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개관 앞둔 대이집트박물관… 관광 부활, 유물 반환 노려[글로벌 현장을 가다]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 기자 대(大)이집트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 앞 정원에서 가이드가 박물관 투어를 신청한 관광객 40여 명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그의 뒤 멀리 기자 고원(高原) 대피라미드가 보였다. 대피라미드에서 불과 2km 떨어진 대이집트박물관에서는 이집트 관광의 상징과도 같은 3개 피라미드를 조망할 수 있다.
정식 개장 전이어서 박물관 로비와 정원에 있는 유물 10여 점만 관람할 수 있었다. 오후 2시, 섭씨 41도를 넘는 폭염에도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일본 파키스탄 인도 등 여러 국가에서 온 관람객이 모였다. 부속 건물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박물관 관계자는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2월 개장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일피일 미뤄진 개관 눈앞
이집트 정부는 2003년 국제 공모전을 열어 설계 및 시공사를 선정하고 2005년 4만9000㎡(약 1만4800평) 터를 확정해 2012년 가을 개관을 목표로 착공했다. 황금가면으로 유명한 파라오 투탕카멘 무덤에서 나온 유물 4549점을 발견 당시 그대로 재현하는 등 유물 10만 점을 전시하는 세계 최대 규모 박물관 건립을 계획했다.
하지만 2011년 당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심해지면서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2018년 개관을 목표로 박물관 사업을 재추진했지만 이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어졌다. 자재 수입의 어려움과 역대급 경제 위기로 개관일은 미뤄졌다.
중동 영향력 키우려는 日 지원
경제 위기에 빠진 이집트 정부가 공사 예정 기간을 10년 이상 넘기며 21년간 대이집트박물관을 지을 수 있는 배경에는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
사업 초기에 참여한 일본 정부는 예상 사업 비용 5억 달러(약 6410억 원) 중 4억6000만 달러(약 5899억 원)를 차관으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사 기간이 길어지며 사업비도 10억 달러(약 1조2820억 원)까지 늘었지만 일본 정부는 그 75%를 빌려줬다. 자금뿐 아니라 건설 기술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본과 이집트 양국 정부는 대이집트박물관을 “일본-이집트 교류 협력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올 4월 30일 이집트를 찾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대이집트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일본은 이집트 투자 규모를 키우고 있다. 대이집트박물관을 포함해 이집트 정부가 2030년까지 마치겠다고 밝힌 국가종합개발계획 프로젝트에 총 30억 달러(약 3조8460억 원)를 직접 투자나 차관 형식으로 제공했다. 카이로 지하철 4호선 개발 및 대학 건립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일본이 2010∼2019년 이집트에 제공한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1억7100만 달러(약 2192억 원)로 걸프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4번째로 많다.
일본이 이같이 공을 들이는 데에는 줄곧 아랍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온 이집트 정부의 힘을 빌려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 일본은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틈새를 파고드는 중국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올 3월 대표적 중동 앙숙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중재했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회담했다. 또 미국 백악관보다 먼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초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이집트 신(新)행정수도 건설 비용을 대는 등 물량 공세도 거침없다.
일본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중동에 크게 의존하는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 수입 기반을 튼튼히 한다는 방침이다. 기시다 총리는 6월 27일 자민당 임원 회의에서 중동 방문에 앞서 “자원 외교에 더해 복잡해지는 국제 정세에서 중동에서의 일본 역할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두 마리 토끼’ 잡을까
이집트 정부는 대이집트박물관 개관으로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첫째는 관광업 부흥이다. 이집트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큰 관광업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이집트를 찾은 해외 방문객은 2019년 1302만6000명에서 2020년 367만7000명으로 급감했다. 2021년 760만 명대로 일부 회복세를 보였지만 아직 멀었다. 팬데믹 전인 2019년 126억 달러(약 16조3000억 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관광 수입은 2020년 70% 감소해 40억 달러(약 5조1950억 원)에 불과했다.
올해를 관광업 부활 원년으로 삼은 이집트 정부는 대이집트박물관이 그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집트 정부에 따르면 대이집트박물관이 개장할 경우 하루 예상 방문객은 1만5000명, 연간 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기존 박물관 관람객의 3배가 넘는다. 대박물관 관계자는 “피라미드와 대박물관을 연계한 복합 관광단지가 조성되면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을 더 많이 불러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박물관 개관 시점에 맞춰 성대한 홍보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둘째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 문을 열면 유럽 열강이 과거 빼앗아 간 유물을 되찾아 오는 데 훨씬 유리해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고대 이집트 유물을 다수 보유한 서양 주요국들은 이집트 정부의 유물 반환 요구를 거부하면서 “이집트가 고대 유물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터무니없는 주장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다만 이집트 내부에서도 박물관 개관이 내년 2월을 넘길지도 모른다는 회의적인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날 대이집트박물관에서 만난 한 이집트인은 “또 무슨 이유로 개관이 미뤄질지 모를 일”이라며 “오늘 직접 와서 보니 그 많은 유물을 다 옮겨오고 공사를 마무리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강성휘 카이로 특파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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