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 채취당한 흑인의 ‘불멸 세포’…72년 만에 보상받는다
전 세계로 퍼져나가 연구 활용
유족, 세포 판매 회사와 합의
70여년 전 세포를 무단 채취당해 본인도 모르게 인류 의학사에 기여하게 된 미국 흑인 여성이 마침내 보상받을 수 있게 됐다.
BBC는 1일(현지시간) 자신의 세포를 도둑맞았던 헨리에타 랙스(사진)의 유족과 랙스에게서 사망 전 채취한 암세포를 배양해 전 세계 실험실에 판매한 서모피셔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이 전날 합의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1951년 2월, 다섯 아이의 엄마였던 31세의 랙스는 질 출혈이 멈추지 않자 존스홉킨스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랙스의 자궁경관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 담당의였던 하워드 존스 박사는 랙스에게서 채취한 암세포를 본인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평소처럼 인근에서 연구소를 운영하던 조지 게이 박사에게 보냈다. 게이 박사가 수집한 다른 암세포들은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전멸했지만 랙스의 몸에서 나온 암세포는 20~24시간마다 2배로 무한 증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랙스는 병원을 찾은 뒤 8개월 만에 숨졌다. 그는 죽기 전까지 도둑맞은 자신의 세포가 죽지 않는 ‘불멸의 세포’로 불리며 전 세계 연구실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후 이 세포는 ‘헬라(HeLa)’라는 이름이 붙었고 소아마비 백신 개발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암, 불임 연구 등에 활용됐다. 그 결과 수많은 의학적 발전이 이뤄졌다.
존스홉킨스 병원은 순수 연구 목적으로 헬라 세포를 다른 연구실에 제공했고 이를 통해 단 한 푼도 수익을 올리지 않았지만, 세계 각지의 연구소와 기업들이 헬라 세포를 이용한 연구 결과물로 창출한 부가가치는 천문학적이었다.
뒤늦게 진상을 알게 된 랙스의 유족들은 서모피셔사이언티픽을 상대로 2021년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합의에 따른 구체적인 보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유족 측 변호사 벤 크럼프는 양측 모두 만족한 합의였다고 밝혔다. 크럼프 변호사는 “랙스에 대한 착취는 지난 역사에서 흑인들이 보편적으로 겪어온 투쟁을 대변한다”며 “미국의 의학실험 역사는 의학적 인종차별 역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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