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미 신용등급 강등 아시아증시 일제히 하락
‘AAA’에서 ‘AA+’로 하향
S&P가 내린 이후 12년 만
“국가 채무 부담 증가 이유”
미 정부 “국채 안전” 발끈
시장은 “경각심” 신중론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1일(현지시간)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했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가 미 신용등급을 내린 것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011년 AAA에서 AA+로 내린 이후 12년 만이다. 당시 S&P의 발표 이후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고 S&P500지수가 15% 급락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다. 피치의 조치가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견해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경고로 갈리고 있다.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피치는 미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하면서 등급 전망을 기존 ‘부정적 관찰 대상’에서 ‘안정적’으로 변경했다. 피치는 보고서에서 “향후 3년간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의 악화 등을 반영했다”며 “미국 정치권이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대치하면서 이를 마지막 순간에야 해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 재정 운영에 대한 신뢰가 잠식됐다”고 강등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피치는 미 양당이 부채한도 상향을 두고 대치하던 지난 5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로 유지하면서 향후 등급 전망을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미 정부는 피치 조치에 반발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미국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유동자산이며 미국 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면서 “피치의 결정은 미국인, 투자자 그리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도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가장 강한 회복세를 보이는 이 시점에 미 신용등급을 강등하는 것은 현실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피치의 결정과 향후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엇갈린 관측을 내놓고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피치가 일관성을 잃었다”면서 “미국의 부채비율 급증은 일어나지 않았고, 거버넌스 부문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거시경제도 작년보다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경제자문기업 RMS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조 브뤼수에라스는 “피치의 미 신용등급 강등은 금융시장이나 경제를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연방준비제도(Fed)가 정부 신용을 AAA로 취급하는 한 세계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로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피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투자자들은 자금을 조달할 때 기업과 정부의 위험도를 평가하기 위해 신용등급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대출자의 등급이 낮을수록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한다. 미 신용등급이 낮아졌다는 것은 미 국채를 더 이상 ‘무위험 자산’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실제로 피치는 신용등급 하락의 근본 요인으로 미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를 꼽았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나랏빚을 크게 늘린 상황에 연준이 금리를 올려 이자 상환 부담이 이중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피치 분석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 재정적자 비중은 2022년 3.7%에서 올해 6.3%, 2024년 6.6%, 2025년 6.9%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피치의 발표 이후 2일 코스닥지수는 전일 대비 29.91포인트(3.18%) 하락한 909.76으로 마감했고, 코스피지수도 전일보다 50.60포인트(1.90%) 내린 2616.47로 거래를 마쳤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닛케이 평균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768.89포인트(2.30%) 떨어진 32707.69로 장을 마감했다. 홍콩의 항셍지수는 2.34%, 중국의 상하이종합지수는 0.91% 하락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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