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내년부터 은둔형 외톨이 지원 [단절의 벽 뒤에 숨은 사람들]
이들만의 ‘공간’ 세상 문턱 낮추기... 복지 정책·지원 사업 연결도 필요
인천시가 내년부터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실태조사를 본격화 한다. 지역 안팎에서는 이들의 재사회화를 위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최우선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일 인천시에 따르면 박판순 인천시의원(국민의힘·비례)이 제정한 ‘인천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에 따라 인천시사회서비스원이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 나선다.
인천시는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지역의 은둔형 외톨이의 정확한 규모를 확인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 정책을 살펴볼 방침이다. 또 인천시는 실태조사를 마치고,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인천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 기본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미 서울시와 광주시는 지난해 각각 은둔·고립 청년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만 19~39세 청년 중 약 12만9천명이 고립과 은둔 상태에 처해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는 전체 서울 청년의 0.98%에 이른다. 서울시는 이들을 위한 심리상담과 정서건강 프로그램을 연계하고 있으며, 공동생활 프로그램을 통해 재사회화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 2020년 전국 최초로 은둔·고립 청년의 실태조사를 한 뒤, 올해에는 2차 기본계획을 만들기 위한 추가 실태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광주시는 ‘은둔형 외톨이지원센터’를 만들어, 단체에서 직접 은둔·고립 청년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광주시는 ‘명랑한 은둔자 모임’이라는 재사회화 프로그램을 연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소수 인원의 은둔·고립 청년들이 함께 베이킹과 산책, 공예 등 자아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지역 안팎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사용하고,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하기에는 자존감과 자아효능감이 낮은 만큼, 진입 문턱이 낮은 공간을 마련해 이들의 재사회화를 시작하는 것이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다만, 은둔형 외톨이를 선택한 원인이 다양한 만큼 종전 복지 정책과 지원 사업과의 연결성 확보도 시급하다. 은둔형 성향을 알 수 있는 청소년 시기에는 학교 안의 상담센터(Wee)와 1388 청소년 상담센터의 학교밖 청소년 지원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복지국가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은둔·고립 청년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이들의 상태는 ‘사회적 관계’가 결핍한 상태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은둔형 외톨이 중 청년과 노년, 중장년에 걸쳐 종전 복지정책과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청년층에 대해서는 실태조사를 통해 규모와 원인을 파악하고, 생애주기별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김지영 인천시사회서비스원 연구실장 “청년들 급증… 방치땐 죽음·숨기 내몰려”
김지영 인천시사회서비스원 연구실장은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지원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형성 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현재 인천시로부터 의뢰를 받아 ‘인천시 고립청년 지원방안 연구’를 하고 있다. 김 실장은 “절대적 빈곤에 시달릴 때에는 ‘복지’의 영역이 먹고 사는 것으로 좁혀졌다”며 “경제성장이 어느정도 이뤄진 지금, ‘관계복지’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은둔형 외톨이 청년의 증가세가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 인천에서 조례가 만들어 진 뒤에도 이들을 향해 ‘배부른 자식들의 고민’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은둔형 청년은 ‘백수’와 다르다”며 “에너지가 전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진 상태”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은둔 청년의 증가세는 20~30대 자살률이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양상을 띈다”며 “결국 이들을 방치하다보면 죽음과 숨는 것, 이 2가지만 남는 꼴”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지난 2020년부터 3년 간 코로나19로 인해 이뤄진 ‘사회적 거리두기’ 및 ‘고립’이 더욱 인천지역 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늘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은둔 성향’이 있는 청년들이 대학교를 가면서 직장보다 편안한 관계에서 사회적 기술을 획득한다”며 “이 와중에 대학교가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이러한 기회를 박탈 당했다”고 했다.
특히 김 실장은 코로나19 확진으로 행정이 ‘가정’에 개입하면서 이 같은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이 수면으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그는 “코로나19로 확진자에게 ‘자가격리키트’를 문 앞에 뒀지만, 이것도 가져가지 않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행정에서는 수면 밑에 숨어 있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집중하는 상황이 나타났다”고 했다.
김 실장은 최근 ‘정유정 살인 사건’으로 불거진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오해를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이들은 본인을 잡아 삼켜버리는 무기력증과 저조한 에너지에 고통을 받는 이들”이라며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면서 사회에서 더욱 분리하도록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김재열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대표 “사회 소속감 연결고리가 극단적 선택 예방”
“사회의 소속감이 은둔형 외톨이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습니다.”
김재열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를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상태’로 해석했다. 김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는 단순히 상태일 뿐 이들이 사회 속에 어울릴 수 있도록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원인으로 대인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무기력에 사로 잡혀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해왔다.
김 대표는 “이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지원사업을 실패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했다. 이어 “취업 특강이 이들의 은둔을 해결할 수 있다는 틀린 진단이 많다”며 “되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간을 만들고 나니, 그 속에서 인간 관계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관계를 맺으니, ‘돈 벌 이유’가 생기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때서야 은둔형 외톨이는 직장을 알아보고, 연계하는 것”이라며 “이들에게는 집 밖에 나오는 순간부터 버스정류장, 회사에 가는 그 길을 함께 갈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가족에서 배우지 못한 ‘회복 탄력성’을 다시 복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의 재사회화를 위해서는 ‘공간’과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만든 ‘공간’과 ‘시간’은 은둔형 외톨이들 사이에서의 ‘네트워크’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가 처음 집 밖을 나오는 순간은 결국 자신이 믿는 안정적인 사람의 존재”라며 “안전한 사람과 함께 있는 안전한 공간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대표는 ‘등 따뜻하고, 배 불러서’ 은둔형 외톨이로 사는 것이라는 사회의 편견에 대해 경계했다. 그는 “이들은 은둔해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모든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국가는 그런 삶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제는 보편적인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은 은둔형 외톨이 청년에 대해 보다 나은 삶의 방향을 제안할 때”라고 덧붙였다.
김지혜 기자 kjh@kyeonggi.com
박귀빈 기자 pgb0285@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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