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철근 누락 아파트 입주예정자에 계약해지권”
설계·감리 담합 등 공정위가 직권조사하기로
국민의힘, ‘건설현장 정상화 5법’ 개정 속도 낼 듯
국민의힘과 정부가 2일 철근 누락 아파트 입주예정자에게 계약해지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는 전수조사 등 정부 조치를 마친 뒤 필요하면 추진한다.
당정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긴급 고위당정협의회를 열어 이 같은 방안을 논의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고위당정 후 국회 브리핑에서 “전수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강공사, 책임자 처벌은 물론 입주자대표회의와 협의를 통해 입주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상응하는 손해배상을 하고, 입주예정자에게는 재당첨 제한이 없는 계약해지권 부여 등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설계·감리 담합, 부당한 하도급 거래 등을 직권조사한다. 여당은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계관리법, 사법경찰직무법, 채용절차법, 노동조합법 등 ‘건설현장 정상화 5법’ 개정을 추진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노조를 겨냥해 언급한 ‘건폭’을 척결하기 위한 ‘5법’ 개정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당정은 전수조사 및 정부 차원의 조치를 마친 뒤 당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를 통해 필요 시 국정조사 추진을 검토하기로 했다. 하자가 확인된 15개 단지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보강공사를 완료하고, 이번주 중에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 세부 추진 방안을 확정해 다음달 말까지 점검을 완료하기로 했다. 김 의원은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잘못된 관행과 위법 행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근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며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 결과 등을 종합해 무량판 구조에 대한 종합적인 안전대책 및 건설 이권 카르텔 혁파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고위당정에는 여당에서 윤재옥 원내대표 등이, 정부에서 한덕수 총리·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등이, 대통령실에서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참석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고위당정에 앞서 “윤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당정 간 긴급회의를 통해서라도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이뤄지는 회의”라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지금 현재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 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 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졌다”며 “특히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 부실 시공 근본 원인이 문재인 정부 당시 벌어진 건설 산업 이권 카르텔에 있다고 책임을 돌린 것이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전 정부 탓’에 호흡을 맞췄다. 휴가 중인 김기현 대표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문재인 정권 당시 주택건설 분야 최고위직을 담당했던 김현미·변창흠 두 전직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신들이 당시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며 “건축 이권 카르텔이 벌인 부패의 실체를 규명하고 그 배후를 철저히 가려내기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수억원을 들여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대아파트 방문쇼를 벌이던 LH는 주택의 소유를 바라는 국민의 주거 수요를 역행해 임대주택으로 몰아치며 주택시장을 왜곡시켰다”며 문재인 정부 주택정책 비판으로까지 나아갔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SNS에서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공공주택 건설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본격화했다. 문재인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에 따른 무리한 공공임대 공급계획이 부른 정책 실패”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김정재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TF를 꾸려 오는 4일 첫 회의를 연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LH 전·현직 직원들의 땅 투기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까지 터진 것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주택 건설 사업 관리정책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을 추정해 보지 않을 수 없다”며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고위당정 전 당 사령탑인 김 대표와 원내 사령탑인 윤 원내대표가 국정조사를 놓고 미묘한 입장차를 보였다. 김 대표가 국정조사 추진 의지를 밝힌 반면 윤 원내대표는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하면 TF 발족이 우선이고 국정조사는 정부 차원의 전수조사·감사원 감사 등이 끝난 뒤 추후 검토할 문제라고 밝혔다. 윤 원내대표 입장에는 섣불리 국정조사 카드를 꺼냈다가 실익은 얻지 못하고 민주당의 서울~양평 고속도로 국정조사 요구 목소리만 키워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고위당정에서 국정조사 추진은 추후 논의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부실 아파트 건설 책임을 윤 대통령에게 돌리며 맞받았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이재명 대표 등 당 지도부에 보고하기 위해 만든 ‘정책현안 보고’ 자료에서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드러난 LH 발주 아파트 15곳 가운데 13곳(87%)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공사를 진행했거나 준공을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와 관련해 또다시 ‘전 정부 탓’ ‘카르텔 척결’에 열을 올렸다”며 “윤 대통령은 인재·관재로 지목되는 이태원 참사·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순살아파트 국민 걱정에 남 탓부터 하는 대통령과 여당은 도대체 제정신인가”라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더이상 문제를 호도하며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즉각적인 국민 안전 대책과 재발 방지 대책부터 시작해 건설자본과 정관계 이권 카르텔의 핵심을 정조준한 쇄신 대책을 빠르게 내놓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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