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5000원' 국룰 깨지나…'한 병에 1000원' 시대 열렸다

정부 "소매점, 주류 할인판매 가능" 유권해석
현장에선 "소비자가격 인하 효과 '글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앞으로 음식점과 술집,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 술을 더 싼 값으로 살 수 있게 된다. 식당이 도매상으로부터 소주 1병을 1500원 선에 구매해 소비자에겐 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셈이다. 소매점의 술값 할인 경쟁을 활성화해 물가 안정을 꾀한다는 취지지만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실제 소비자 가격 인하로까지 이어지겠느냐"는 회의적 전망도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주류 할인 및 원가 이하 판매 등을 가능하도록 주류고시 유권 해석을 광범위하게 적용키로 했다. 앞서 국세청은 한국주류산업협회, 한국주류수입협회 등 주류 관련 11개 단체에 이와 같은 내용의 안내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주류의 할인 판매 및 원가 이하 판매는 주류 거래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대표 사례로 지목돼 엄격히 금지돼 왔다. 하지만 정부가 유권해석을 폭넓게 적용하기로 하면서 고시 개정 등 행정적 절차 없이 즉각 시행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정부는 소매점과 식당 등에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지침은 대표적 서민 술로 꼽히는 소주가 한 병에 5000~6000원에 팔리는 상황에서 서민 부담을 줄여보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선 소주가 7000~8000원에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조사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외식 소주 가격은 1년 전보다 11.2% 올랐다. 맥주도 6.3% 상승하며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7%)을 크게 웃돌았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주류가 진열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따라 앞으로 식당과 마트의 '술값 할인 경쟁'도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로선 음식점이 홍보 차원에서 싼 값에 술을 파는 게 가능해지면서 올라간 외식 술값도 확 내려갈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음식점이 홍보 및 마케팅을 위해 2000원에 공급받은 맥주를 마진을 붙이지 않고 2000원이나 혹은 더 싼 가격에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구매·유통망을 구축한 마트가 손님을 모으기 위한 '미끼상품'으로 주류 할인을 활용할 여지도 생긴다. 국세청 관계자는 "주류 할인을 유도해 물가 상승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업체들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주류 가격이 낮아지고 소비자 편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술값 할인이 가능해진다고 해도 실질적인 소비자 가격 인하로까지 이어지겠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주류를 공급가보다 낮게 팔긴 어렵고 일시적인 이벤트용 할인 판매 형태가 나타나지 않을까 예상한다"며 "가격을 낮추고 마진을 줄여 파는 형태를 장기간 지속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류 제조사는 소주 1병을 도매상에 1100원~1200원대(세금 포함)에 납품한다. 도매상은 여기에 유류비, 운송비, 인건비, 운영비, 마진 등을 더해 약 25% 높은 1400원~1500원을 받고 마트와 주점 등 소매점에 공급한다. 이렇게 공급받은 소주는 마트에선 약 1500~1600원, 음식점에선 4000원~6000원 선에 판매해 왔다. 6000원짜리 소주 마진을 따져보면 1병 당 4500원(75%)가량 남는 셈이다.

서울 시내 음식점의 메뉴판. 사진=최혁 기자

자영업자들은 이번 할인 판매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소주·맥주 가격에는 자릿세·인건비·영업 마진 등이 상당 부분 포함되는 만큼 원가 인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A 사장(45)은 "가뜩이나 재료 값이 많이 오르고 소비심리는 좋지 않아 음식 마진이 크게 줄었는데 그나마 매출을 올리는 술 가격을 내리면 가게 운영을 하기가 어렵다”며 “한두 달 한시적으로 술값 할인을 한다고 해도 싼 가격을 보고 오는 손님들은 할인이 끝나면 금방 돌아선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마포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B씨(48)도 “주류 가격을 내리면 음식 값을 올려 줄어든 매출을 채울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할 경우 손님들이 늘어나는 효과도 없을 것이라 본다”면서도 “다만 신규 업체의 경우 상권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장사 초기에 소주 1000원, 맥주 2000원짜리 이벤트 등을 할 수도 있을텐데 이 경우 가격 출혈 경쟁으로 실제 살아남는 식당이 있을까 회의적이다”라고 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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