 취재하러 갔던 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 오래된 성의 저택에서 혼자 잤다.
사방은 어둡고 부엉이는 울어대고 고가구들은 삐걱대는 소리를 내서 으스스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특별한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나 싶다.
초보 여행자가 방문해도 좋은 와이너리를 추천한다면.
초보자라면 투어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고, 홈페이지에서 쉽게 예약할 수 있으며, 대도시에서 가까운 곳이 적합할 듯하다. 파리에서 멀지 않은 ‘모엣 샹동(Moet&Chandon)’과 바르셀로나에서 가까운 ‘파밀리아 토레스(Familia Torres)’를 추천한다.
28km에 달하는 지하 저장고 투어, 소믈리에와 함께하는 테이스팅, 포도밭에서의 피크닉, 포도 수확 체험 등을 해볼 수 있다.
전문가로서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와인이 있다면.
기회가 된다면 ‘와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샴페인을 한 번쯤 접해보면 좋을 듯하다. 특히 생일, 결혼식, 기념일 등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빛을 발할 것으로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폴 로저(Pol Roger)라는 샴페인을 즐겨 마시는데, 시중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근교 여행지도 함께 여행했다고 들었다. 그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프랑스 루시용(Roussillon) 지방의 해변 마을 콜리우르(Collioure)가 있다. 피카소, 마티스, 앙드레 드랭 등의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즐겨 찾았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좁은 골목들을 몇 개 통과하고 나면 갑자기 짙푸른 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지는데, 하늘과 바다 모두 누군가 가장 짙고 예쁜 파랑을 구해다 풀어놓은 것처럼 선명했다. 프랑스에서 콜리우르만큼 파란 하늘은 없다던 마티스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향후 여행 작가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여행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결국 재미와 휴식이다. 이번 신간의 부제목에 ‘어른에게도 방학이 있다면’이라는 문구를 쓴 것도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올해에 두 권의 여행 에세이를 더 쓰기로 돼 있는데, 그 책을 통해서도 또 다른 즐거움과 여유를 전하고 싶다.
너무 힘들게 사는 우리 어른들에게, 휴가가 터무니없이 짧은 한국인들에게, 여행마저 너무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쉼을 선사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