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영의 레인보] 김현숙 장관의 양성평등주간을 기대한다

임아영 기자 2023. 8. 2. 20:1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차별이라 말하긴 쉽다.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꼼꼼하게 실행하는 일은 어렵다.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일곱 글자는 국가가 더 이상 성평등 정책을 중요하게 보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나아가 호주제 폐지 이후 어렵게 일궈온 성평등 정책을 후퇴시키고 하나씩 쌓아올린 정책 역량을 깎아 먹는 시작점이었다.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 우리 사회는 차곡차곡 살뜰하게 이뤄지는 ‘성평등 정책의 후퇴’를 지켜보고 있다. 정부 정책에서 ‘여성’과 ‘젠더’ ‘성평등’은 사라지고 있다. 성평등 주무 부처가 나서서 여성을 ‘삭제’하면 정부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성별 다양성 의제는 후순위로 미뤄진다.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단축근로제는 좋은 제도지만 성인지적 관점 없이 실행되면 여성에게 불리한 정책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기업에 단순히 육아휴직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하면 사회가 주 양육자라고 호명하고 임금이 적은 여성들이 주로 쓰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정부가 남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기업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성별 비율을 보고하도록 정책을 설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성별 불평등이 완화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기능하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을 정책 설계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위원회의 여성 비율 규정을 만들었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는 위원회를 구성할 때 특정 성별이 위촉직 위원 수의 60%를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20년 법적 기준을 넘어 43.2%까지 올랐던 정부 위원회 여성 비율은 슬금슬금 하락(41.4%) 중이다. 여성 참여율이 40% 미만인 기관 비율도 2013년 80%(343개)에서 2020년 36.2%(194개)까지 줄었지만 2022년 40.5%(215개)로 늘었다.

정부나 지자체가 정책을 수립·시행할 때 성평등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성별영향평가’도 후퇴하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 ‘지자체 합동평가 지표개발추진단’은 성별영향평가 지표 삭제에 관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는 3년간 모든 시·도가 해당 지표의 목표치를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올해 실시율 목표치를 10%에서 7%로 내렸고, 정책개선 이행률 목표치도 최대 24% 수준으로 설정하고 있어 목표치 자체가 낮은 상황이다. 목표치를 낮춰 잡고 이미 달성했으니 지표가 필요 없다는 논리다. 여성단체들은 지자체 성인지예산제도를 주관하는 행안부가 관련 지표를 삭제하면 성인지예산제도마저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여가부는 이어지는 ‘후퇴들’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지난 4월 중앙성별영향평가위원회를 비상설로 전환하려는 시도에 대해 “상설위에서 비상설위로 전환해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것으로, 기능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자료를 낸 것으로 기조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상설위가 비상설위로 바뀌어도 기능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은 여가부를 폐지해도 기능에는 변화가 없다는 김현숙 장관의 말에 겹쳐진다. 부처의 힘은 예산과 권한에서 나온다. 국무회의에 배석할 수 있는 독립 부처가 다른 부처 산하로 기능이 이관되기에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말은 그래서 모순이다.

지난 5월 유엔 여성폭력특별보고관은 공개서한을 통해 한국 정부의 여가부 폐지 시도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특별보고관은 성평등 전담 부처의 권한을 강화하고,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배치하라고 조언했다. 상식적인 논리다. 부처의 권한을 강화하고 예산을 늘리는 것이 부처 기능을 고도화하는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유엔에 “정책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등으로 개편·통합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여가부를 폐지한다는 논리에 국제사회가 설득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김 장관은 지난 6월 인터뷰에서 “여성의 정치·경제적 자립이 양성평등”이라고 했다.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장관이 경제적 자립을 얘기하니 웃음이 나오지만 다가오는 양성평등주간에 여가부의 활약을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김 장관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성별 임금격차 해소의 첩경이 되는 성별 근로공시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성별 근로공시제는 고용노동부가 연구용역을 마쳤지만 발표 시점을 계속 미루고 있다. 김 장관의 의지가 크다면 양성평등주간에 공공기관부터 시작한다는 성별 근로공시제 발표를 보고 싶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이미 공개돼 있는 내용을 재정리한 수준이 아니라 채용에서부터 퇴직까지 새로운 성별 격차 정보가 많이 담겨 있길 바란다. 민간기업 공시는 언제부터 할지에 대한 로드맵도 담기길 기대한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