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과학은 열린 학문이다

기자 2023. 8. 2. 20:1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발표된 지 한 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은 누구도 이 위대한 물리학자의 이론에 반박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론이 발표되었을 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200년이 넘게 진리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뉴턴 역학을 반박하고 발표된 새로운 이론이 심지어 실험적 증거조차 미비했기 때문이다. 방법은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적 계산에 따르면, 별빛은 태양의 중력에 의해 약 1.75″(초·1″=1/3600°도, 원둘레의 1/1296000) 정도 휘어져야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방법은 알았지만, 시도할 수 없었던 것이다. 태양빛이 너무 밝아 태양이 떠 있는 동안에는 별빛을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1919년의 개기일식은 흔치 않은 기회였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잠시 동안 태양빛이 가려지기에, 별빛을 관측할 수 있다. 이에 영국 왕립천문학회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일식 원정대를 두 팀 꾸려 각각 서부 아프리카의 프린시페와 남아메리카의 브라질로 보낸다. 프린시페에는 에딩턴이, 브라질에는 크로멜린이 이끄는 팀이 파견되었다. 그리고 1919년 5월29일,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대륙에서 이들은 이후 과학사의 흐름을 바꿀 귀중한 자료를 수집했고, 그해 11월, 영국 왕립천문학회는 드디어 상대성이론이 증명되었다는 공식 발표를 한다.

흥미로운 건 일식 관측과 결과 발표까지에 걸린 5개월이 넘는 시간차다. 물론 실험 이후 데이터 검증에 상당한 시간을 쏟아붓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양 팀의 관측 데이터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채택된 쪽은 에딩턴의 사진이었고, 그래서 후대에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증명한 이는 에딩턴으로 기록된다.

훗날의 학자들은 브라질 팀의 사진이 더 많고 더 상태가 좋기는 했지만, 상대성이론보다는 오히려 뉴턴 방정식에 들어맞는 결과가 나왔기에, 결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누락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1919년 당시의 관측 장비는 지금의 수준에서 보면 너무나도 어설펐기에, 같은 일식을 촬영했음에도 서로 상반된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물론 1979년 발전된 장비들을 이용해 다시 한번 행해진 실험에서 에딩턴의 관측 결과를 정확히 지지하는 결과가 나왔기에 지금에야 에딩턴의 관측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당시 상반된 자료를 마주한 과학자들은 상당히 난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관측 이후 발표까지 수개월 동안, 수많은 검증을 통해 더 사실에 부합한 자료를 알아낸 것이었다.

대개의 과학이론은 현상을 통해 가설을 설정하고, 그 가설을 증명하는 실험을 통해 검증되며, 보편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통해 비로소 이론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검증과 확증, 보편성 확보와 이론화는 단 한 번의 실험이나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공식 한 줄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확실치는 않지만) 착안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공식화하는 데 20년 이상 걸렸고, 플레밍이 배지 속에 우연히 떨어진 푸른곰팡이를 발견한 이후 실제 페니실린이 개발되기까지도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과학은 그렇게 발전한다. 어떤 천재의 위대한 발견 이후 일사천리로 모든 정답이 알려지는 게 아니라, 수많은 과학자가 조금씩 쌓아나가는 것이기에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는 중간 과정에서는 완성된 모습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이론이 다듬어지는 중간 과정은 결코 매끄럽지 않으며, 불협화음과 실수와 오류가 중첩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학이론의 진짜 유용성은 여기에 있다.

과학은 열려 있는 탐구 과정이다. 그렇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가짜 이론들이 한동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일은 있어도 결국에는 그 진위를 스스로 밝혀내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상온 초전도체 기술은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끈 주제였다. 이를 둘러싸고 나타난 많은 주장들 중 어떤 것은 사기로 밝혀졌고, 어떤 것은 진실로 판명되었다. 최근 논란이 된 상온 초전도체에 대한 이야기도 제대로만 작용한다면 열린 과학의 순기능이 머지않아 진위를 밝혀낼 것이다. 과학적 세상은 늘 그렇듯이 간절한 바람보다는 진짜 사실이 더 힘을 발휘하는 분야이니 말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