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쿠데타·독재의 망령을 미국에 불러왔다"... 민주주의 통째로 부정

김현종 2023. 8. 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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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대선 패배 뒤집기 시도 혐의로 3차 기소]
연방특검 "대선 패배에도 권력 유지하려 거짓 주장"
민주주의 위협... 1·2차 기소 때와는 사건 무게 달라 
백인우월 KKK 처벌 위한 법 적용... "민권법 위반"
"1·6 의회 폭동사태 책임 소재 명확히 했다" 평가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차 기소를 당한 직후인 지난 4월 초 뉴욕 맨해튼법원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쿠데타와 군부, 독재의 역사를 가진 나라들에서 친숙한 망령을 (미국에) 불러일으킨다."(미국 뉴욕타임스·NYT)

"1·6 워싱턴 국회의사당 폭동의 (최종) 책임을 물었다."(영국 가디언)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세 번째로 기소되자 주요 외신들이 내놓은 평가다. 잭 스미스 연방특별검사와 연방 대배심이 '기소'를 결정하게 된 핵심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 패배했음에도 권력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며, "미국 정부의 근간인 대선을 표적 삼아 불안정하고 설득력 있는 거짓말을 창조해 냈다"는 공소장 문구에 잘 드러나 있다. 이번 사건은 '선거 제도'라는 민주주의의 근간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1차 기소(성관계 입막음 돈 지급 관련 기업 회계문서 조작)나 2차 기소(기밀문건 무단 반출)와는 그 무게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다르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어떤 대통령도 선거 패배 후 속임수 쓰지 않았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2020년 11월 대선 결과(트럼프 패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 수백 명은 의사당을 점거해 기물을 파손하는 등 난동을 부렸고, 이 과정에서 5명이 사망하기까지 해 미국 사회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스미스 특검이 작성한 45쪽 분량의 공소장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11월 대선 패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 이를 뒤집기 위해 불법 행위를 일삼았다. 우선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현 대통령)에게 패한 애리조나주(州) 등에서 그는 "투표인 명단에 사망자가 포함되는 등 선거 조작이 있었다"고 근거 없이 주장했다. 7개 경합 주에서 거짓 선거인 명부를 조작했고, 특정 주의 공무원들에게 투표 결과를 부정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선거 사기' 주장을 하기 위해 사실상 유권자 수백만 명의 투표권도 박탈했다. 적법한 선거인단 대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가짜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이용하려 한 것이다. 특히 법무부의 권한을 사용, '가짜 선거 범죄 수사'를 수행하면서 선거에 대한 거짓말을 부추기려고도 했다. 2021년 1월 6일 선거 결과를 최종 확인·공표하려 했던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에게 "선거 결과를 번복하라"고 수차례 종용했던 건 범행의 정점이었다. 펜스 전 부통령이 "그럴 권한이 없다"며 거듭 반대하자 "당신은 너무 정직하다"며 비꼬기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이 같은 행위들에 대해 미국 정부 기망을 위한 모의, 공무집행 방해 등 4건의 혐의(연방법 위반)를 적용했다.

NYT는 "이번 기소가 깜짝 놀랄 만한 건 결국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정의할 문제의 핵심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선거 패배 후 폭력으로 이어질 속임수와 협박으로 권력을 장악하려 하지 않았고, 그런 혐의로 기소되지도 않았다는 게 신문의 설명이다.

심지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사기' 주장이 거짓인 걸 인지했었다고 특검은 밝혔다. 한 명도 아니라 2명의 법무장관과 법무부 관계자, 정부 선거 보안책임자 등 모든 사람들로부터 '선거 조작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보고를 들었음에도, 미국인 10명 중 3명에게 '2020년 대선은 얼마간 조작됐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 줌으로써 미국 선거제도의 신뢰성을 뒤흔들었다는 얘기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트럼프의 혐의, KKK에 적용됐던 것"

영국 가디언은 "미국 사회가 비로소 1월 6일 의회 폭동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직 연방 검사이자 비영리 단체 '민주주의 보호'에서 활동하는 크리스티 파커는 가디언에 "1·6 사건 이후 미국 사회는 '트럼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나'라는 물음 아래 살아 왔다"며 "우리가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끝낸다면 이런 폭동의 재발 확률은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법률(미 형법 241조)이 과거 백인우월주의 조직인 '쿠클럭스클랜(KKK)'을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WP는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바위·벽돌로 인종 간 커플을 공격한 백인 남성이나, 이민자 집에서 십자가를 불태웠던 KKK 단원을 적용 대상으로 했던 민권법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트럼프가 기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 쿠클럭스클랜(KKK) 이미지. EPA 연합뉴스

공범에 대한 추가 기소 가능성도 남아 있다. 공소장엔 '공모자 6명'이 익명으로 기재됐으나, 미 언론들은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비롯, △존 이스트먼 변호사 △시드니 파월 변호사 △제프리 클라크 전 법무부 시민국장 △케네스 체스버러 변호사 등 5명의 신원이 사실상 특정됐다고 전했다. 뉴욕시장 재직 시절인 2001년 9·11 테러 수습을 진두지휘하며 국가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줄리아니 전 시장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인연 탓에 형사처벌 위기에 놓인 셈이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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