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K문학은 없다
2016년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2022년 소설가 정보라의 <저주토끼>가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2023년 소설가 천명관의 <고래>가 부커상 최종후보에 선정됐다. 최근 몇년 사이 한국문학장에서 일어난 의미 있는 ‘사건’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외국에서 수여하는 상을 좋아한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을 발표하는 10월이면 문학 담당 기자들은 분주하다. 한때는 유력한 수상 후보자로 지목된 어느 시인의 집 앞에는 문학 기자들이 이른바 ‘뻗치기’ 취재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노벨 문학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하지만 외국에서 수여하는 문학상은 일종의 공인(公認)처럼 인정받는다. 수상 여부를 떠나 한강·정보라·천명관 모두 한국문학장에서 개성 있는 목소리를 보유한 작가들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 없다.
나라가 발전하거나 도시가 잘되려면 ‘문화적 위인’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런 위인들이 등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원로 평론가 최원식은 어느 대담에서 “문화에 있어서 도약이란 없어요. 끝없는 축적 끝에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축적이 곧 도약이죠”라고 말한다. 문화 분야에 있어서는 다른 무엇보다 ‘축적이 곧 도약’이 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외국 문학상 수상 등 ‘열매’를 취하는 데는 관심이 많지만, 축적을 위해 바탕을 마련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지난 7월3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부실한 심사 운영을 문제 삼아 한국문학번역원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번역원의 ‘리더십 각성’ 운운하는 대목에서 ‘표적 감사’의 저의가 느껴진다. 번역·출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공허한 트집잡기로 가득한 내용으로 보아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에 대한 물갈이를 예고한 것으로 풀이하는 현장 문학인들이 여럿이다.
문제는 또 있다. 우수한 문학도서를 선정해 도서관·지역문학관·사회복지시설 등에 보급하는 문학나눔사업은 지금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학술도서를 선정해 보급하는 세종도서 선정사업 또한 큰 변화가 예고됐다. 정책사업은 하나의 생물과 같아서 크고 작은 변화야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의 변화인지에 대해 현장 예술인들은 회의적인 눈길을 보낸다.
한 나라의 정부 부처는 오직 두 개의 부처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문화부와 반(反)문화부. ‘문화부’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 식의 표현인데 문화부는 과연 보충성의 원리에 근거해 문화의 바탕을 조성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일까. 나 또한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2차 문학진흥기본계획(2023~2027)’의 비전은 ‘자유로운 상상을 기반으로 일상에 스미고 세계로 번지는 K문학’이다. K컬처의 바탕이 ‘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 문학인들은 K컬처, K문학이란 말이 공허한 기표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미국 작가 어슐러 K 르 귄은 “저는 엄지손가락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지만, 상상력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학과 출판에 대한 관심은 ‘상상력의 빈곤’을 막기 위해 하는 것이다. 제발, 문체부는 문학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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