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당나귀
황순원의 단편소설 <뿌리>는 목사 사택 지하실방에 살면서 오만가지 궂은일을 도맡은 교회 아줌마 이야기. 중년인 아줌마는 병들고 그늘진 얼굴을 가졌는데 아이들만 보면 얼굴이 꽃처럼 피어나. 그러다 겨울 추위에 병이 도져서 죽어가는 교회 아줌마 귀에다 대고 김 권사는 정말 야박한 말을 중얼거려.
“근심걱정이 없는 천국에 가게 됐으니 기쁘지? 주님이 교회 아줌마를 영접하러 기달리구 계세요. 알겠지?”
강추위가 밀려드는 밤, 연탄을 아끼며 이불을 뒤집어쓴 교회 아줌마에게 한 젊은이가 찾아온다. 아들이었다. 정비공장에서 시운전하는 차에 가슴을 다친 청년, 치료비 때문에 팔아버린 엄마의 재봉틀을 들고 온 것.
다음날 목사 부인이 죽은 교회 아줌마를 발견하는데, 마치 두 사람이 잔 듯 한쪽엔 이불을 덮어주고 아줌마는 웅크려 죽어 있었대. 죽을 때라도 내 사랑은 꿈속에 찾아온다지. 사랑이 사람의 뿌리이고 전부야. 한 남자가 유기견센터에 와서 “가장 충성스러운 강아지 한 마리 입양을 하려는데요”. 센터 직원 왈. “이 녀석이 가장 충성스럽습니다. 3번이나 입양을 보냈는데, 내가 좋은지 다시 돌아왔거든요.” 꿈에라도 내 곁으로 돌아온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가.
한번은 북인도 라다크 동네에 갔는데, 당나귀와 함께 사원 ‘곰빠’로 향했다. 당나귀는 충성스럽게도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계단을 성큼 걷더군. 좀 천천히 가자며 당나귀를 타이를 정도였어. 마침내 당도하니 어라~ 어린 당나귀가 어디선가 나타났어. 짐을 내려놓은 엄마 당나귀와 상봉하고선 둘이 비비고 난리야. 자식 보고픈 마음에 그렇게 바삐 계단을 올랐구나. 다음날 엄마 당나귀와 길을 내려오는데 어찌나 느려 터지던지. 둘을 갈라 놓고 부려 먹더군.
경상도에선 아이를 ‘얼라’, 갓난 젖먹이는 ‘까널라’라 한다덩만. 걸음마를 배우며 ‘섬마섬마 아장아장’. 아이는 엄마가 보이면 요쪽말로 ‘소랍게(수월하게)’ 또 용감하게 일어서지. 엄마가 안 보이면 하늘을 보고 서럽게 울어. 어린 당나귀의 울음소리가 저 곰빠 아래까지 오래도록 들리더라.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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