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가사관리사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여성들에게 번듯한 이름은 사치였다. 1960년대 농촌 가정에서는 입 하나라도 덜 요량으로 어린 딸들을 도시 가정의 ‘식모’(食母)로 보내는 일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던 식모는 말 그대로 ‘남의 집 일’을 하던 여성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당시 식모는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었다. 집 안에서 구타와 학대, 성폭행 등이 일어났다.
경제성장 덕에 여성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1970년대 중반부터 식모는 급감했다. 그 호칭도 가정부·파출부를 거쳐 가사도우미로 바뀌었다. 현재는 흔히 ‘아줌마’ ‘이모님’으로 불린다. 주로 중년 이상 여성들이 이 일에 많이 종사해 그렇게 불렸을 테다. 하지만 그런 이름으로 불릴 때 존중이 생길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줌마’ ‘이모님’은 여성을 지칭하는 호칭일 뿐, 직업을 나타내는 명칭은 아니지 않은가. 여기엔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이 덧대어 있다. 막상 현실에선 ‘좋은 이모님 만나는 건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인데도 그랬다.
고용노동부가 가사노동자에 대한 ‘명칭 선호도’를 조사해 2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가사관리사(관리사님)’라는 호칭을 가장 선호했다고 한다. 이젠 ‘가사관리사님’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문제는 호칭은 달라져도 가사노동자는 여전히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있다는 데 있다. 2021년 5월 가사근로자법 국회 통과 후 가사근로자는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듯했다. 그러나 이 법은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인증받은 업체 소속이 아니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현행 근로기준법 보호에서도 벗어나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이 하반기에 들어온다. 저개발 국가 여성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가정의 우리네 식모들처럼 한국어 능력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을 것이다. 최저임금제를 적용한다니 기껏해야 최저임금이 상한이고, 국내 가사관리사들의 노동 현실은 더 각박해질 수도 있다. 이제는 옛일이 된 ‘식모들의 전성시대’가 국적만 바꿔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에게 옮겨가는 것은 아닐까. 이들이 한국 여성들을 도와 출생률을 높일 것이라 기대한다니 이 여름이 더 덥게만 느껴진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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