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어업·일상 피해 커지는데 기후 정책·입법은 뒷전인 나라
연일 가마솥더위가 이어지며 온열질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2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전날까지 올여름 폭염 사망자는 23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7명보다 3배 이상 급증했다. 전북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에서도 이날 400여명의 온열환자가 발생했다. 정부가 폭염위기 경보를 4년 만에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하고 비상 대응에 나섰으나 인명 피해가 가중되는 상황이다. 휴식 없이, 위험 시간에 실외노동을 하지 못하게 강제적·실효적으로 제어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농작물이 병들고 가축과 양식어류가 폐사하는 농어업 피해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번 폭염으로 가축 15만3000여마리가 폐사했다. 햇볕에 타들어가며 생장을 멈추는 농작물 피해도 크다. 특히 과수 농가에는 과육이 썩는 탄저병까지 돌고 있다고 한다. 2018년처럼 고수온 경보와 주의보가 발령 중인 서·남해 어민들은 또 양식장 어패류가 집단폐사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올 들어 냉해·집중호우·폭염 피해가 이어지면서 농수축산물에 비상등이 켜졌다. 작황까지 좋지 않으니 소비가 줄고 생산 현지의 상품 가격과 농어촌 소득은 뚝 떨어지고 있다. 기후재난에 그대로 노출된 농어민의 시름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직간접적인 피해를 구제·보상할 대책이 절실해졌다.
정부는 기후재난으로 가중될 고물가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지난달 집중호우 여파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해 있다. 폭염 속에 상추는 한 달 전보다 83.3%, 시금치는 66.9%나 올랐다. 과일과 닭고기 가격도 급등세다. 한국은행은 7월 세 번째 조사부터 물가에 반영되기 시작한 수해·폭염 여파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월부터 다시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밥상물가를 서둘러 잡고 폭염과 휴가철 이후의 물가 불안에도 선제 대응해야 한다.
일상의 안전과 생계를 위협하는 기후재난을 불가항력의 천재지변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유엔 사무총장이 ‘지구 열대화’를 경고한 기후위기를 이미 닥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장·단기적으로 재난관리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의 기후위기 근본 대책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예정한 탄소감축 목표량의 75%를 임기 뒤 3년(2028~2030년)에 하겠다고 미뤘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국회에서 발의된 탄소중립 관련 법안 100건 중 67건이 여전히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탄소 감축 논의와 근본처방에 소홀한 채 기후위기만 걱정해서는 향후에도 기후재난에 결코 대처할 수 없다. 엄중한 기후재앙을 목도하고 체감하면서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국정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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