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3만명 육박… 사회 복귀 대책 마련 시급 [단절의 벽 뒤에 숨은 사람들]
긴 시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아... 사회생활 못한 채 세상과 단절
市 “우선 연구·실태조사 실시”
“가장 아름다울 20대의 기억이 전혀 없어요.”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김이진(31)씨는 고등학교를 졸업 한 뒤부터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둬놨다. 소위 ‘히키코모리’로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다. 그는 식물인간으로 오랫동안 투병을 해 온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공황장애를 겪으며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끔씩 상태가 좋아지면 외출을 하기도 했지만, 그 뿐이다. 김씨는 “30살이 되는 해, 세상을 등지고 싶었다”며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희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10년이 넘도록 은둔형 외톨이 시절을 보낸 김씨는 20대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김씨는 지금도 ‘은둔 성향’을 지닌채, 남 보다 한참 늦어버린 삶의 숙제를 천천히 해내고 있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시간 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자격지심으로 바뀌어 사회와 더욱 단절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흉터로 가득한 왼쪽 팔목을 보이며 “은둔형 외톨이를 구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인천지역 은둔형 외톨이가 3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 이들을 다시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들의 고립을 방치하면 극단적 선택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일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시사회서비스원이 서울시·광주시의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천지역 연령대별 인구와 소득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인천의 은둔형 외톨이는 2만7천~3만6천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인천 인구의 약 1%를 차지한다. 이웃 100명 중 1명은 은둔형 외톨이인 셈이다. 인천사서원은 이중 만 19~39세인 청년들은 약 8천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은둔형 외톨이들이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재난 탓에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상황이 이어지면서 은둔·고립할 수 있는 여건이 자연스레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에서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지원책이 전혀 없어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은둔형 외톨이 상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결국 극단적 선택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씨는 “은둔형 외톨이가 모인 단체 대화방에는 10년 이상 은둔을 지속하는 외톨이는 거의 없다”며 “은둔 생활이 10년이 넘으면, 대부분 극단적 선택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재열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대표는 “코로나19로 ‘만나지 않는’ 현실이 이어지는 탓에 은둔 청년 문제가 더 커졌다”며 “은둔형 외톨이도 사람 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적절한 개입이 극단적 선택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시 관계자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주요한 사회 문제로 보고, 우선 연구와 함께 실태조사를 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어 “이를 바탕으로 지원 정책을 만들거나, 연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은둔형 외톨이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일본의 ‘히키코모리’가 유래로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장기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나 그 상태를 일컫는다.
김지혜 기자 kjh@kyeonggi.com
박귀빈 기자 pgb0285@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라진 응원 문화에 조용한 시험장 앞 [2025 수능]
- 파주 임진각케이블카 수능 수험생 프로모션 실시
- 2025학년도 대학으로 가는 수능시험 시작 [포토뉴스]
- 용인 주택가에서 전기차 등 2대 화재…주민 4명 대피
- 14일 귀국 이준석 “ 3천만원 출연료 말 안되는 것”
- [속보] 경기교육청 "나이스 접속 장애 1시간여 만에 복구…정상 운영"
- 2025 수능 당일, 경기도교육청 나이스 시스템 접속 장애 발생
-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 [포토뉴스]
- 인천 남동구서 등굣길에 박치기하던 ‘박치기 아저씨’ 검거
- 부천시, 찬밥신세 ‘택시쉼터’… ‘복지센터’로 업그레이드 [경기일보 보도, 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