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잇슈] 잊을 만하면 올라오는 '범죄예고'…상인들 "생업 막막해요"
이곳은 2호선 신림역과 맞닿은 번화가의 한 골목입니다.
열흘 전쯤,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던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던 사건 현장인데요.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아픈 사건 이후에, 이곳 한켠에 마련됐던 추모 공간이 이제는 자취를 감춘 상태입니다.
여전히 일부 상인들과 시민들은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일대에서 비슷한 범행을 예고하는 글들이 온라인에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기 때문인데요.
심지어 한 남성은 구속됐고,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만 6건입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범죄 예고에, 경찰이 엄정 대응을 예고했지만, 상인들은 불안을 넘어 생업에 타격까지 받고 있다고 하는데요. 직접 만나 들어봤습니다.
<음식점 사장> "(조선 범행 직후) 10년 동안 달달 외웠던 주소도 몰라. 112신고 하려는데 주소도 기억 안 나. 문 어떻게 잠가야 하는지도 기억 안 나.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났어요. (보건소) 심리치료도 받으려고 신청해 놓은 상황에서, 또 인터넷에 올라오는 게 더 충격인 거예요. 장사가 안되니까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심리적으로 죽이는 거나 똑같거든요. 생존권 달린 문제인데, 그런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올리는지..."
<음식점 사장> "(직원들이) 그냥 상황 좋아지면 다시 불러라, 너무 여기 와서 일하는 게 손님 없으니까 스트레스받고 힘들다. 코로나 때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상황보다 더 어렵고, 직원 월급은 줘야 하고 월세는 내야 하잖아요."
<고깃집 사장/18년 운영> "점점 날이 더워지니까, 숯불이니까 (손님들이) 기피하잖아요. 또 휴가도 이 기간에 겹쳐 있잖아요. 또 그럴 수 있다라는 (불안함 때문에), 전에 사건은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리는데.. 그게 더 큰 거 같아요. 싹 죽은 거예요, 오히려."
이곳은 신림역 골목에서만 15년 넘게 영업을 이어왔다는 한 음식점인데요.
보시는 것처럼 평소라면 점심 시간대라서 26개 테이블이 꽉 차 있어야 할 시간대인데, 지금은 테이블 곳곳이 텅 비어있는 상황입니다.
<강은혜/음식점 직원> "매출이 거의 반토막 났다고 생각돼요. 손님 계속 받고 있어야 하는데 거의 안 돌아와요, 거의. 저녁도 마찬가지고 낮도 마찬가지고. 하계휴가라고 해도 손님 받고 해야 하니까 이틀, 많이 쉬어야 사흘 쉬는데, 일주일 넘게 휴가 가시는 분도 많더라고요. 장사가 안 되니깐..."
때문에 사건 현장 인근에선 아예 인근 지구대 순찰차 한 대가 24시간 거점 배치돼, 반경 300~400미터를 순찰하고 있고요.
기동대 버스가 상시 대기하면서 인력 20여 명이 교대로 투입돼 도보 순찰까지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종연/서울관악경찰서 신림지구대 경사> "저희가 순찰할 때 주취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불심자(수상한 사람) 대상으로 순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거점 근무를 두세 군데에서 전 직원들이 나눠서 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역 골목 안쪽으로 들어와 봤는데요.
2호선 신림역과 신림선 신림역의 일평균 이용객 수는 지난해 11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서울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곳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하지만 거리는 부쩍 한산해졌고 오가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상인뿐 아니라, 청년 1인 가구의 불안함 역시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 신림동은 서울에서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행정동인데요.
지난 6월 서울시가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요, 신림동의 1인 가구 수는 1만 1천993명으로 총인구수 대비 1인 가구 비율이 63%에 달했습니다.
<이승희/서울시 신림동> "이사는 너무 많이 고려하고 있고요. 그래도 작년까진 위험하단 생각 많이 안 들었는데, 올해 사건 터지면서 협박성 글도 올라오다 보니까 빨리 이사 해야겠다. 특별한 대상 없이 아무한테나 그렇게 했다는 것도 있고,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겠다'란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특히 이번 사건이 이목을 끌었던 건 불특정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행이 아니라, 일반 성인 남성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 있었죠.
저희 취재진이 만났던 일부 시민 가운데 나도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난생처음 큰 불안함을 느꼈다는 남성도 있었습니다.
<조범래(20대)/서울시 등촌동> "공포의 공간으로 변했죠.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목적이 없다는 게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일하려고 오긴 했는데, 좀 오기 꺼려지기도 했고요. 뒤를 너무 많이 돌아보는 것 같아요."
<카페 직원> "본보기 삼아서라도 크게 처벌 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죠. 너무나 많은 시민과 상인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그걸 그냥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봐요."
우리가 이른바 이런 '묻지마 범죄'에 더 큰 공포를 느끼는 이유, 그리고 이런 유사 협박 범행이 잇따르는 이유는 뭘까요?
<배상훈/프로파일러> "(특정) 커뮤니티에 올린 다음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받아요. 어떤 경우는 너 잡혀간다, 어떤 경우는 대단하다. 실제로 범행을 저지르려 하기보다는 관심을 통해서 추앙이라든가를 즐기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의 공동의식이 범죄 의도가 되겠죠."
<배상훈/프로파일러> "1960, 70년대에 미국에서도 극적인 범죄에 대한 (연구) 전환이 있었어요. 다 모아서 연구를 시작했어요. 명확히 동기가 있다, 비교적 동기가 있다 동기가 불분명하다 아예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나눠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범죄로 카운트하지도 않고 연구하거나 아카이브로 만들지도 않으니까 갑자기 뭐가 터졌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하고 추적하고 그런 과정이 꾸준히 돼 왔다고 하면, 지금 조선의 범죄는 다른 방식으로 불렸겠죠."
사실 우리 사회는 이런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묻지마 범죄', '사이코패스 범죄'라며 손쉽게 뭉뚱그려 소비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묻지마 범죄'라는 게 명확한 정의조차 없는 실정인데요.
<승재현/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가장 어려운 범죄에 '묻지마'라는 타이틀을 만들고, 가장 쉬운 답인 '사이코패스'가 원인이라고, 지금까지 그렇게 답을 해왔죠. 그 사람들의 개인적 특성은 살펴보지 못했는데, '분노'라는 아주 추상적인 단어를 얘기하잖아요. 그 분노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를 다 이야기 못 하는 거죠."
줄어들고 있다는 살인 건수통계와 강력범죄 통계만으로는 우리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죠.
앞으로는 범죄 발생 중심이 아닌 범죄자의 다양한 동기를 중심으로 한 범죄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획: 김가희 -취재: 이채연 -영상 취재: 이병권 -편집: 정수연
#신림역 #흉기난동 #추모 #모방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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