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대응력 높아져 제도만으론 교권 보호 한계…정당 요구·악성 민원 구분하는 사회 합의 필요”
일본 학부모들 SNS로 연결
법적 지식 동원 제도에 맞서
“일본의 교사들도 학부모와의 갈등으로 지난 20년간 고통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유효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죠.”
오노다 마사토시 오사카대 명예교수(68·사진)는 지난달 30일 경향신문과 나눈 e메일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에서 대두된 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 문제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오노다 교수는 이 문제만 38년간 연구한 학자로서, 2003년 이에 대한 연구 결과를 일본 최초로 발표해 사회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학부모와의 갈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의 유족들은 그의 연구를 계기로 가슴속에 묻어둔 울분을 언론에 털어놓게 됐다.
왜 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은 세월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을까. 오노다 교수는 학부모들의 인식 변화를 우선 지적했다. 자신의 자녀만 중시하는 성향에, 학교를 서비스 기관으로 보는 관점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에는 학교가 마치 편의점처럼 뭐든 제공해줘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며 “이러면서 원래 가정에서 책임져야 할 것도 학교의 책임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해졌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이 취약해진 현대인들과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사회적 인식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서구 사회와 달리 일본이나 한국은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어떤 문제를 정색하고 제기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지만, 이 같은 제동이 사라졌다”며 “이에 학교에든 선생님에게든 용서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이해하기보다 불만을 터뜨리는 일이 우선시됐다는 것이다.
‘학교변호사’ 일본서도 시행
예산 문제로 힘쓰지 못해
오노다 교수는 일본 사회가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년간 다양한 노력을 시도했다고 소개했다. 100여곳에 달하는 교육위원회(한국의 교육청)는 교사가 학부모의 민원에 대응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매뉴얼(안내서)을 마련했으며, 교사들의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연수회를 여는 곳도 있었다. 교사와 학부모의 입장을 바꿔보는 역할극 등을 통해 구체적인 대응 방법을 체득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교토와 오사카 등에선 오노다 교수의 제안으로 학교변호사와 상담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학교문제해결지원팀’을 개설해 문제해결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제도 변화가 바로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오노다 교수는 “(새로운 제도로) 교사들의 정신적 부담은 경감됐지만, 그 이상으로 학부모들의 대응력도 함께 높아진 상태가 됐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학부모들이 연결됐고, 이를 통해 얻은 법적 지식과 행동력이 교사들의 그것을 훨씬 앞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일부 교육청들이 검토하고 있는 ‘학교변호사’ 제도 역시 일본에선 이미 도입됐지만, 예산 문제로 인해 현실적으로 힘을 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부각될 때만 반짝 주목할 뿐, 시간이 지날수록 책정된 예산은 점점 삭감됐다. 학교변호사들이 정작 학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보수는 적은데 수고는 많으니, 자신의 사무실에 해당 학교의 교장을 불러 짧게 이야기를 듣고 마는 식이었다. 오노다 교수는 “가려운 곳에 손이 닿지 않은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정부의 대응 방식에 대한 비판도 내놨다. 일본 정부의 경우, 막대한 유권자인 학부모들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사·학생 인권 함께 존중
새로운 대화 방법 모색해야
그는 한국 정부가 학생 인권 강화를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교사 권위를 강화하려고 하는 데도 쓴소리를 건넸다. 오노다 교수는 “학생 인권이 존중받는 상황이 된 지금을 소중히 여기고, 교사 인권도 함께 존중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며 “교사가 일방적으로 권위를 휘두르는 시대는 끝났다. 대등한 관계에서 새로운 대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노다 교수는 ‘문제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대책’을 묻는 질문에 “제도를 뛰어넘을 정도로 학부모들의 요구가 첨예해지고 있다”며 제도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보다는 학교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하고, 그 밖의 사안에 대해서는 대응에 한계가 있음을 사회 전체적으로 합의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부모들의 민원도 어떤 것들이 정당한 요구이고, 어디서부터가 악성 민원에 해당하는지 사회적 합의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노다 교수는 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이 한·일 양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들이 당면한 문제라고 말했다. 사회가 고도로 성장하며 학부모들의 요구도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에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을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심각한 문제로 보고, 학문적 차원에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일본에서 자신과 같은 ‘이단’ 연구자가 나타났듯, 한국의 연구자들도 진심으로 이 문제를 연구해달라는 당부였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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