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도 손으로 만져서 알 수 있다?...시각장애인 교수의 힘찬 포부
지난달 28일 서울역에서 가 교수를 만났다. 대전에서 혼자 열차를 타고 올라온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가 교수는 “의료 AI를 포함해 재활공학, 장애인용 메타버스나 디지털트윈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런 인생 목표를 가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목표를 갖기 이전에 이겨내야 할 고난과 역경이 삶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에서 시각장애인 부부 사이에 태어났다. 가계가 어려워 7살에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중학생 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서울맹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던 중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1996년 무렵 주변 장애인 친구 3명이 잇따라 자살한 것이다. 가 교수는 “장애가 삶을 포기할 이유가 아니란 점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 26살이 되던 해였던 1998년 연세대에 입학했다.
입학 후에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됐다. 그는 인문학부로 입학했지만 공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가 교수는 “당시 대학 입학선물로 전자사전이 유행했는데, 전자사전의 스크린을 점자 형태로 만들면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그런 제품을 만들 곳은 없었고 젊은 객기에 ‘내가 만들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학 수업 수강을 신청했다. 그러나 수강을 거절당했다. 시각장애인이 도표나 수식이 많은 공학 수업을 들으려 한다는 것에 ‘망상이냐, 만용이냐’는 비판을 들었다. 공대에서도 아직 시각장애인을 위한 수업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들었다. 가 교수는 당시 공대 학장을 찾아갔다. 한 과목만 듣겠다고 사정을 했고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그는 첫 공학 수업을 들었다. 가 교수는 “역시 수업은 어려웠다. 당시 교수님이 판서를 하며 ‘이것’, ‘저것’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안 보이니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과학고 출신의 룸메이트에게 도움을 받았다. 교재를 읽어주며 이해를 돕는 역할을 했다. 가 교수는 “처음엔 인문학부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그래픽이 나오니 ‘마름모 모양의 방패에 꼬리가 두 개 달려있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이과생 친구의 도움을 받고 머릿속에 그림이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이렇게 공부해 결국 해당 수업에서 A를 받았다. 전자 책이 있는 전공 서적은 점자로 변환해 공부하는 등 형설지공하며 한국에서 석사까지 마쳤다.
이후 피츠버그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그러다 2019년 KAIST로 적을 옮겼다. 가 교수는 “장애인을 위한 환경이 상대적으로 나은 미국에서 혼자 연구자로 잘 사는 것보다 한국에 돌아와 재활의학 및 공학 분야 후학을 양성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자로 살며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의 인기아이템인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와 화면의 내용을 읽어주는 스크린리더, 컴퓨터 속 문서를 점자로 변환하는 점자번역프로그램,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전 세계적으로 시각장애인 학자들은 드물다. 대부분 문과 쪽 학자들이며 이과 쪽은 숫자가 적다. 또 대부분이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지게 된 중도 시각장애인들이다. 가 교수처럼 선천성 시각장애인은 거의 없다.
가 교수는 장애가 연구에 유용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라이다 센서는 레이저 신호를 이용해 주변 사물을 인식하는 장치로 자율주행차의 눈이라 불린다. 가 교수는 “라이다를 사람들은 눈이란 관점에서 레이저를 쏜다고 생각한다”며 “그렇다 보니 알고리즘이 복잡해지는데 레이저를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라 생각하면 직관적이고 간단한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곧바로 택시를 타고 또 다른 일정을 위해 떠난 그는 “시각장애인이 단순 텍스트가 아니라 색깔이나 도면을 만져볼 수 있는 연구 기획을 위한 회의가 잡혀있다”며 “그간의 받았던 사랑의 빚을 과학기술로 갚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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